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산행기
익산노회 울밖교회 원로목사 최윤식
작년 목회 정년은퇴 직후에 히말라야를 찾았다. 은퇴 후 허전함을 달래기 위한 목적도 있었고, 자유롭게 훨훨 날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이다. 작년에는 마르디히말(4,500m),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m), 랑탕(4,980m) 세 개의 고봉을 전병생목사님과 함께 다녀왔다.(최양님목사도 안나푸르나와 마르디히말은 동행했음) 그러면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도 이후에 꼭 들려보겠다고 다짐했다.
일 년이 지나고 드디어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계획했다. 72세의 나이가 걱정이 되는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염려하며 만류했지만 더 늙으면 영영 기회를 놓칠 것 같아 결행했다.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주변 지인들이 <무리하지 마세요>라고 신신부탁했다. 나도 자만하지 않고 무리하지 않고 안전하게 다녀오리라 다짐하며 3월 4일에 네팔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7시간의 비행 후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네팔 선교사 최양님목사님이 마중을 나오셔서 안내해 주시고 여행사와 연결해 주셔서 순조롭게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카트만두에서 20여명이 탑승할 수 있는 소형 비행기를 타고 40여분 만에 에베레스트 트레킹 시발점인 루크라(2,850m)에 당도했다. 산 능선을 깍아 만든 비행장으로서 활주로가 150m여 밖에 되지 않는 데 안전하게 착륙하는 비행 기술이 놀라웠다.
드디어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히말라야 산행에 겁을 먹는다. 높은 산이기 때문에 가파르고 엄청 힘들 것이라고 상상한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실상은 그리 가파르지도 험하지도 않다. 다만 거리가 길 뿐이다. 물론 오르막길 내리막길이 있고 힘든 지점도 있다. 하지만 지리산 설악산을 등산하는 것보다 수월하다. 또한 군데군데 롯지(휴게소 및 숙소)가 있어 힘들면 쉬었다 갈 수도 있고 차나 간식을 사먹을 수도 있다.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는 네팔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오고 가는 생활도로라고 보면 된다.
산행의 첫 이틀 길은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인데 평지와 다름없었다. 설산에서 녹아내린 엄청난 물들이 굉음을 내며 계곡으로 흘러간다. 시원한 느낌,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따금 가우리상카(7,100m) 가오룽(6,980m) 등의 설봉(雪峰)이 힐끔힐끔 보이기도 한다. 이틀째 오후에는 오르막 길이다. 해발 600m를 3시간여 오르면 남체바자르에 당도한다.
남체바자르(3,440m)는 셀파족의 고향으로서 상당히 큰 마을이다. 이곳에서 고소적응을 위하여 하루를 체류한다. 체류하는 동안 산행 5시간 걸리는 에베레스트뷰 호텔을 방문한다. 이곳에서 에베레스트를 조망할 수 있다. 하지만 로체(8,501m) 눕체(7,861m) 등의 봉우리에 가리워 봉우리 약간 만 보일 뿐이다.
해발 3,000m 이상부터 서서히 고산증세가 나타난다. 고산증의 대표적인 증세는 두통, 구토, 식욕 저하, 호흡곤란, 손발 저림, 불면 등이다. 남체바자르에는 헬리콥터 비행장이 있다. 그리고 창공에는 쉴 새 없이 헬리콥터들이 날아다닌다. 헬리콥터를 이용하는 경우는 다양하다. 수고롭지 않게 히말라야를 감상하기 위해 이용하기도 하고, 사고나, 몸이 아파 이용하기도 하고, 고산증 때문에 급속히 하산하느라 이용하기도 한다.
