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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려하시는 예수님!!

관리자 (광주남노회,작천교회,목사) 2010-07-20 (화) 23:00 13년전 1687  
 

2006 년 8 월 27 일 (주일) 오전 8 시, 11 시 강진읍교회


성경본문 : 누가복음 19 장 1 절 - 10 절

제       목 : 격려하시는 예수님!!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의 삶과 영혼 속에 흘러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저에게 자식이 둘이 있습니다만 자식을 이렇게 가르쳐 보기도 하고 저렇게 가르쳐 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자식교육을 할 때 교육방법에 따라 교육의 효과가 달라지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아이를 야단치고 꾸중을 하면 그 다음부터 교육효과가 높아질 것을 기대하였지만 오히려 기대점 훨씬 이하일 때가 많았습니다.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칭찬하고 격려하고 추겨 세워주면서 고무해주면 꾸중하고 야단치고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바람직한 효과가 있게 됩니다. “야! 신정아! 아빠 방 좀 치워!” 하는 것보다 “신정아! 너 지난 번 아빠 방을 치웠었잖냐! 근데 방이 너무 훤해져서 그때 기분이 너무 좋더라!” 하면 아이가 그럽니다. “아빠 그러니까 아빠 말씀은 또 방을 치워달라는 말씀이시죠!”, “당근이쥐! 너는 무엇이든지 하면 잘해! 네 손을 거치면 무엇이든지 아작이 되지!” “아빠! 아작이 뭔데요? 아름다운 작품 말이야” 그러면 아이는 아빠 방을 치울 때 그냥 치우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틀어놓고 치우는데 내가 공들여 치우는 것보다도 훨씬 낫습니다.


어느 대학의 물리학 교수가 강의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물리학은 매우 어려운 학문이므로 아마도 여러분 중의 50%는 낙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학기말 시험을 친 결과 그 교수의 말대로 학급 학생의 50%가 시험에 낙방하였습니다. 이 물리학 교수는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학기의 첫 시간에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록 물리학이 어렵다고 할지라도 여러분은 모두 시험에 합격할 것입니다. 용기를 내어 공부하십시요. 여러분은 아주 지혜롭고 총명합니다." 그랬더니 그 학기에는 한 사람의 낙방생도 없었다고 합니다.


제가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본부에서 일할 때 나름대로 일하는 것을 인정받아 제일 먼저 부장이 되었습니다. 저보다도 10 년 선배가 저하고 같은 직급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직원들은 점심식사만 하러 나가면 밥을 먹을 때 배 부장님! 배 부장님! 했습니다. 나갈 때 언제나 제가 점심값을 냈습니다. 그것도 한 두 번이지 매번 배 부장님! 배 부장님! 하다고 보니 점심값으로 나간 돈이 부장의 직급수당으로 받은 돈보다도 3-4 배 더 많이 나갔습니다. 그래 그 다음부터는 작전을 세웠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직원 중 한 명을 골라 집중적으로 칭찬을 했습니다. 그들이 나에게 배 부장님이라고 불러 주는 것보다도 훨씬 더 강한 강도로 한명을 콕 찍어 집중적으로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집중칭찬을 받은 그 직원은 밥을 다 먹었을 때 시키지도 않았는데 서둘러 나가서 기쁘게 지갑을 엽니다. 그가 계산을 할 때 구두끈 매면서 회심의 미소를 띠고 카운터에 있는 그를 바라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칭찬과 위로와 격려와 용서와 포용을 가장 잘하시는 예수님으로부터 배워 봅시다.


