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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6) - "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이 없이는 "

최부옥 (서울동노회,양무리교회,목사) 2025-02-16 (일) 16:15 2개월전 64  

본문) 막 10:13~16, 신4:32-40, 고전 3:18-23


오늘은 주현절 여섯째 주일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추운 겨울을 보내는 듯하다. 한강이 얼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기상대에서는 기상 이변에 따른 지구촌의 기후변화의 틀이 크게 변화되고 있음을 말한다. 예전엔 삼한사온(三寒四溫)이 정설이었는데, 이제는 짧은 봄과 가을을 맛본 후에는, 긴 겨울과 긴 여름을 맞이하는 구도가 형성되리라고 예측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그러다 보니, 지금의 지구촌 생태계(生態界)도 덩달아서 크게 변화되고 있다. 


그중 한반도 주변 해역에는 예전에 없던 물고기 떼의 이동이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따뜻한 나라의 물고기들이 우리 해역으로 대거 옮겨 오고 우리 주변의 것들이 우리 곁을 떠나 북쪽으로 떠나가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가 어찌 바다 생태계에 국한된 걸까, 아니다. 식물들도 대거 아열대 형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과도기 증상일까? 꼭 그렇지마는 아닌듯하다. 아무튼 좋으면서도, 자연과 환경을 통한 불안스러운 순간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중에도 여전히 반가운 소식은 봄이 오는 소식이다. 특히 나라가 내란의 후유증으로 어수선하고 국론도 분열되어 서로 싸우는 듯하지만, 그런 중에 역시 반가운 소식은 추위의 계절은 가고, 산천을 덮을 아름다운 봄은 찾아온다는 소식이다. 며칠 전, 지인이 보낸 한 메시지 중에서, 이런 내용의 글이 있었다. ‘겨울이 착한 건 꼭 봄을 데리고 와서요!’ 얼마나 멋진 논평인가! 사람이 무엇을 보고 사느냐에 따라 인생도 달라지는데, 봄을 데리고 올 착한 겨울을 생각하며 겨울의 안겨 준 모든 불편함을 넘어설 시각을 제시한 것은 정말 놀라운 감각이었다. 

 

얼마 전, 우리 집안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중2를 둔 아들 부부가 그 딸 아이 때문에, 많이 마음고생을 했던 모양이다. 다행히 그 고비를 넘긴 후, 아비가 그 힘든 때를 어떻게 넘겼는 지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예전에 그 아이가 어렸을 때, 부모인 우리를 무척이나 기쁘게 했던 그때를 생각하면서, 그 힘들게 하던 아이를 용서하면서 그때를 참고 견디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 말을 듣던 우리 가족들은 그 아비의 말에 깊은 공감을 나누기도 했다.  


마침 오늘의 세 본문 말씀을 보면, 삼위(三位)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그의 백성들의 모양새와 그런 자들을 마주 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대응하시는 내용이 매우 대조적(對照的)으로 맞물려 나타난다.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람들은 온전치 못한 미숙한 태도와 마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자들을 상대하시는 하나님은 그런 그들의 문제점을 지적하시면서 올바른 마음과 대응할 자세를 제시하신다. 


성자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이 아이들에게 보여 준 태도에 문제점을 지적하시면서, 그들을 꾸짖으시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구약의 신명기에서는 이스라엘이 성부 하나님께서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시고 구별하셔서 오랫동안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주신 일들을 잊어버리고, 여호와 이외의 다른 신을 찾게 될 일들을 우려하시면서, 그러기에 오직 여호와만을 섬겨야 할 것인지를 주문하는 말씀을 주신다. 서신서에서는 성령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보다도 세상의 지혜와 인간의 자랑을 앞세우면서 자체 시험에 빠져든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어리석은 행태를 매우 신랄하게 지적하신다. 


여기에서 보면, 인간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어리석다. 하지만 그런 어긋난 모습을 인간 자신은 잘 모르고 산다. 그저 대부분은 동류들과의 비교하면서 자신의 위치나 역할을 찾아서 살아가려는 경향이 대부분이다. 자신이 비교 대상보다 좀 낫다고 느끼면 우월감(優越感)을 갖게 되고, 못하다고 느끼면 열등감(劣等感)에 빠져 산다. 자신에게 있는 존재의 독자성과 그 고유한 매력을 보지 못하고 사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사는 것이다. 만일 생을 그런 흐름으로 평생 살아가게 된다면, 그는 결국 어떤 존재가 될까? 자기가 없이 평생을 살다가 간 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아찔한 느낌이다. 


그러기에 이런 인간의 모순된 모습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그것은 자기 스스로 극복하기란 불가능하다. 다만 확실한 길은 있다. 자신을 존재하게 한 메이커(Maker)를 찾으면 된다. 곧 자신을 생존하게 하고, 생명을 부여하시며, 이 세상에 보내셔서 살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면 된다. 그래서 자신이 누군지, 왜 이 세상에 이렇게 살게 하셨는지를 묻고 듣게 되면 필요한 답을 얻게 된다. 그래서 자신에 부여된 소명(召命-calling)을 확인하면 된다. 


