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사무엘하 15:13-23
13 전령이 다윗에게 와서 말하되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 한지라 14 다윗이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중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그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 우리를 해하고 칼날로 성읍을 칠까 하노라 15 왕의 신하들이 왕께 이르되 우리 주 왕께서 하고자 하시는 대로 우리가 행하리이다 보소서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하더라 16 왕이 나갈 때에 그의 가족을 다 따르게 하고 후궁 열 명을 왕이 남겨 두어 왕궁을 지키게 하니라 17 왕이 나가매 모든 백성이 다 따라서 벧메르학에 이르러 멈추어 서니 18 그의 모든 신하들이 그의 곁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 및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모든 가드 사람 육백 명이 왕 앞으로 행진하니라 19 그 때에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쫓겨난 나그네이니 돌아가서 왕과 함께 네 곳에 있으라 20 너는 어제 왔고 나는 정처 없이 가니 오늘 어찌 너를 우리와 함께 떠돌아다니게 하리요 너도 돌아가고 네 동포들도 데려가라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21 잇대가 왕께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내 주 왕의 살아 계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 하니 22 다윗이 잇대에게 이르되 앞서 건너가라 하매 가드 사람 잇대와 그의 수행자들과 그와 함께 한 아이들이 다 건너가고 23 온 땅 사람이 큰 소리로 울며 모든 백성이 앞서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건너간 모든 백성이 광야 길로 향하니라
2. 묵상
압살롬하면 애니메이션 캔디의 “테리우스”가 그려집니다. 긴 머리의 미남들을 테리우스라고 하는데 압살롬이 딱 그런 모습입니다(9일 성서일과 14:25~26). 일 처리도 용의주도합니다.
암논을 살해한 후 그술에 도피했을 때 요압의 도움으로 2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여전히 다윗의 외면을 받게 되자 요압을 압박하여 다윗을 면담하고 복권(復權)을 얻어냅니다. 정치 활동을 본격적으로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압살롬은 먼저 호위병을 강화합니다(10일 성서일과 15:1). 그리고 아버지 다윗에게 향하는 백성들의 마음을 가로채고 백성들의 환심을 얻는데 열중합니다.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고 판단되자 헤브론에서 자신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고 이것이 대세인 것처럼 여론을 조작합니다. 그래서 점점 압살롬 세력에 합류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러한 압살롬의 심리전은 다윗의 사람들을 압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반란을 진압해보기도 전에 예루살렘을 서둘러 떠납니다. 요단강 너머로 피신하기 위해 감람산을 오를 때 다윗은 머리를 가리고 슬피 울며 맨발로 걸어갔으며 일행들도 모두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따라 올라갑니다. 어쩌다 다윗이 이렇게까지 처량해졌을까요?
한 공동체가 두 세력으로 분열되고 대립을 하게 될 때 구성원들은 한쪽 편에 설 것을 요구받습니다. 대부분은 대세(大勢)를 따라가며 이때 본색이 드러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압살롬이 대세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버리지 않는 의리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블레셋 사람이면서 자기 동포 600명과 함께 다윗의 부하가 된 잇대 장군이 그렇습니다. 잇대 장군이 다윗의 피난 행렬을 호위하자 다윗은 장군에게 자신을 따라오지 말라고 권유합니다. 살길을 찾으라고 배려해주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잇대는 단호하게 주님 앞에서 자신의 결심을 밝힙니다.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21절 후반절). 이러한 의리는 나오미와 함께 하려던 룻을 떠올리게 합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룻 1:16~17).
주님과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의리가 필요합니다. 2세기 후반 서머나교회의 폴리캅은 목숨을 위협하며 그리스도를 배신하라는 회유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이제까지 86년간 그분을 섬겨 왔는데 그분은 한 번도 나를 모른다 하지 않으셨소. 그런데 어떻게 이제 와서 내가 그분을 모른다 할 수 있겠소!”.
3. 기도
하나님, 대세가 아닌 대의를 따르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인생의 대의가 주님 사랑임을 고백하며 의리 지키는 성도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註] 원고 올리는 것, 조속히 마무리 지었습니다. 『말씀과 삶』 소개하는 일을 일단락 짓고 싶어서요. 한꺼번에 올려 죄송합니다. . . 신앙교훈의 흐름을 생각하면서 원고 7개를 고르고 순서 정하고 올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날 것’이라고 했던 이 원고도 편집자님 의견이 반영된 것이었네요.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