남체바자르에서 앞으로 전진하면 히말라야의 설봉들이 점점 크게 가까이 다가온다. 웅장하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하다. 봄기운에 녹아서인지 산행길에는 눈이 없고 해발 6,000m 이상에만 눈이 있다. 어떤 곳은 눈사태가 날 것 같이 눈이 잔뜩 쌓여있기도 하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길은 활엽수가 많아 정글 느낌이었는데 에베레스트 트레킹 길은 침엽수가 대부분이어서 전원적인 느낌이 들었다. 네팔의 국화(國花) 붉은만병초가 꽃잎을 터트릴 때여서 여기저기 붉은 꽃송이가 바람에 춤을 춘다.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다 보면 힘든지 모르게 점심 식사할 장소에 당도한다, 점심 식사하면서 가진 휴식과 얻은 에너지를 의지하여 오후 길을 걷다 보면 이내 숙박하는 롯지에 당도하게 된다. 하루의 산행을 마치면 롯지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세계 각지에서 온 등산객들과 친교를 나눈다. 롯지 식당에는 화목 난로가 설치되어 있다. 난로 가에 앉아 서로 인사도 나누고 산행 정보도 교환 한다. 내 경우는 외국어가 영 시원찮아서 외국인들과 친교가 원만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디랭귀지나 단어 하나만으로도 마음은 서로 통한다. 롯지 식당은 와이파이가 작동한다. 와이파이 사용료가 낮은 지역은 300루피(3,000원) 높은 지역은 500루피의 사용료를 받는다. 와이파이를 이용해 고국의 가족이나 지인들과 통화하기도 하고, 사진 등을 전송하기도 한다. 하루 숙박비는 10,000원, 식비는 한 끼당 8,000~12,000원 정도 한다. 가이드 비용은 한국말을 어느 정도 하는 경우 하루 30달러 한다(안나푸르나 쪽은 25달러). 핸드폰 충전비는 낮은 곳 300루피, 높은 곳 500루피를 받는다.
히말라야 트레킹 중 어려운 일은 제대로 먹을 수 없고, 씻을 수 없다는 점이다. 네팔은 불교, 힌두교 신앙을 가진 나라여서 육류 섭취가 어렵다. 식사에 반찬이 다양하지 못하다. 향신료가 입맛을 떨군다. 씻을 수 없다는 것도 불편한 사항이다. 고산지대에 오르면 기온이 낮아 추운 데다 따뜻한 물도 나오지 않고 보온 되는 샤워실도 없다.(최근에는 좋은 시설의 호텔이 건축되고 있음) 그리고 고산지대에서 머리를 감거나 샤워하면 생명에 위협이 가해진다. 나의 경우 3,000m 이상부터 양치질 외에는 면도나 머리를 감거나 샤워를 일절 하지 못했다. 수건에 물을 묻혀 얼굴과 발을 닦는 정도로 생활했다. 씻지 않으면 2~3일은 가렵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하다. 그러나 어느 시점이 지나면 아무렇지도 않다. 자연 속에서 자연인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트레킹은 평균적으로 하루에 해발 400~800m를 오르며 6~7시간 산행을 하게 된다. 아침 8시쯤 출발해서 오후 3시쯤에는 숙소에 도착하게 된다. 내가 숙박한 곳은 팍딩(2,610) 남체바자르(3,440), 텡보체(3,860), 딩보체(4,410), 로부체(4,930) 고락셉(5,170) 등이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는 롯지가 없기 때문에 고락셉에서 당일에 다녀와야 한다. 왕복 6시간쯤 걸린다.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EBC)는 해발 5,364m에 위치하고 있다. 깊게 패인 거대한 웅덩이에는 파란빛을 띠는 얼음덩어리가 빙하를 이루고 있고, 주변의 토양은 큼직한 바위와 자갈, 흙 등이 뒤엉켜 마치 천지창조 당시 혼돈했던 상황과 흡사하다. 베이스캠프는 별도의 표지석은 없고 반달처럼 생긴 직경 10여 미터 정도의 바위에 누군가 빨강 페인트로 “EVEREST BASE CAMP 5364m”라고 써 놓은 곳이다. 세계 각처에서 온 등산가들이 인증샷을 하려고 줄지어 서 있다. EBC에서 3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10여 개의 텐트가 설치되어 있는데 정상에 오를 등반가들이 훈련하는 곳이란다. 그곳에서 한 달 이상 훈련하고 정상에 도전한다고 한다.