이런 일은 자기를 낳아 준 부모도 해결해 주지 못한다. 친구도 못하고, 배우자도 못하며, 그 어떤 인간도 답해 주지 못한다. 어떤 책도 해결해 주지 못한다. 어떤 물질이나 소유도 더더욱 답해 주지 못한다. 오로지 모든 생명과 존재의 근원이신 조물주만이 나에게 말씀해 주실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가 나에게 전해주신 말씀과 명령을 지켜 행하면 된다. 그러면 어리석음을 벗어날 수 있고, 평안과 은혜를 입고 평생을 살 수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인간은 처음부터 믿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니, 아예 믿지 말라. 다만 진심으로 사랑만 하라. 반면에 조물주 하나님만은 믿어라. 그리고 진실하게 깊이 사랑하라’. 왜 그런가? 이유는 분명하다. 인간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하는 그 순간부터, 그는 나에게 배신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그가 본래 악해서거나 가진 불신의 마음 때문이 아니라, 그가 안고 있는 한계(限界)성 때문이다. 이 점에서는 부모나 자식이나 배우자나 친구 모두도 예외는 없다. 그러기에 사랑만으로 관계 유지를 보전하는 것이 지혜다. 


반면에 하나님은 절대적 믿음의 대상이어야 한다. 오직 주님만이 내가 목숨 걸고 믿고 의지할 분으로 섬기면 된다. 그럴 때, 그는 나의 목자요 피난처요 산성이요 방패가 되신다. 그리고 당신을 의지하는 자를 향해서는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보여 주시기 때문이다. 그렇다. 오직 그만이 내가 마음껏 믿고, 마음껏 사랑하며 지낼 수 있는 분이시어야 한다. 그러면 내 삶의 여정이 언제 어떤 상황을 만나게 되더라도, 견고한 삶을 누리며 살게 된다. 


1. 복음서 / 막10:13-16 /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


천국의 주인이신 성자 예수께서 인간들 전 세대 중에서 어린아이 세대를 천국에 가장 가까이 있는 세대로 언급하신 말씀은 의미가 매우 크다. 이는 다른 세대들인 청소년 세대, 청년 세대, 장년 세대와 노년 세대를 향한 또 다른 경고의 말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 세대에 비하여 어린아이 세대가 천국에 가까이 있고, 또 들어갈 확률(確率)이 훨씬 큼을 말씀하신 까닭은 무슨 연유일까? 이를 위해 우선 말씀의 배경부터 살펴보자. 


1) 예수의 제자들은 놀랍게도 스승 예수와는 달리, 부모의 손에 이끌려 온 아이들 일행을 환영하지 않았다. 아니, 꾸짖어 몰아내기조차 했다(13절). 제자들의 이런 태도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우선은 철부지 아이들로 인해 예수님이 번거로움을 당하지 않게 보호하려는 마음도 있었음을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당시의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때문이 원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어린이는 대수롭지 않게 인식되었고, 천대받았으며, 여러 면에서 이등(二等) 국민 취급을 당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2) 종교적 원인도 큰 이유였다. 당시의 바리새인은 공로와 업적 사상이 컸다. 그 점에서 아이들은 내놓을만한 것이 없는 빈손 그룹이었다(눅18:12참조). 그 바람에 일찍 죽은 아이의 구원 문제도 서기관들 사이에서는 의문시되기도 했을 정도였다. 


3) 하지만 더 놀라운 일은 그런 빈손 세대인 어린아이를 뜨겁게 우대(優待)하시면서, 그 어떤 기성(旣成) 세대에 비하여 훨씬 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우선 순위에 있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당신을 향한 출입을 제지한 제자들을 향하여 노하며 꾸짖기까지 하신 것이다(13-14절). 그때의 주님 모습은 마치 마귀를 책망하실 때의 바로 그 모습일 정도였다. 그만큼, 엄중하게 아이들 무시한 일을 문제시하신 것이다. 


4) 그러면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선언하시면서, 당신을 찾은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일일이 안수하시고 축복하시기까지 하셨다(15-16절). 실로 기존의 격식을 깨뜨리는 엄청난 파격(破格)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아이들의 손을 들어준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5) 분명한 것은 아이들이 죄가 없기 때문이라거나, 깨끗하기 때문이라는 점은 아니라는 것이다. 상대적이지만, 어찌 아이들이라고 무흠(無欠)하겠는가? 그럼에도 오직 아이들만이 갖고 있는 결정적인 강점은, 바로 활짝 열린 수용성(受容性)에 있다. 아이들은 어른들과는 달리 모든 것을 주는 대로 받아들인다. 이 점은 이미 복잡한 마음을 품고 사는 성인들로서는 도저히 본받을 수 없는 특별한 품성이다. 그런 심적 구조 때문에, 아이들은 교육과 훈련을 받고 산다. 


