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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모래 위의 발자국

신솔문 (전북동노회,임실전원교회,목사) 2024-10-15 (화) 13:46 6개월전 618  

*


이 사진은 어느 성도가 꿈에서 본 풍경입니다.

주님과 함께 해변을 걷습니다. 낭만적이네요.

바닷가 거닐다가 하늘을 보는데

주님께서 성도의 삶을 표현하는 사진을

하늘에다 슬라이드처럼 보여주십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찬송가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가사입니다.

하늘 모두를 종이로 사용하고 바닷물 전체를 먹물로 삼아서

하나님의 사랑을 기록하지만

그 사랑이 너무 커서 다 기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스케일을 가진 가사입니다.

맞습니다.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초대형 스크린은

하늘일 수밖에 없지요.

*


주님께서 하늘에 보여주신 성도의 인생 발자국은

기본적으로 두 개였습니다.

이 발자국이 한 사람의 것으로 보이시면 곤란합니다.

한 사람이 이런 발자국을 남기고 걷고 있다고 상상해보시면

이유를 아시게 될 겁니다.

두 발자국이니

그 성도의 인생과 동행하는 사람들은 없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소중한 가족과 교인들 그리고 친구들이 있었겠지요.

다만 주님이 보여주시는 사진은

주님과 그 성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다른 발자국은 생략되어 있습니다.

발자국 하나는 주님 발자국, 다른 하나는 성도의 발자국입니다.

주님과 손을 잡고 갔는지 그냥 떨어져서 걸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성도의 인생길에서 이상하게 찍힌 발자국들이 보였습니다.

*


주님 발자국은 고른데 성도 자신의 발자국은 무질서했습니다.

지그재그로 걷다가

가다 서기를 반복하고

뱅뱅 돌며

멀리 떨어졌다가 다시 복귀하기도 합니다.

저런 발자국이 보일 때가 언제인가를 성도가 생각해보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막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였습니다.

아직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들쑥날쑥했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발자국이 초보 신자 때만 아니었습니다.

믿음이 떨어지거나 방심할 때

지그재그로 걷고 주님과 멀어졌다가 다시 다가오고 그랬습니다.

감사한 것은 이때도 주님은 흔들리지 않고

든든하게 기다려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떠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도 이런 때가 있었지요?

”주님 죄송합니다.

그때 버리지 않으셔서 감사합니다!“

*


그런데 인생 사진 중에는 더 무질서한 것이 있었습니다.

내 발자국만 뒤죽박죽이 아니라 주님의 발자국도 그랬습니다.

주님도 헤매는 때가 있는 모양입니다.

주님의 발자국도 지그재그이고

뒤로 후퇴하기도 하며

모래가 깊이 파일 정도의 격한 움직임도 보였습니다.

그 성도가 안쓰러운 마음을 담아 주님을 위로합니다.

”이때는 주님도 헤매셨군요“

주님께서 웃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저 때가 어떤 때인지 생각해보라 . . . 모르겠니?

우리가 함께 춤추던 때란다”


그러고 보니 성도에게 신나는 일이 생겼을 때, 소망하는 것이 이루어졌을 때였습니다. 원시 부족들이 모닥불을 돌면서 춤추는 것 같은 마음일 때였습니다. 그때 주님도 함께 기뻐하시면서 춤을 춰주신 것입니다.

“주님, 고맙습니다!”

*


그런데 은근히 걱정했던 일을 보여주는 발자국 사진이 마침내 나타났습니다.

살다 보면 주님이 나를 버리시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들 때도 있지요.

어릴 때 외국으로 입양된 아이들이

자라면서 곰곰이 생각하는 것은

‘친부모님이 왜 날 버리셨을까?’하는 의문이라고 합니다.

‘부모님 인생에 내가 그렇게 짐이 되었나?’

그러나 육이오전쟁 후 그렇게 버려진 아이들은 극히 드뭅니다.

잃어버려서 그랬지요.