트레커들의 최종 목적지는 칼라파타르이다. 칼라파타르는 에베레스트 봉우리를 비롯하여 주변의 고봉들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같은 봉우리이다. 그곳에 오르면 히말라야 산맥에 줄지어 늘어선 고봉들을 파노라마처럼 조망할 수가 있다. 높이는 5,545m인데 푸모리(7,165), 눕체(7,861), 에베레스트(8,848), 로체(8,501), 아이슬랜드피크(6,189) 등의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칼라파타르가 고락셉에서 고도 375m 오르는 코스이지만 만만치는 않다. 산소가 희박하기 때문에 숨이 가빠서 빨리 오를 수가 없다. 몇 보 걷다 쉬다를 반복하며 2시간여를 올라야 한다. 다행히 머리가 아프거나 가슴 통증이 있거나 구토 증상은 없었다. 다리가 아프다는 느낌도 없었다. 다만 칠순의 노인이어서 그런지 숨이 많이 가쁘고 힘겨운 느낌은 있었다. 칼라파타르에 올라 준비해 간 태극기를 펼쳐 휘날리며 할렐루야를 외치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에베레스트를 처음 등정한 힐러리경은 “내가 에베레스트를 오른 것이 아니라 에베레스트가 나를 오르도록 허락했다”고 했다는데, 내 경우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으로 이곳까지 오르게 되었다고 믿어졌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칼라파타르에서 가이드가 넌지시 웃으며 말한다. “대단하시네요. 사실은 노인이라 제대로 오를 수 있을까? 체격도 왜소한데 도중에 포기하기 쉽겠다고 생각했어요.” 가이드는 나의 안내를 맡으며 내심 완주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예상을 깨고 칼라파타르까지 무사히 오르니 대견해 보였나 보다.
하산 길은 수월했다. 물론 하산 길이라 해서 내리막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내리막길이지만 만만치 않은 오르막길도 종종 있다. 산행 중 심한 고산증세는 없었지만 깊이 잠들지 못하는 점, 식욕부진 등의 증세는 있었다. 산행 중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네팔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기도 하고, 고산증으로 식욕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빨리 하산해서 식욕도 되찾고 고생도 끝내고 싶었다. 일정계획에는 4일 동안 하산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3일로 단축하자고 가이드에게 제안했다. 내리막길임을 감안하여 충분히 해낼 수 있으리라고 자신했다. 가이드는 “무리일텐데요”한다. 하지만 나는 완강하게 하루를 단축하자고 졸라댔다. 가이드는 염려하는 듯하면서도 이내 동의했다.
단축한 하루의 시간을 메꾸기 위해 하산 속도를 높였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었다. 평상 속도를 벗어나 가속을 가하니 체력 소모는 심했고, 피로감도 가중되었다. 주변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여유를 상실했고, 오가는 사람들과의 인사나 친교도 할 수 없었다. 체력 안배가 무너진 데다 하산 마지막 한나절은 오르막길이어서 아주아주 힘들었다. 비행장이 있는 루크라에 당도했을 때는 어둠이 깔린 시간이었고 기진맥진이었다. 산행을 시작할 때는 <자만하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수월하게 트레킹하는 동안 은근히 자만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교만에는 멸망이 따르고 거만에는 파멸이 따른다”는 성서의 교훈을 잠시 망각했었다. 하루를 단축함으로 얻은 것(시간+비용)보다 잃은 것이 더 많은 것같아 후회막심이었다. 그래도 칠순의 나이에 다치지 않고, 탈없이 5,550m 고지대까지 다녀온 것은 장한 일이었고, 또한 성취감, 승리감도 느낄 수 있는 일이었다.
금번 에베레스트 산행에는 또 다른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히말라야의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에 담는 일이었다. 안나푸르나, 마르디 히말, 랑탕 등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에베레스트 사진을 더하여 히말라야 사진 전시회를 갖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설산 야경을 담기 위해, 머리 위에서 반짝거리는 별과 은하수를 담기 위해, 일출과 일몰의 장면을 담기 위해 낮밤으로 활동했다. 구름 없는 하늘을 살피느라 자다가도 수시로 깨어 밖을 내다보아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충분한 수면을 취할 수 없었고, 일반 트레커들보다 에너지 소비도 많았다. 그런데도 고령의 나이에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탈없이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마쳤으니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이 인도하셨고 붙들어주셨고 도와주셨다. 좋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를 드린다. 익산노회 원로목사 최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