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월절(פֶסַח 페사흐)”이라는 단어의 의미
“유월절(פֶסַח 페사흐)”은 “넘다/넘어가다(pass over)”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파사흐(פסח)”에서 왔습니다. 사실 이 단어의 어원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학자들은 아랍어와 아카드어 등과 비교하면서, “보호하다, 구원하다”의 의미나 “절룩이다, 절룩이며 춤추다”라는 의미와 연결 짓습니다. 이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이집트어에서 “파사흐”는 추수(harvest), 기념(commemoration), 혹은 광풍이나 역병이 몰아치는 것(blow)을 의미하는데, 출애굽기 12장에 나타난 사건의 묘사와, (어떤 의미에서는) 봄축제와 연결된 유월절의 복합적인 성격에 비추어볼 때, “페사흐(유월절)”라는 단어의 역사적 기원을 이집트어에서 찾는 것이 설득력 있다고 판단 됩니다.
유월절이라는 단어의 역사적 기원이 비록 농사와 관련되어 있다고 가정할지라도, 성경의 기록은 농경문화의 봄 축제와 전혀 연결점이 없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출애굽기 12:26-27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 후에 너희의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2. 절기로서의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과 함께 유대교 3대 절기(신 16:1-7) 중 하나인 유월절은 성경에 여러 번 묘사되는데, 출 12-13장의 유월절이 그 처음이고, 출애굽 이후 두번째 유월절이 민수기 9:1-14에서 언급됩니다. 그 이후 여호수아 시대에 길갈에서(수 5:10-12), 솔로몬 시대 (왕상 9:25), 히스기야 시대(대학 30:1-27), 요시아 시대(대하 35:1-19), 그리고 바빌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다시 성전을 재건하면서 드린 유월절이 에스라 6:19-22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유월절 절기 행사는 7일간 지속됩니다. 참고로, 현재 이스라엘 안에서와 개혁유대인들(Reformed Jews)은 7일 동안, 그리고 정통유대인들(Orthodox Jews)과 하시딤 유대인들(Hasidic Jews)은 8일동안 명절을 지킵니다. 유대력으로 첫째달(니산월) 15일 (정확히는 14일 해질 무렵)에 시작됩니다. 올해(2022년)는 4월 15일 저녁부터 시작됩니다. 성금요일(Good Friday)과 같습니다.
3. 유월절 예식의 규례와 그 의미
유월절을 지키는 예식에 대한 규례는 출애굽기 12장에 묘사되어 있다.
1) 각 가정에서 모든 사람이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어린 양(혹은 염소 – 출 12:3,5)을 잡는다
2) 식구가 적은 경우에는 이웃도 함께 먹을 수 있게 한다 – 12:4)
3) 그 피를 집 문설주와 안방에 바른다 (12:7).
4) 밤에 고기를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함께 먹는다 (12:8).
5) 음식을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어야 한다 (12:11).
이렇게 예식을 지키는 이유와 의미는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음을 대대손손 기억하고 기념하게 하기 위함입니다(출 12:27).
숙성되지 않은 무교병을 먹는 이유는 이집트에서 탈출하느라 충분히 숙성시킬 시간이 없었음을 나타냅니다(12:39 – “그들이 애굽으로부터 가지고 나온 발교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웠으니 이는 그들이 애굽에서 쫓겨나므로 지체할 수 없었음이며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하였음이었더라”).
쓴 나물 역시 (그것을 먹는 의미는 성경에 명확히 나타나 있지 않지만) 아마도 이집트에서의 노예생활과 앞으로 펼쳐질 광야생활의 험난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 가지 지적할 것은, 유월절 음식 중 “어린양”에 큰 의미를 두는 해석이 있는데, 그것은 “어린양=예수”라는 등식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유월절의 핵심이 “어린양”에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염소로 대체하는 것(12:5)이 그렇게 쉽게 허락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출애굽기 12장 전체에서 볼 때, 어린양보다는 무교병이 더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출 12장 29-36절의 이집트에 내린 열번째 재앙사건에서 양(“너희가 말한 대로 너희 양과 너희 소도 몰아가고” 12:32)은 내러티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는 반면, “그 백성이 발교되지 못한 반죽 담은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니라(12:34)”라는 표현으로 무교병이 더 중요하게 언급됩니다.
또한 출애굽한 백성들에 대한 기사에서도, 양(“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 – 12:38)보다는 무교병(“그들이 애굽으로부터 가지고 나온 발교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웠으니 이는 그들이 애굽에서 쫓겨나므로 지체할 수 없었음이며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하였음이었더라” – 12:39)에 대한 언급이 더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cf. 이에 반해, 46절은 “어린양”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유월절 식사의 중심에 “고기”가 있다는 사실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무교병이나 쓴 나물은 언급되지 않습니다.)