1983년 6월 말에 첫 방송을 한 KBS의 “이산가족찾기” 기억나시나요.

한두 번 계획한 프로그램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약 140회 정도 진행되었습니다.

육이오전쟁 후유증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아이를 놓치고 못 찾았거나 너무 가난해서 그랬던 것이지요.

입양된 아이들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은 살아오면서 크든 작든 배제되거나 버림받는 경험을 합니다.

그 성도는 이 발자국 사진을 보면서 그러한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발자국이 하나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저를 버리셨었군요?”

주님께서 빙긋이 웃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발자국을 잘 살펴보거라”

자세히 보니 발자국이 사실은 두 개였습니다.

눈이 많이 쌓인 길을 갈 때 앞 사람의 발자국을 그대로 밟고 가듯이

주님의 발자국을 성도가 그대로 밟고 갔기 때문에

얼핏 한 발자국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어떤 시기였는지 잘 생각해보니

주님 뜻대로 신실하고 성실하게 살았던 시기였습니다.

주님께서 칭찬하셨습니다.

“너 그때 기특했다”

성도 여러분에게도 이런 시절이 많았을 겁니다.

그때의 초심을 생각하시고

지금도 그런 시절이 되길 소망합니다.

*


그런데 이런 시절과 비슷한 발자국 사진이 또 보였습니다.

두 발자국이 겹친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정말 한 발자국이었습니다.

주님이 나에게서 떠나신 일이 드디어 발생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매우 어렵고 힘든 시기였고요.

주님께 버림받은 느낌이 들었던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지나간 일이지만 성도는 주님께 섭섭한 마음을 토로합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내 발자국밖에 없네요.

내가 주님을 필요로 할 때 왜 저를 떠나셨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소중한 아가야,

나는 너를 사랑했고 결코 널 떠난 적이 없단다

너의 시련의 때, 고난의 때

너는 발자국 하나가 너의 발자국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내 발자국이야.

그때 내가 너를 업고 걸었어!”

지쳐서 걷지 못하는 성도를 업고

주님은 저 ‘바다’를 건너신 것입니다.

*


그리고 고통의 터널에서 구출해내신 것입니다.

*


그래도 고난은 고난입니다.

또 그런 일을 겪으면 휘청거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때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마시고 카펫 비유를 생각하십시오.

전통적인 카펫의 앞면의 모양, 참으로 정교하고 아름답습니다.

반면에 뒷면은 혼란스럽지요.

하지만 뒷면과 연결된 앞면은 아름답습니다.

우리 인생 카펫도 그렇습니다.

고난으로 인해 현실이 구질구질하고 뒤죽박죽이어도

믿음으로 견디고 삭히면

하나님이 보시는 인생 카펫의 이면은

아름다운 모양이 피어나는 것을 믿으십시오.

“모래 위의 발자국” 이야기가 대언(代言)하는 성경 말씀은 오늘 본문(신명기 1:29-33)입니다.

성도 여러분 삶에서 인생길 함께 동행하시고

나에게서 종종 보람을 느끼시고

내가 방황할 때는 기다려주시고

기쁠 때 함께 춤추시고

“우리가 싸울 때 함께 싸워주시며”

쓰러질 때 업고 가는 분이 있으십니까?

있지요.

성도 여러분의 부모님이고

우리 주님이십니다.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30절)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고(30절), “광야에서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31절)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모래 위의 발자국>은 우리 신앙생활의 여러 국면을 잘 그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여러 상황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점은 어떤 상황에서든 주님께서 동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37-39)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잊지 마시고 주님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신앙의 길 완주하시길 소망합니다.

[註]

“모래 위의 발자국” 이야기에는 ‘속편’이 존재합니다(제 글 중 "모래 위의 발자국 '풀 버전'" 참고). 전편과 속편을 합친 설교문을 작성하였습니다. 지난 주일예배(10월 13일)에서 나누었고요. 이야기와 발자국 사진이 완전히 부합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비슷한 것을 인터넷에서 빌려 왔습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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