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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7) - "단호함이 없이는 주를 따를 수 없다 " / 3.1절기념주일

최부옥 (서울동노회,양무리교회,목사) 2025-02-23 (일) 17:09 2개월전 55  

본문) 눅 9:57~62, 수1:1-9, 고전10:1-13 


오늘은 주현절 일곱째 주일이다. 일기가 고르지는 못할지라도, 산천에는 이미 봄이 와 있다. 색깔부터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나라는 윤석열 내란 사건 심판의 열기로 진통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역사는 묵묵히 제자리를 향하여 흘러가고 있다. 지난 주간은 5.18 민주화의 성지인 광주에서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를 하겠다고 전국에서 보수 세력들이 총집결해 와서,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한다고 억지를 부렸으나, 그것 역시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 없듯이, 헛수고만 했다고 본다. 광주 정신의 단호함과 야무짐만 맛보고 돌아갔기 때문이다. 


가장 부끄러운 점은 헌법재판소에서의 윤석열 자신의 계속적인 거짓 증언들이다. 금방이면, 다른 증인들에 의하여 거짓으로 판명될 것이 뻔한 데에도,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전 국민을 상대로 부끄러운 줄 모르고 거짓 증언을 계속한다. 특히 자기 한 사람의 권력 독점욕 때문에, 거기에 투입된 대다수의 군과 경찰과 공무원들이, 이제는 내란 전과자가 되게 된 형국임에도,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책임과 과오를 시인하면서 사과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자기들이 ‘계엄했어도, 세상은 모든 것이 다 그대로가 아니냐’라고 항변할 정도로 뻔뻔하기 그지없다. 


정말 충격적인 것은 그들 숙청 계획서의 내용이,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자비하고 잔인하다는 점이다! 그 계획대로 그들 계엄이 그때 성공했더라면, 지금쯤은 야권에 있는 온 나라의 수백 수천 명이 생명들은 잔인하게 처형(處刑) 내지 수거(收去)되어서, 그야말로 통곡과 저항에 따른 피바다를 이루게 되어-, 씻을 수 없는 지옥(地獄)의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정말 아찔하다! 그런 자들과 함께 살아온 국민으로 지내온 일이 한없이 부끄럽고 통탄스럽다. 만일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하심과 그래도 깨어 있는 국민들의 치열한 저항이 없었다면, 정말 우리나라는 큰일 날 뻔했다. 실로 천추의 한이 될 뻔한 아찔한 순간들이 지난 것이다. 


이런 중에 우리는 마침 3.1절 독립 만세 제106주년 기념 주일을 맞이한다. 우리에게 3.1절이 준 의미는 무엇인가? 소위 3.1 정신(精神)은 무엇인가? 이는 우리 국민이 지구촌에서 살아 있다는 모습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서 보여 준 사건이 바로 3.1절 만세 사건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수천 년 왕조 체제 아래에서, 왕과 그 지배 체제의 휘하에서 명령과 지휘에 따라 죽고 살아왔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민(民)’이란 존재가 있는지 없는지도 거의 드러나지 못했다. 


하지만 나라가 외침(外侵)에 의하여 망하고 왕조가 무너지며, 일제의 치하와 탄압이 노골화되기 시작하자, 이에 비로소 자신이 이 나라의 진짜 주인임을 깨닫고, 그 어떠한 부당한 외부의 억압과 간섭에서 해방되고 자유 하며 독립하고자 하는 자주적(自主的) 의지를 밑바닥에서부터 분출해 내기 시작한 사건이 바로, 3.1절 독립 만세 사건이었다. 그 단호한 의지를 온 천하에 드러낸 선언서가 바로 3.1독립선언서이었다. 


이 일로 우리는 즉각 해방되거나 자유민이 된 것은 아니었으나, 그때의 표출된 정신은 우리가 비로소 소수의 왕조 국가에서 벗어나, 민이 주인이 되고, 모든 주권이 국민에게 부여된 민주 공화국(共和國)으로서의 근간을 마련한 획기적인 발판을 마련하였다. 나라의 헌법 정신의 토대를 이룰 그 정신을 거기에서 마련한 것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들은 세계인이 인정할 만큼의 자주적이고 독특한 한민족의 언어와 정신과 문화를 가진 나라를 이루며 지내왔다.


이런 놀라운 저력과 역사를 가진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이번에 그토록 어이없고 횡포한 어둠의 우상 종교와 폭력 세력들이 또다시 망가뜨리려고 했으니, 이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특히 이 과정에서 그런 패역한 주술(呪術) 세력에 우리 개신교회의 극우 보수 세력들이 한 패가 되어 서로 패 가름 놀이를 하고 있다. 