6) 사실 믿음이란 본질적으로 받기 위해 벌린 어린이의 빈손과 같은데, 그 점에서 아이들은 이미 천국의 온갖 좋은 것들과 풍성한 선물들을 받아들일 능력과 준비가 되어 있는 가능성을 가진 세대로 보신 것이다. 그래서 더욱 보호받고 양육 받아야 할 세대로 보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을 향한 놀라운 혜택이 이미 오래전에 주어진 사례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오늘 신명기 본문에서, 모세에게 가나안 입주를 앞두고 특별한 명령을 받는 이스라엘 백성이다. 


2. 구약 / 신명기 / ” 그런즉 너는 상천하지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오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알아 명심하고 오늘 내가 네게 명령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없이 오래 살리라 “


본문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주를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모세의 신앙 교육 내용이다. 그런데 이 교육 대상은 거의가 60세 미만의 젊은 세대들이다. 그들 조상들은 지난 40년간의 광야 생활에서(특히 가데스 바네아 경험) 모두 그들의 불신앙과 원망 때문에 여호와의 심판을 받아 죽임을 당했고, 당시 20세 미만이었던 후손들인 그들이 어린 세대로 여호와의 특별한 배려로 생존하여 광야 40년 생활을 거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된 자들이었다(민14:26-35 참조). 

 

그러기에 그들을 향한 모세의 하나님 교육은 매우 절박했다. 개인은 물론 전 민족과 이스라엘 전체의 명운을 좌우할 내용의 교육이었다. 그들의 명운은 세상의 기술 습득이나 돈벌이 운영 방식 같은 것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어떻게 철저히 지켜 사느냐에 달려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과 자신들의 탄생과 삶은 오로지 여호와의 손길에 의하여 좌우됨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교육의 핵심 내용을 살펴보자.


1) 모세는 오직 그들을 향한 여호와의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상기시키는 일에 전력을 다했다. 먼저 인간을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여호와가 행하신 일들을 상고해 보라고 명한다. 오직 큰 권능을 가진 여호와이셨기에, 그들을 애굽과 같은 다른 민족에게서 끌어내셨음을 기억하라고 했다(34-35, 37절). 그들을 교육하시고자 여호와는 하늘에서는 큰 음성을 듣게 하셨고, 땅에서는 큰 불을 보이시면서 그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음성도 듣게 하셨음을 상기시켰다(36절). 


2) 그러면서 이제 목전에 다다른 가나안을 그들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실 터인데, 이는 여호와가 그들보다 강대한 여러 민족을 그들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곳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여서 그곳을 그들의 기업으로 주시고자 하셨기 때문임을 기억하라고 요구한다. 무엇보다도 이런 놀라운 일은 오직 여호와만이 감행할 수 없는 일이기에, 이제 이스라엘은 그런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38-39절). 


3) 여호와 섬김은 단순명료하다. 오직 그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는 일이다. 그러면 그와 그의 후손이 복을 받아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에서 무한히 오래 살게 된다(40절). 이 지침을 준수한 그들은 결국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독자적인 나라를 이루어 살게 된다.


3. 서신서/ 고전3:18-23/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교회를 떠난 후, 교회 안에 교역자 중심의 경쟁적 파벌이 형성되어 내부 분열을 겪으며 세상적 지혜와 교만이 활개를 치고 있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바울은 예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선포를 믿음의 확고한 토대로 제시하였다. 그와 맞서는 그 어떠한 인간들과 그의 주장은 자신을 속이는 짓이요 어리석은 자임을 드러내는 일이라는 논지를 강하게 폈다. 그러면서 주께서는 그런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고 경고하였다(20절). 


그들이 주장하는 인간 자랑에는 세상의 각종 업적이나 공로나 자랑거리들이 내재해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자리 잡을 공간이 없다. 사실 자신의 모든 것이 다 여호와의 것이며 그의 은혜의 선물임을 믿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필요한데, 그들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어른 놀이로 자신들의 주장과 기호와 생각을 관철하고자 하는 완고한 마음뿐이었다(18-23절). 역설적이지만, 성령께서 그들에게 정작 원하시는 것은 이 세상의 인간적 지혜가 아니라, 모두에게 어리석은 자가 되는 모습이었고 자기 자랑을 거두는 모습이었는데, 그렇지 못했다. 


o 주의 교회는 하나님 사람들의 거룩한 모임체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모임체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이 주도하는 곳이 될 수는 없는 곳이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절대 필요한 이유이다. 그런 자가 가능성을 가진 자들이다. 


이는 또한 나이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에, 어른 된 이들의 마음가짐은 아주 중요하다. 오직 겸손과 온유, 섬김과 낮아짐이 몸과 행실에 배어 있어야 한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이 배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은 이렇게 어린아이와 같이 열린 마음의 소유자에게 끊임없이 부어질 것임을 명심하고 살아가야 한다. 부디 이 씨름에서 승리하자.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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