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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아시나요?

신솔문 (전북동노회,임실전원교회,목사) 2024-08-02 (금) 08:55 1개월전 110  


자연 세계에서도 휴먼드라마가 같은 감동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사람에게서 감동을 받듯이, 자연 세계 한구석에서 묵묵히 자신의 삶과 역할에 충실한 생물에게서도 비슷한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구 대기 속의 탄산가스의 농도는 인간의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조금만 변해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학자들이 대기 중의 탄산가스 농도에 민감한 모양입니다. 예를 들어 금성의 표면과 대기는 많은 탄산가스 때문에 고온과 고압으로 끓고 있어, 생명 부지하기가 곤란한 환경이랍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옛날 지구의 대기도 금성의 대기와 비슷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대기 중의 탄산가스를 제거하고 조절하는 역할을 해서, 오늘날 같은 파란 하늘과 상큼한 공기, 싱싱한 초원을 우리가 볼 수 있다는 결론인데, 누가 이 엄청난 ‘화학 공장’ 역할을 해내었을까요? 도대체 그 많던 대기 중의 탄산가스는 어디로 갔을까요?

연구 결과에 의하면, 그 많던 탄산가스는 세계 도처에 있는 석회암들에 담겨있다 합니다. 석회동굴이 있는 지대나 흔히 보는 대리석 등에 그때의 탄산가스가 잡혀있는 셈이지요. ‘무명으로’ 이 엄청난 작업을 한 자들은 누구일까요? 다름아닌 조개류나 산호류입니다. 눈에 띄지 않는 바다 속에서 탄산을 탄산칼슘에 잡아넣는 역할을 묵묵히 수행한 수많은 조개류와 산호류들의 업적이 그런 석회암층인 것이지요.

드러나지 않는 바닷 속에서 지금도 ‘묵묵히’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에서, 이 사회 음지에서 선한 일과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감당해내는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숭고함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제대로 따지고 보면, 우리 인류는 그들에게 큰 신세를 지고 있는 셈이지요.

방금전 <TV는 사랑을 실고>라는 프로그램에서 적잖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마 이 프로그램 내에서도 손꼽을만한 경우였던 같아요. 아나운서 정미홍씨가 이십여 년 만에 대학 1학년때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준 어떤 선배를 찾는 내용이었습니다. 70년대 후반 독재정권에 대항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관심 같다가 명문대에서 제적당한 청년이었지요. 자주 투옥되었던 사람이라 그 후 전개된 격동의 시국을 겪으면서 혹시 잘못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과 호기심을 잔뜩 자아내는 사람이었습니다. 정미홍씨도 그런 걱정을 하구요. 리포터가 찾기 시작했을 때, 제가 옆 사람에게 ‘저 청년, 목사님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렇게 추정한 근거는 살벌했던 유신 말기에 그런 운동의 전면에 나섰던 자들 중에 우리 기장 교회 청년들이 많았기 때문이었고, 회고담에 그 청년이 신자인듯한 암시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적당한 학교에 복학해서 졸업했다는 말을 듣고 내 추정이 빗나갔다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현재 목사님이시더라구요. 그것도 우리 기장교회 목사님말입니다.

이야기가 좀 길어졌는데요. 저는 종종 어려운 시절의 “그때 그 사람들”을 생각하곤 합니다. 위의 목사님같은 분들이지요.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또는 우리 민족을 위해 자신의 특권을 포기하고 역경의 길을 묵묵히 간 사람들 말입니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생태계를 조절하는 조개류와 산호류가 있었기에 오늘날 같은 파란 하늘과 상큼한 공기, 싱싱한 초원을 우리가 향유할 수 있듯이, 그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나마 민주화되고 인간화된 사회 분위기를 향유할 수 있는 것이지요.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이 그 은혜를 너무 빨리 쉽게 잊거나 왜곡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살기 좋고 아름답게 가꾸는 다른 피조물들의 노고를 우리 인류가 뻔뻔하게 간과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올해엔 이런 분들의 노고를 망각하지 않으려 합니다.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음으로 양으로 우리에게 은혜 끼치는 사람들에게 예우를 갖추고 싶어요. 이랬을 때, 빚진 자의 겸손으로 저 또한 그들처럼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런 삶은, 신비한 섭리로 우리의 삶을 가꿔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 있는 것과 직결되어 있답니다.

[註]

1999년 1월 7일에 작성한 원고입니다. 아마 교회 학생회 회지에 낸 글인 것 같습니다. 그때는 이산화탄소(탄산가스) 문제를 여유있게 이야기했었군요. 지금은 발등의 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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