저들은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고착화시키며, 동족을 더욱 불신하며 미워하고 싸우게 하려는 마귀 짓을 하고 있다. 이는 그들의 선조로서, 1948년 이래 약 6만 여명의 제주도민을 대학살 했던 주역인 서북청년단의 후예들로서, 여태껏 회개하지 않은 채 한국교회 주류 세력을 오랜 세월 장악하고 지내온 까닭이다. 그 바람에 북한을 복음의 눈이 아닌 적과 원수로 보는 한편, 정치적으로는 이용과 견제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오류를 여태껏 구사하며 지내왔다. 그런 폐쇄적인 의식에서 어찌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발상들이 나올 수 있겠는가? 


이는 분명히 역사의 주요 우리 민족의 주인이신 사랑의 하나님을 좇는 자들의 온전한 모습일 수 없다. 오히려 주님의 거룩한 이름을 훼손하는 짓들이 분명하다. 그동안 구축해 온 교회의 위상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훼방꾼의 모습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제자들의 모습일 수 없다. 이런 모습이 지속되는 한, 한국교회의 미래는 암담(暗澹)할 수밖에 없다. 교회나 목회자를 믿지 말고, 오직 예수만을 제대로 믿으라고 외칠 수밖에 없을 정도가 되고 말았다. 


그러기에 이제 우리는 오늘 주시는 세 본문 말씀을 다시 보면서, 우리의 흐트러지고 망가진 신자와 교회의 모습을 되찾고 회복하는 계기를 찾도록 해야 하겠다. 


1, 복음서 / 눅9:57-62 / “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


본문은 예수를 따르는 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 지를 다양한 모습으로 규정해 주는 말씀이다. 나름대로 원해서 자원(自願)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고, 주님이 원하셔서 불러내시는 자들도 있다. 그리고 부르심을 받고도 즉시 따라 나서는 이들도 있으며, 개중에는 조건부로 따르겠다는 자들도 있다. 


물론 이 모든 경우들은 나름의 이유와 타당성을 갖고 있지만, 그러나 그런 자들을 향해서 주께서 공통적으로 주시는 요구는 매우 단호하다. 한마디로 인정사정(人情私情)없는 엄격함과 타협이 허락되지 아니한 절대적 말씀을 주셨다. 곧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손에 쟁기를 잡은 자)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선언하셨기 때문이다(62절). 


사실, ‘뒤를 돌아보는 일’이란 말씀이 마음에 걸린다. 그 옛날 소돔과 고모라가 하늘의 불벼락을 맞아 멸망할 때, 롯의 가족들이 받았던 ‘도망하여 생명을 보전하기 위하여, 돌아보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라’는 천사의 당부를 롯의 처(妻)가 순종하지 못하고 끝내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그만 소금기둥이 되고만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창19:17-26 참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으로 택함 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오직 부르시고 택하신 하나님 외에는 그 어떤 대상도 더 이상 내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단호한 결단과 다짐의 새출발이 내 삶에서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진정한 힘은 바로 그런 단호한 믿음과 신실함을 좇을 때, 거기에서 솟아 나오는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통하여 맛보게 된다. 


1) 주님은 ‘어디를 가시든지 나는 따르겠다’는 자를 향하여, 당신에게는 머리 둘 주거 공간 정도도 없는 가난한 자임을 천명하심으로써, 그의 예수를 향한 물질적 기대나 세상 부귀의 어떠한 기대감도 완전히 버리도록 요구하심을 발견하게 된다(57-58절). 


2)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도록 부름을 받은 자들에게서 부모 형제 등의 가족은 과연 어떤 존재들인가? 인간적 관계를 결코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사정이 겹칠 경우에는 무엇이 우선적(優先的)인 것인지에 대하여, 주님은 매우 엄격한 지침을 주신다. ‘선(先) 하나님 나라’요 주의 일이다‘는 점이다(59-61절 참조). 이점에서 제자들은 냉철한 결단력을 드러내야 한다. 


2. 구약 / 수1:1-9 / “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


본문은 모세의 후계자로 부름을 받은 여호수아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이끌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될 때, 지도자로서 그가 갖추고 행사해야 할 요인이 무엇인지를 여호와께서 필요한 지침(指針)들로 내려주신 내용이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그 분부를 잘 준수하여 가나안에 이스라엘 나라를 이루게 되는 대업을 이룬다.


1) 지도자로서 가장 중요한 마음은 무엇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주셨다고 약속하신 말씀과 지침을 온전히 믿고 순복(順服)하는 태도이다. 그가 여호와로부터 받은 언약들은 이러했다 : 


’내가 이 요단을 건너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2절). ’내가 너희 발바닥으로 밟은 곳은 모두 너희에게 주었으니 — 너희 영토가 되리라‘(3-4절).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대적할 자 없으리니, --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 강하고 담대하라 오직 강하고 담대하라‘(5-7절).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6절)


2) 지도자로서 마음과 생각을 굳게 지켜낼 행동의 지침도 내려주셨다. 그것은 모세를 통하여 그에게 명령하신 율법을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다 지켜 행하는 일이다(7절). 그리고 그 율법책(冊)을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주야로 묵상하며 그 내용대로 실천하며 사는 일이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내려주시는 형통(亨通)의 삶을 부여받고,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며 살게 되는 일이다(8-9절). 


