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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4일 (화) 로중- “네 울음소리가 기쁨의 환호성이 되리라!”_이주형목사

이종덕 (익산노회,삼광교회,목사) 2024-05-13 (월) 22:20 5개월전 189  
“네 울음소리가 기쁨의 환호성이 되리라!”

예레미야 31:16 (구약 1102쪽).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 울음 소리와 네 눈물을 멈추어라 네 일에 삯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의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요한복음 16:22 (신약 176쪽).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울음 소리와 눈물이 말하는 것은 분명하다. 에브라임이 자식을 잃은 것이다. [북]왕국이 도시민들을 포로로 빼앗긴 것이다. 시민이 없는 도시라는 것이 무엇인가?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주민도 없는 곳에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일상의 소리와 제사하는 소리가 사라진 것이다. [제사가 멈추게 되었음은 심장이 뛰지 않는 것과 비교될 수 있다. 재생의 기제(Regenerationsmechanism)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생명의 기운이 없고 활기를 잃어버린 도성들이 된 것이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를 생각할 수 있다. 살 의욕을 잃은 이다]. 그런 성읍들이 다시 사람들과 [풍요로운 소유물인] 짐승들의 소리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렘 33:10-13.14-18). 이제 새로운 언약이 맺어진다. 그것은 이스라엘과 유다와 맺어지게 될 것이다. 도성들은 다시 활기를 띠게 되고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리는 이들의 찬송 소리가 들리게 될 것이다. 도읍들이 북적댐은 도시다움을 회복한 증거가 된다. 울음소리가 들리던 곳에 신랑 신부의 기뻐하는 [환호성] 소리가 대신 차지하게 될 것이며 다시 제사하는 자들의 소리가 들리게 될 것이다. 
예수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은 근심을 불러 일으킨다. 슬픔이다. 다시 볼 수 없음이 만들어내는 감정적인 상태이다. 다시 볼 수 없다!? 그것이 비극이다. [죽음이 최후의 비극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다시 볼 수 없다는 것... 일상은 아침에 집을 나갈 때 – 등교든 출근이든 – 저녁에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이 전제된다. 때문에 슬픔에 엄습당하지 않는 것이며 근심에 지배받지 않는 것이다]. 예수는 이미 앞에서 그 응답처럼 보이는 말씀을 하셨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3.18). 잠간의 이별 뒤에 이어지는 회복되는 기쁨에 대한 것이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 15:11). 기쁨의 이유는 충분하다. 기쁨은 빼앗길 수 없는 성격의 소유가 되었다. 살맛이 생겼다. 요한복음에서 구원은 예수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안으로 압축된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울음 소리가 그치게 하시고 눈물을 거두게 하시니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죄악은 우리의 징벌을 불러왔고 우리의 허물 때문에 우리는 심판을 자초했지만 죗값을 치르면서 깨달음을 얻고 연단을 받게 하시어 새로운 이로 거듭나 다시 새 삶을 살게 하시나이다. 아팠기 때문에 건강의 소중함을 알게 되듯이 우리가 받은 벌은 참 삶의 기회로 가는 문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엄한 훈련으로서 우리가 받는 시련에는 주님의 깊은 생각과 따듯한 사랑이 스며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 인생에 의미 없는 것은 없으며 우리가 받는 시련은 온갖 부정적인 것들을 걸러내 참 소망을 뚜렷하게 합니다. 이제부터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과 평안 속에 정제되고 다듬어진 삶을 살게 하시고 굳건한 믿음 가운데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을 영혼의 행복 속에서 구원받은 이로 살게 하시옵소서. 아멘.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409장 (나의 기쁨은 사랑의 주님께);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392장 (주여 어린 사슴이)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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