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잠언을 왜 “잠언”이라 이름했을까?
잠언은 영어로 ‘Proverbs’라고 합니다. 이 영단어는 라틴어 ‘프로베르비아’(proverbia)에서 왔고, 더 거슬러가면 그리스어 ‘파로이미아’(παροιμία)에서 왔습니다. 그리스어 ‘파로이미아’나 라틴어 ‘프로베르비아’는 삶의 지혜를 담은 짧은 “속담”이나 “경구”, 사람들이 마땅히 따라야 할 “공리”(maxim)를 뜻합니다. 한 두 문장으로 짧게 압축하여 인생의 단면을 잘 드러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말 성경의 ‘잠언’은 아마도 중국어 성경의 번역을 그대로 가져온 듯합니다. 여기서 ‘잠’은 “바늘 잠”(箴) 자입니다. “바늘로 콕 찌르는 말”이라는 뜻이지요. 우리가 나쁜 길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고 일깨워주는 말씀이라는 점을 강조한 번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의 강조점은 ‘교훈’에 있습니다. 들으면 잠이 오는 말이라고 잠언인 것은 아니구요.
흥미롭게도 일본어 성경은 잠언을 ‘知恵の泉’(지혜의 샘)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잠언은 읽는 이로 하여금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게 해준다는 것을 표현한 번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번역들은 조금씩 차이점이 있습니다. 잠언이라는 책을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나 로마는 “지혜를 담은 속담 모음집”의 의미로 잠언이라는 책의 속성을 이해했고, 중국과 한국은 마치 서당에서 읽는 사서삼경처럼 독자의 양심을 일깨우는 교훈적인 책으로 잠언을 파악했습니다. 반면에 일본은 책을 읽음으로써 득도하여 신적 지혜에 다다르게 되는 것처럼 잠언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2. 잠언(מָשָׁל)의 어원과 활용
잠언의 히브리어 원어는 ‘마샬’(מָשָׁל)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비슷하다, 닮다”, 그리고 “비교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직접적인 설명이 아니라 은유와 비유로써 사건과 사물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인간 삶의 원리를 동식물 등 자연현상에 빗대어 설명하는 경우입니다.
이 단어가 동사로 쓰이는 경우를 보면 어원적 의미를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시편 49편 20절의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에서 이 “같도다”에 해당하는 동사가 바로 ‘마샬’입니다. 시편 28편 1절,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의 “같을까” 역시 이 ‘마샬’이 동사로 쓰인 경우입니다. 즉, ‘이것은 무엇과 같다’는 비유의 화법을 지칭하는 것이 잠언의 어원인 ‘마샬’의 본뜻입니다.
성경에서 이 ‘마샬’은 상당히 다양한 의미의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역성경 하나만 보아도 같은 히브리어 단어를 “노래”, “예언”, “속담”, “비사”, “비유”, “이야기거리” 등 아주 다양하게 번역하였습니다.
(1) 노래/예언: 민수기 23-24장(23:7, 18; 24:3, 15, 20, 21, 23)에서 발람이 말한 것이 ‘마샬’입니다. 옛 개역한글판은 이 단어를 “노래”라고 번역했는데, 개역개정판은 “예언”이라고 바꾸었습니다.
(2) 속담: 신명기 28장 37절에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른 민족들의 “놀람과 속담과 비방거리”로 만드시겠다고 하실 때, 여기서의 “속담”도 ‘마샬’입니다.
이와 비슷한 의미가 열왕기상 9장 7절에도 등장합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여기서 “속담거리”에 해당하는 원어가 ‘마샬’입니다.
(3) 풍자/비사: “욥이 (또) 풍자하여 이르되”(욥 27:1과 29:1)에서 “풍자”가 또한 ‘마샬’입니다. 개역한글은 같은 구절을 “비사”라고 번역했습니다.
(4) 이야기거리: “주께서 우리를 뭇 백성 중에 이야기거리(‘마샬’)가 되게 하시며 민족 중에서 머리 흔듦을 당하게 하셨나이다”(시 44:14).
(5) 비유: “내가 비유(‘마샬’)에 내 귀를 기울이고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시 49:4).
히브리어의 한 단어가 우리말의 여러 다른 단어로 번역되었다는 것은 곧 히브리어의 ‘마샬’을 단 하나의 단어로 번역할 우리말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말로 번역하신 분들이 얼마나 고심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동시에 이것은 한글 성경만 가지고는 도무지 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말로는 전혀 다르게 번역되었지만 그 원어는 같은 단어이거나, 우리말 성경에서 같은 단어로 번역되었지만 원어는 전혀 다른 단어가 쓰여 있는 경우도 아주 흔합니다. 원어를 모르고서는 성경의 의미를 올바르게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3. ‘마샬’의 의미
성경에 쓰인 ‘마샬’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위에서 나열한 다양한 용례와 의미들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마샬’은 반드시 짧은 경구의 말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아주 긴 문장들도 ‘마샬’로 표현되어 있으니까요. 또한 옛 선조들로부터 내려온 지혜의 말을 뜻하는 경우도 있지만 모두가 그런 의미로 쓰인 것은 아닙니다. 민수기 23-24장의 발람의 ‘마샬’을 보면 선조의 지혜를 간직한 격언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발람의 ‘마샬’은 자신이 섬기는 모압왕 발락을 노하게 만듭니다. 왕은 발람에게 모압의 적국인 이스라엘을 저주해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발람의 ‘마샬’은 오히려 모압을 저주하고 이스라엘을 축복합니다. 왕이 듣고 싶은 소리를 발람에게 부탁했는데, 발람은 오히려 왕의 소망과는 전혀 반대의 이야기를 전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발람이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아니할 수 있으리이까”(민 23:12).
발람은 여기서 ‘마샬’을 가리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즉, ‘마샬’은 선조들의 지혜의 말씀이나 우리 귀에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라, 우리가 듣고 싶지 않을 때에도 들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늘로 찌르는 말”이라는 뜻의 “잠언”은 ‘마샬’의 핵심을 잘 파악한 번역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비록 비유나 비교를 나타내는 히브리어 ‘마샬’의 어원적 의미에서는 거리가 먼 번역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신명기 28장 37절과 열왕기상 9장 7절, 그리고 시편 44편 14절에서 사용된 ‘마샬’의 의미는 상당히 유사합니다.
신 28:37 여호와께서 너를 끌어 가시는 모든 민족 중에서 네가 놀람과 속담(마샬)과 비방거리가 될 것이라
왕상 9:7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마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시 44:14 주께서 우리를 뭇 백성 중에 이야기거리(마샬)가 되게 하시며 민족 중에서 머리 흔듦을 당하게 하셨나이다
이 경우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바늘로 찔러 우리를 잠에서 깨어나게 하고 불편하게 하는 하나님의 ‘마샬(잠언)’을 귀담아듣고 준행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라도 다른 이들에게 ‘마샬(이야기거리)’로 만드실 것입니다. 저들처럼 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두고두고 회자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