정리하자면, 유월절 예식의 중심적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에베드)/난민(게르) 상태에서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을 통해) “준비되지 않은 채로” 급하게 이집트를 탈출한 것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무교병이 상징하는 것은 빵을 숙성시킬 시간조차 없이 긴급하게 출애굽한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이 출애굽 사건이 이스라엘 백성들 스스로의 계획으로 차근차근 준비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
4. 유월절 예식 참여 대상에 대한 고찰
출애굽기 12:43-49은 유월절에 참예할 수 있는 대상을 한정하고 있습니다.
1) 모든 이스라엘 회중은 다 참여한다 (12:48)
2) 기본적으로 이방사람(외국인, “이방인의 소생,” 벤-네카르בן-נקר )은 참여하지 못한다 (12:43)
3) 돈으로 산 종(에베드 עבד)은 할례를 시행한 후 참여가 가능하다 (12:44)
4) 지역 원주민(토샤브 (תושב과 삯을 받는 품꾼(사키르 שכיר)은 참여하지 못한다 (12:45)
5) 함께 거하는 타국 난민(게르 גר)의 경우, 할례를 받은 후에 참여할 수 있고, 이스라엘 민족(에즈라흐 אזרח)과 동등하게 대접 받는다 (12:48, 49)
6) 할례 받지 앉은 자(아렐 ערל)는 참여할 수 없다.
유월절 예식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규정(12:43-49)에서 특징적인 것은 “게르(난민)”와 “에베드(종)”에 대한 특별한 예외규정, 혹은 “애정과 관심”입니다. 이것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두 가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첫째,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한정된 사건이 아니라는 것: 이집트를 탈출하는 행렬에는 수많은 “잡족(에레브 ערב),” 즉 아주 다양한 여러 집단과 민족들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했습니다(출 12:38).
둘째, 이 규정에서 언급되는 돈으로 산 종(에베드), 타국 난민(게르), 품꾼(사키르), 토착민(토샤브) 등은 출애굽 이전의 이집트에 있던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이집트에서는 에베드요 게르였기 때문에, 이러한 신분의 사람들이 또다른 노예를 가질 개연성은 상당히 적습니다. 남의 땅에서 난민이자 노예로 사는 사람들에게 더부살이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상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 유월절 예식 참여 대상에 대한 규정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를 염두에 둔 규정으로 보는 것이 더욱 설득력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모든 외국인, 혹은 외국 태생(벤-네카르)은 유월절 예식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지역 토착민(토샤브) 역시 참여할 수 없습니다. 삯을 받는 임금노동자(사키르)도 금지됩니다. 그러나 남의 나라 땅에서 종살이(에베드)하거나 더부살이(게르)하는 사람들은 할례를 받는 조건 하에 유월절 예식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이스라엘 민족과 동등하게 여겨집니다.
에베드나 게르 역시 토종 이스라엘 태생이 아닌 외국인이라는 전제 하에, 절기 참여 대상의 “이중성” 혹은 “모순”에 이 유월절 규정의 중요한 핵심이 놓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에 팔려온 에베드(노예)와 게르(난민)는 이집트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처지와 같습니다. 레위기 19장 33-34절은 이러한 점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거류민(게르)이 너희의 땅에 거류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게르)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느니라.”
5. 유월절에 대한 종합적 이해
이스라엘 사람들을 비롯한 근동의 모든 고대인들은 과거를 바라보고 서 있는 과거지향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기념일과 예식의 목적은 “기억”입니다. 과거의 특정한 사건을 현재에 재현함으로써 자신들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되돌아보는 것이죠.
출애굽기 12장의 유월절 예식 규정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난 후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주는 말씀으로 보입니다. 즉, 약속의 땅에 정착하더라도, “정착생활”이 이스라엘 백성의 본질이 아님을, 이스라엘의 민족적 정체성은 “난민(게르)”이자 “종/노예(에베드)”였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것이 유월절 예식의 목적입니다. 이스라엘 땅에 더부살이 하는 게르들을 학대하지 말고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유월절과 마찬가지로 이 게르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본연적 정체성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망갈 사람의 행색을 하고 무교병을 먹는 행위 역시 남의 땅에 더부살이하던 시절의 어려움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상기시키고자 함입니다. 유월절 절기의 핵심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의 정착생활이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이 아니라, 남의 땅에 빌붙어 살던 난민이자 노예 신분이 곧 이스라엘 백성의 본질적인 정체성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후손들에게 되새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