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기도나 교회의 공동기도에서 많이 들리는 관용적 표현이 있습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이 기도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려진 예수님의 기도입니다(마 26:39; 눅 22:42). 십자가로 향하는 길 바로 앞에서 드려진 이 기도는 “매우 고민하여 죽게”(마 26:38) 될 정도의 예수님의 고뇌와 고통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기에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가장 잘 나타내는 표현 중 하나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의 기도를 인용할 때는 하나님 앞에 겸손한 신앙인의 태도를 강조하는 의미로 사용하곤 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나의 삶과 내가 속한 공동체의 방향이 인도되기를 바라는 것은 물론 훌륭한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그런데 제가 던지고 싶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여태껏 우리의 인생이 우리 뜻대로 된 적이 있나요? 어떤 대통령이 당선되는지, 기름값이 오르고 금리가 오르고, 주식과 집값의 오르내림이 우리가 바라는 대로 되나요? 우리의 부모, 배우자, 자녀들이 우리가 계획하고 예측한 대로 행동하고 말하고 움직이나요? 심지어 우리 자신마저 우리 뜻대로 되던가요? 가장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바로 내 마음인 듯 합니다. 세상에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없는데 “내 뜻대로 마옵시고”라고 굳이 기도할 필요가 있을까요?
내가 어떤 뜻을 세우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하실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힘이 약하신 분이 아니니까요. ‘내가 커지면 하나님이 작아진다’는 ‘신앙적인’ 진술은 겸손의 표현인 동시에 교만한 말이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크심과 인간의 보잘것없음을 대비하는 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크신 분이기에 인간인 우리는 그분의 행하심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음성을 내시며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큰 일을 행하시느니라(욥 37:5, 개역개정).” 동일한 구절을 새번역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하나님이 명하시면, 놀라운 일들이 벌어집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기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여기서 “놀라운”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니플라오트(נִפְלָאוֹת)입니다. 인간이 다 알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크심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단어입니다.
니플라오트(נִפְלָאוֹת)의 의미
니플라오트는 어근 팔라(פלא)에서 온 파생명사로서, 이 어근은 일상적인 인간의 경험과 이해의 영역을 벗어난 것을 가리킵니다. 성경에서는 기이하고(출 15:11, 시 77:12, 89:6, 사 29:14 등) 놀라운 것(애 1:9, 시 119:129, 단 12:6 등)을 나타낼 때 사용되고, 명사형인 니플라오트는 기이/기사(奇事)/기적(수 3:5, 삼하 1:26, 대상 16:9, 16:12, 16:24, 대하 26:15, 느 9:17 등)과 이적(출 3:20, 34:10, 삿 6:13, 삿 13:19 등)으로 번역됩니다. 이사야 9:5의 ‘(그 이름은) 기묘자’라는 표현 역시 바로 이 어근에서 나온 펠레(פֶלֶא)를 번역한 것입니다.
욥기는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인과응보의 원칙으로 하나님의 운행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반성적 지혜를 가르칩니다. 이 지혜의 대표적인 표현이 바로 니플라오트입니다.
욥 5:9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이 큰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니플라오트)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
욥 9:10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셀 수 없는 기이한 일(니플라오트)을 행하시느니라
욥 37:5 하나님은 놀라운(니플라오트) 음성을 내시며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큰 일을 행하시느니라
위의 세 예문에서 니플라오트는 모두 ‘크다’라는 뜻의 게돌로트(גְּדֹלוֹת)와 평행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합니다. 그것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은, 동시에 우리를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고난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고 물고기와 떡 몇 개로 수천 명을 먹이시는 기사와 이적만이 아니라, 욥이 당한 고난처럼 설명될 수 없고 이해될 수 없는 "까닭없는" 고난 앞에서도 우리는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경험합니다. 욥이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은 주시기도 하고 거두시기도 하고(욥 1:21), 복을 주시기도 화를 주시기도 합니다(욥 2:10). 내게 복과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만 높고 위대하신 것이 아닙니다.
니플라오트는 하나님의 ‘신비(mystery)’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자유(freedom)와 절대주권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아무리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고 노력해도 하나님의 주권을 침범할 수는 없습니다. 혹시나 나의 인생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나의 뜻"대로 되어질까봐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겸손한 신앙심의 발로에서 나온 표현이 오히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부인하는 교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신앙인의 건강한 자세는, 계획과 뜻을 세우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매일매일을 살아간 뒤에 되돌아보면, 자신의 뜻대로 자신의 계획대로 된 일이 하나도 없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신앙이 깊어가는 것은 내 자신의 뜻과 의지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점점 더 피부로 몸으로 깨달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