예수님께서 여리고에 복음을 전하시러 가시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때에도 역시 수많은 인파들이 몰려들어 예수님을 보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의 발길이 멈춰진 곳은 어느 뽕나무 앞이었습니다. 뽕나무 위에 높이 앉아 있어 자신을 바라보는 세리 삭개오를 만났습니다. 삭개오는 여리고 국세청의 세무서장 정도되는 사람입니다. 당시 세리들은 유대인들로부터 미움을 받되 30 배 60 배 100 배 미움을 받았습니다. 세금도 자기 나라에 내면 그런대로 그것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 쓰여진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당시 유대나라는 로마제국의 식민지였으니 세금을 내도 자기네 나라에 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나라를 침략하여 국권을 빼앗은 그 나라에 내는 것이니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세리들은 다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은 영리해서 세금을 받는 관리들을 다 유대인들을 임명하고 그들이 그들의 사정을 잘 아니 세금을 거두도록 했습니다. 세리들은 로마제국이 할당한 정한 세금만 딱 받았느냐 하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규정된 세금 외에 플러스알파를 해서 거출하였고 그러므로 유대 사람들은 이중과세를 당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세리들을 미워했습니다. 당시 세리들은 유대 사람들의 공공의 적 제 1 호였습니다. 세리들이 밉다고 해꼬지를 하거나 돌팔매질을 하면 로마제국은 그들을 잡아 무참하게 죽였으니 감히 세리들을 건들 수도 없었습니다. 유대사람들은 합세하여 로마법이 관여할 수 없는 범위 안에서 세리들을 소외시켰습니다. 유대사람들은 한마음으로 세리들을 같은 동족이면서 동족의 피를 빠는 세리들을 집단적으로 <왕따>시킨 것입니다.


따돌림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은따>가 있는데 이는 은근히 따돌리는 것입니다. <무따>는 무참히 따돌리는 것을 말하고 <살따>는 살짝 따돌리는 것을 말하고 <전따>는 전교생이 따돌리는 것입니다. 따돌림을 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런 죄악을 저지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아야 합니다. 당시 세리들은 전 유대사람이 따돌렸으니 <왕따>도 당하고 <전따>도 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리가 오면 자리를 피해 만나지 않았고 세리를 보게 되면 눈을 흘기면서 침을 뱉었고 세리를 보면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당시 삭개오는 그냥 세리가 아니라 세리장, 세무서장이어서 당시 유대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미움을 받았을 것이고 <무따> 무참히 따돌림을 당하였습니다. 이 세리장 삭개오가 예수님이 여리고로 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 이전에 삭개오는 예수님이 큰 기적과 권능을 일으키신다는 소문을 훨씬 이전부터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유대나라에 평지풍파를 일으키셨던 관심의 대상 인물, NEWSMAKER 제 1 호였기 때문에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려고 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에게는 예수님을 보려고 했지만 볼 수 없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한 가지는 자신은 신장이 작아서 예수님을 뵈오려고 해도 겹겹이 쌓인 군중들 사이에 둘러쌓인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만일 신장이 컸다고 해도 비집고 들어가 예수님을 보려고 가까이 갈 수도 없었습니다. 당시 세리를 미워하는 악감정을 가진 군중들이 갑자기 무슨 테러를 할지 몰라 두려웠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을 뵙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아서 결국 그는 뽕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유대의 뽕나무는 우리나라의 뽕나무와는 전적으로 다른 종자입니다. 원래는 “시카모어”라는 나무인데 번역할 때 뽕나무라 하였습니다. 시카모어는 굉장히 큰 나무로서 사시장철 열매 맺는 나무였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 간 삭개오는 그곳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내려다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침 예수님께서는 그곳을 지나가시면서 삭개오를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 5 절에 봅시다.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예수님은 삭개오를 알아보셨습니다. 그리고 삭개오에 집에 머물겠다고 하셨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선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삭개오는 당시 왕따당할 수밖에 없는 세리장이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람으로 인정해 주시고 그 집에서 머물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삭개오는 무척 즐거웠습니다. 그 즐거움이 6 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삭개오는 자신을 사람으로 인정해주신 예수님을 너무도 기쁘고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예수님이 삭개오 집에 들어가시자 따르던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7 절에 보십시다.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당시 세리를 치명적인 죄인, 원초적인 죄인으로 여겼는데 사람들은 예수님이 세리 집으로 들어가자 예수님과 세리를 한통속으로 깍아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8 절입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에 응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9 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로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보려고 뽕나무 위에 올라간 세리 삭개오를 내려오라고 하시고 그 집에 들어가서 그의 등을 두드려 주셨습니다. 격려해주신 것입니다.   