3. 서신서 / 고전10:1-13 / “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


본문은 여러 가지 문제로 믿음 생활에서의 영적 혼란과 다양한 어려운 시험들에 빠져서, 고통과 방황을 겪고 있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책망하면서도 격려하기 위하여 그들의 신앙 조상이었던 예전의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했던 상황들을 회상시키면서, 그들에게 시험을 극복하는 데에 필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이를 위하여 바울은 먼저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과정에서 민족적 세례와 성찬을 이미 받았던 이들이었음을 먼저 밝혀준다. 홍해 도강(渡江)을 통해서는 그들은 민족적인 세례를 받았고, 광야에서의 반석을 터뜨려 나온 물을 통해서는 성찬 음료도 마셨음을 밝힌다(1-4절). 그런데도 그들 다수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못하고, 믿음으로 응답하지 못하면서 원망과 불신과 우상숭배 행위들을 통하여 여호와의 징벌을 받게 되는 바람에, 출애굽한 절대 다수가 약속의 땅을 상속받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임을 당하고 만 자들이 되었음을 상기시킨다(5절).


1) 바울은 이스라엘의 사례를 그 본보기를 삼아, 이제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절대 금해야 하는 죄상들을 일깨우쳐 준다. 이는 지금을 사는 오늘의 우리들에게까지도 여전히 경계해야 할 유효한 죄상들이다. 


첫째, 우상(偶像)숭배의 죄(7절)이다. 당시의 고린도에는 각종 우상들이 기득권을 갖고 행세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신자 중에는 예수를 믿어도 양다리 걸치듯 하는 행태가 보편화되기도 했다고 보인다. 우리는 어떤가? 오늘날 특히 이 정권하에서 주술과 점보기 문화가 범람하는 일이 많다. 심지어 대통령실에는 4급 행정관을 무속인으로 채용하여, 국가 요직에 앉게 할 자들을 심사하게까지 하는 모양이니, 이 어찌 통탄해 마지아니할 수 있겠는가-? 단호해야 한다! 


음행(淫行)의 죄이다(8절, 민25장). 이는 물론 남녀의 불의한 성적 타락의 문제를 담고 있지만, 동시에 우상 종교에 합세하여, 그들과의 혼합종교와 잘못된 행위에 빠져든 모든 흉측한 모습을 말한다. 이는 육체만의 타락과 함께, 영혼을 죽이는 행위가 되기에 더욱 경계해야 한다.


원망과 불신을 통한 시험의 죄이다(9-10절, 민21, 16장 참조). 원망과 불신은 믿음을 저버렸을 때에 나오는 두드러진 현상이다. 모든 질서와 명령을 깨뜨리고, 반항과 패역으로 나아가게 하는 지름길이다. 이 일로 바데스 광야에서의 불평으로 그들 20세 이상은 모두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체, 광야에서 죽임을 당하고 말아야 했다. 하나님이 아주 미워하시는 행태이다. 


2) 그러면서 바울은 성도들의 삶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영적 시련들에 대하여, 경고와 함께 격려도 함께 전한다(12-13절). 곧 삶에서 시험은 피할 수 없이 부딪치는 것들임을 대비하고, 그러면서도 그 어떤 시험에도 주님은 그곳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당신의 백성에게는 피할 길을 함께 열어주실 미쁘신 분이시라는 점을 알리면서, 그러기에 신실한 믿음과 기도의 자세로 겸손히 주 앞에 나아갈 것을 지시한다(고전1:9참조).


o 우리가 예수를 만나 믿게 되는 일은 인생에서 가장 큰 복을 받게 된 일이다. 하지만 이 귀한 복을 영원한 내 것으로 삼으려면, 거기에 합당한 마음가짐과 분명한 자세가 필요하다. 예전의 어정쩡한 관습이나 문화나 태도와 분명히 단절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내 것으로 얻어낼 수 없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새것을 취하기 위하여 단호함으로 응답해야만 나의 새 거듭난 삶은 온전히 가능해진다. 


명심하자. 3.1정신으로 우리나라와 민족이 새롭게 출발했듯이, 이제 우리의 믿음의 삶도 불의와 거짓과 위선과는 단호히 절연하고, 예수와 그의 말씀에서 얻어낸 진리와 정의와 평화와 사랑의 인간상으로 확고히 단장해서 살아가자. 이번 우리나라는 윤석열의 내란 사태로 커다란 진통과 혼란을 겪고 있지만, 그럴수록 깨어 있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더욱 세상의 소금과 빛된 소명을 잘 감당하여, 이 세상과 세대를 구원해 내는 주역이 되어야 하겠다. 여호수와의 영성을 굳세게 이어받아, 강하고 담대 하자. 이런 나의 온전함이 세상을 다시 살리게 한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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