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간증 - 고백
부족한 종이 목회를 시작한 1980년 1월 1일이니 벌써 28년이나 되었다. 그래도 아직 미숙하고 부족하고 내세울 것이 없는 부족한 목사이다. 오늘은 그 부끄러운 목회 이야기 중 고백 하나를 나누려고 한다. _?xml_: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필자는 주보에 목회수기(현재 797편을 씀)를 통하여, 종종 발표되는 고백시에서 많은 죄를 고백한 바 있다. 예를 들면 2000년 8월에 쓴 시 ‘그래도 사는 것은’ 같은 류의 시이다.
그래도 사는 것은
나는 사랑하기보다 사랑받기 원하는 이기주의자
나는 돈을 좋아하는 속물
나는 가족도 사랑하지 못하는 거짓말쟁이
나는 칭찬하고 격려하기보다 칭찬을 받기 바라는 어린애
나는 전도하지 않고 부흥하기를 바라는 사기꾼
나는 교인들 등쳐먹는 도둑놈
나의 마음속에는 미움이 이글거리고
나의 마음속에는 욕심이 타오르고
나의 마음속에는 불평이 잠재되어 있고
나의 마음속에는 온갖 더러움이 가득하고
속 썩이는 사람들에게 증오가 넘치지만
점잖은 체 하고
거룩한 체 하고
사랑이 많은 양 우아하게 웃고
속상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체 시치미 떼고
미워하면서도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광대
그래도 사는 것은
뻔히 다 아시면서도 덮어주시는 사랑
내 모든 죄와 허물 대신 지고 가신 주님의 사랑
십자가 보혈로 아예 덮어주시는 사랑
온전히 용서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믿기 때문입니다.
지난 2005년 4월에도 고난 중에 병원에서 나와서 교우들 앞에 서서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 바가 있고 얼마 전에도 목회수기를 통하여 “교인들이 볼 때 몇 가지 죄가 있지만 주님이 보실 때는 죄 투성이이다. 작금에 모든 문제는 부덕한 목사 탓이다. …… 아니 나는 누구를 용서할 자격도 없는 죄인이다"라고 고백하였다.
부족한 종이 회개하며 기도할 때 주 앞에 무릎을 꿇기만 하면 눈물이 쏟아져 주체할 길이 없었던 적이 있다. 나같은 죄인을 부르셔서 당신의 종을 삼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심에 감사감격하였기 때문이다.
마치 다윗이 죄를 짓고 회개하며 시편 6:6절에서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고 고백한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띄웠다’는 표현을 보고 지나치게 과장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체험하고는 다윗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마음은 한없이 기뻤다. 나의 죄를 사함받았다는 확신이 올 때 남은 여생 나를 위해 십자가 지신 주님을 위해 살리라 다짐하였다.
바로 그 고백이 성경찬양콘서트였다. 주님의 은혜를 주체할 길이 없어 찬양의 고백을 드린 것이다. 당시 발표한 ‘깨달음’이라는 제목의 고백시를 다시 옮긴다.
깨 달 음
나는 목회자로서 의무로 새벽기도를 했지
나의 기도를 잘 하지는 못했었습니다.
나는 목사이기에 의무로 교인들을 만났지
교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했었습니다.
나는 목사로서 할 수 없이 설교를 했지
나 자신이 늘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했었습니다.
나는 목사이기에 교회출석을 개근했지
나 자신은 정작 반드시 은혜롭지는 못했었습니다.
나는 목사이기에 이 정도는 헌금을 해야겠지 했지
정작 뜨거운 감사가 부족했었습니다.
나는 교인들에게 전도하라고 설교는 했지만
정작 나 자신은 전도를 잘 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목사이기 전에 아버지와 남편으로서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고
가족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지 못했습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부족한 목사이다. 어떻게 보면 목사가 될 자격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주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받고 주님을 사랑하고 좋아하다 보니까 주님의 종이 된 것이다. 그러기에 감사할 뿐 주님 앞에 투정하고 불평하는 일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감히 종이 불평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니 죽어가는 자기를 위해 신장 하나만 떼어줘도 일생을 바쳐 사랑할진대 죄 투성이인 나를 위해 십자가 지시고 생명을 허락해 주신 주님께 불평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바라기는 오직 용서받는 일이다. 사랑하고 살아도 모자란 세상인데 미워할 여유가 어디 있나? 용서하며 살아도 부족한 세상인데 어찌하여 용서는 고사하고 남을 미워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 매일 기도하면서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무슨 연고일까? 아니 다시 말하지만 필자는 누구를 용서할 자격도 없는 죄인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성도들에게 용서를 빌 뿐이다.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옛 것은 지나고 새 사람으로 살고 싶다. 주님 십자가 사랑으로 새 생명 얻었으니 나 이제 세상에 좋던 것 분토와 같이 버리고 하늘의 은혜와 평화를 위해 살고 싶다. 남을 판단하기보다는 자신을 회개하며 살고 싶다. 사랑과 용서의 우리 주님 십자가 은혜가 모두에게 넘치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