이 누가복음 19장의 말씀을 통해서 오늘에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은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는 등 뒤에서 수군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은 뒤에서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7 절입니다.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삭개오를 미워하던 사람들은 삭개오의 집에 들어간 예수님에게까지 별로 안좋은 딱지를 붙였습니다. 7 절의 표현은 분명 아주 부드럽고 점잖은 표현입니다만 당시 세리를 미워하던 사람들은 분명 세리 집으로 들어가고 있는 예수님 등 뒤에서 예수님과 세리를 비난하는 말을 했습니다. ”아 예수 그 작자 말이여! 예언자인줄 알았는데 아 형편없는 사람인 모양이여! 어떻게 저 더러운 세리같은 작자들의 집에 머물 수 있는거야! 예언자가 아닌 모양이여! 저런 매국노의 집에서 머무르다니 매국노 집에 머무른 사람은 매국노 아니여!“ 하면서 예수님을 뒤에서 깍아 내리려는 사람도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남의 등 뒤에서 남을 도울지언정 남에 대해서 수군거리고 남을 헐뜯고 남을 비방하며 남에게 결코 보탬이 되지 않은 말은 삼가야 합니다. 서부영화에 보면 제일 비겁한 사람이 남의 등 뒤에서 총을 쏘는 사람입니다. 그가 있을 때 직접 비판하지 아니하고 남이 없는데 그 등에다가 비난의 화살, 험담의 권총을 쏘는 사람은 비겁한 사람입니다. 요즘 ”씹는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험담을 하고 헐뜯는 것을 한마디로 “씹는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약간 높은 자리를 올랐습니다. 나이도 적은 사람이 더 높은 자리에 올랐으니 주변에 그 자리에 못 올라간 사람들이 시기하여 그를 집중적으로 씹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를 비방하고 다니는 이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 당사자는 울릉도 오징어 여러 축을 사서 자기를 헐뜯고 다니는 이들에게 오징어 한 축씩 20 마리를 각각 돌렸습니다. 그리고는 감사의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에게 격려해 주셔서 늘 감사한 맘뿐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지도편달 바랍니다” 그런데 오징어를 축으로 받은 사람들이 우연히 서로 얘기를 나누는 가운데 자기도 오징어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왜 그가 오징어를 한 마리가 아닌 한 축을 돌렸을까?가 의문이었습니다. 이것이 사내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오징어다리를 받았던 이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별로 좋지 않은 말을 한 우리들에게 왜 오징어를 왜 보냈을까? 의아해 할 때 지나가던 직원 한 사람이 ”아 그것도 몰라! 씹을려면 오징어 다리나 씹을 일이지 왜 나를 씹느냐? 아 그런 뜻이지!“ 우리는 먹을 때 잘 씹어서 먹어야 하고 껌을 즐겁게 씹을 수 있지만 남의 등 뒤에서 남이 없는데 그에게 험담을 하거나 비난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그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라 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남을 헐뜯고 남을 등뒤에서 공격하고 남에 대해서 수군거리는 사람들, 바로 그 사람은 만일 예수님 시대에 태어났다면 예수님이 세리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도 분명히 뒤에서 예수님까지도 수군거리고 깍아내리고 헐뜯는데 동참할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남의 등 뒤에서 남을 격려하고 칭찬을 해주어야 하고 이웃의 등을 두드려주고 넘어진 형제를 일으켜 주고 붙들어줘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격려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삭개오를 왕따시키고 사람들은 삭개오를 소외시키고 사람대접도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삭개오를 헐뜯고 그를 비방하며 그를 죄인이라 욕하였지만 예수님은 그를 사람으로 인정해주셨고 삭개오의 등을 두드려주시면서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유대사람이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이 바로 자신을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자손이라고 할 때 가장 좋아한다고 합니다. 유대사람들이 쓰레기로 여기는 세리 삭개오를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제일 듣기 좋아하는 이 사람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격려해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과 같이 격려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현대사회는 과학과 기술 문명으로 인해 그저 편리하게 살게는 되었지만 그 안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소외문제입니다. 