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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25일 (화) 로중- “주님의 긍휼은 내게 생명이며 살아 있게 하는 힘이 되고 사는 맛이 됩니다!”_이주형목사

이종덕 (익산노회,삼광교회,목사) 2024-06-24 (월) 22:54 10개월전 276  
“주님의 긍휼은 내게 생명이며 살아 있게 하는 힘이 되고 사는 맛이 됩니다!”

시편 119:77 (구약 891쪽). “주의 긍휼히 여기심이 내게 임하사 내가 살게 하소서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빌립보서 1:9 (신약 318쪽).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주님의 긍휼히 여기심이란 그것이 내게로 와 내가 살게 되는 그 어떤 것이다. 생명이 되고 삶의 활기가 되고 넘치는 힘이 되는 그것이다. 은혜로 주어지고 부어지는 것이다. 근원적으로 흙인 육체에 불어넣어진 그래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가 되게 한 하나님의 호흡을 생각할 수 있다(창 2:7). 긍휼[히 여기심으]로 번역된 단어는 어머니의 태(womb)와 같은 단어다. 아주 잘 어울린다. 어머니의 태는 키움과 살림의 방이기 때문이다. 긍휼이 그것이다(cf. 시 103:8-18). 주의 법은 ‘나의 기쁨’ 또는 ‘나의 욕망’이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 갈망의 내용이요 살아갈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내 삶의 맛이자 건강한 열정이다(24.92.143.174절). 하나님의 말씀은 나무가 푸르름을 자랑하고 때가 되어 열매를 맺게 하는 바로 그 원천(시 1:2-3)으로서 말하자면 거기서 기쁨으로 물을 길어 올릴 샘인 것이다(cf. 사 12:3). 의인은 늘 거기에 목말라 한다. 한 시인은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낫다!’고 고백한다(시 63:3). [긍휼은 신약성서에서는 ‘불쌍히 여김’에 해당된다. 치료하고 기적을 일으키는 등의 동기다(마 9:36; 14:14; 15:32; 18:27; 20:34; 막 1:41; 9:22; 눅 7:13; 10:33; 15:20)].
더욱 풍성해지는 것에는 한계가 없다. 가져가는 자가 임자다. [믿음의 크기는 은혜를 얻는 통로의 크기이다]. 늘어나고 확대되어야 하는 것이 사랑과 지식과 총명이다. 사랑과 앎은 삶의 길이며 힘이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감’(엡 3:18[-19])에 멈춤이 있어서는 안 된다. 자라야 하는 목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함’이다(엡 4:13).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의 형상인 예수는 목표이며 동시에 거기에 이르는 길이다(cf. 골 3:10). 사도 바울에게 예수는 능력의 원천이었다(빌 4:3. cf. 고후 4:7[-9]). 예수는 자신을 통하여 들어가며 나가며 꼴을 얻는 문으로서 더욱 풍성하게 얻기를 바란다(요 10:9-10). 하늘의 창고는 거기서 꺼내올 수 있는 풍요로움의 보고이다. 천국의 서기관은 거기서 새것과 옛것을 꺼내온다(마 13:52). 예수는 땅에 있는 은혜와 진리의 곳간 즉 그것으로 가득한 저장고이다(요 1:14. cf. 눅 2:52). 예수는 땅에 있는 하늘 출장소요 영적 선물 배급소이다. 그 앎은 영생의 씨앗이다(요 17:3).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은 바로 그 주인의 곳간에서 꺼내어 그 집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준다(마 24:45).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우리를 살리고 주님의 긍휼하심으로 우리가 생을 이어갑니다. 주님의 뜻이 우리 삶에 의미가 되고 주님의 계명을 살피는 것이 생의 기쁨이 됩니다. 그것을 통하여 참 삶의 길을 찾게 되고 또 살아갈 맛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 깊이 주님의 뜻을 알아가게 하시고 시간이 갈수록 더욱 믿음에 있어서 성숙한 이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래서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고 더 많이 닮은 제자가 되어 주님을 뒤따르는 작은 예수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아멘.

찬송가 74장 (오 만세 반석이신); 67장 (영광의 왕께 다 경배하며);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548장 (날 구속하신); 253장 (그 자비하신 주님)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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