능률과 실질은 숭상하고 뭔가 있는 사람은 대접을 받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뒤쳐지게 되고 현대사회 속에서 소외당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경쟁에 뒤쳐져서 혹은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한 가운데 살고 있는 이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사회가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격려하고 용기를 주는 일을 잘해야 합니다. 격려하면서 산다는 것은 인생을 살면서 참으로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 마음의 선물 중에서”란 책에 보면 격려에 대한 좋은 글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격려는 사람을 분발 시킵니다 / 무시는 사람을 주눅들게 하죠 / 제멋대로 남을 비판하기는 쉽습니다 / 하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와 / 남을 격려 하기는 너무도 어렵습니다 / 비판하기전에 / 한번 격려를 해 보는것은 어떨까요? / 이것이 곧 인생을 사는 기술입니다 / 남에게 상처를 주기 전에 / 관심을 가져 보는 것은요? / 이것이 바로 생활의 지혜입니다 / 격려는 진실된 열린 마음으로 / 되돌아 옵니다 / 무시는 닫힌 마음만 안겨줄 뿐입니다 / 기억하세요 / 상대를 조롱하는 것은 / 나를 불안에 떨게 하지만 / 상대를 칭찬 하는 것은 / 나의 인생에 / 자신감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을... / 상대방의 장점을 / 좀 더 많이 찾아보세요”.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사랑을 지닌 격려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은 일터에서도 격려자가 되어야 합니다.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라는 책에 보면 잔잠한 감동의 실화가 있습니다.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라는 곡을 세계적으로 히트시킨 스티비 원더는 어린 시절 눈먼 흑인 소년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귀가 밝아 작은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교실 안에 쥐가 들어왔고 그 눈먼 소년은 귀를 기울여 쥐가 어디 있는지 알아냈습니다. 쥐는 쉽게 잡혔습니다. 선생님은 그를 따로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넌 우리 반의 어떤 친구도 갖지 못한 능력을 갖고 있어. 네겐 특별한 귀가 있잖니." 이 말 한마디로 소년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록펠러 재단의 직원 베드포드는 백만 불짜리 투자 프로젝트에서 큰 실수를 범해 40 만불의 손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록펠러가 베드 포드에게 무엇이라고 했겠습니까? 록펠러는 베드 포드의 어깨를 툭 치면서 “아! 자네는 경영의 귀재일세! 어떻게 그 어려운 상황에서 60 만불이나 건질 수 있었나? 내가 했다면 아마 백만불 이상의 손해를 봤을꺼야! 다음 프로젝트도 역시 자네가 맡아주게! 베드 포드는 자신의 실수를 비난하기 보다는 잘한 점을 칭찬해 주는 록펠러를 위해 犬馬之勞를 다하였고 그런 헌신적인 직원들을 많이 둔 록펠러는 세계적인 사업가로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가정에서 아내는 남편을 격려하고 남편은 아내를 격려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미국의 하딩 목사는 매우 급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어느 조그마한 회사에 근무했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급여인상을 차일피일 미루었습니다. 하딩은 매우 흥분해 급여인상을 강력히 요구한 후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사표를 쓸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자신의 뜻을 밝히고 출근하였습니다. 하딩은 그 날 일에 파묻혀 사장을 면담할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지친 몸으로 귀가한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두 장의 카드를 발견하였습니다. 아내가 준비한 카드였습니다. 한 카드에는 “여보 봉급인상을 축하해요!” 다른 한 카드에는 “봉급은 인상되지 않았지만 나는 당신의 능력을 믿어요 여보 힘내세요!“ 아내는 순경과 역경의 대비책을 미리 준비해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후 하딩은 아내의 격려에 힘을 얻어 가장 유능한 직원으로 부상하였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마주하면서 살아가면 그것은 거리가 없지만 서로 등을 돌리면 지구 한바퀴가 3 만 5 천 km 이니까 십만리를 가야 겨우 만날 수 있는 거리가 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격려할 때 사람들은 그 안에서 천국의 바로 옆집에서 사는 느낌이 들지만 서로가 서로를 헐뜯고 남이 잘되는 것을 못 보고 수군거리고 속칭 씹어대면 그들 가운데는 서로 지옥의 바로 이웃집에 살고 있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자녀들에게도 격려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에게 ”너는 왜 그렇게 지지리도 못났니! 넌 왜 그렇게 바보같으니!, 아예 니 엄마를 잡아먹어라!,“ 그런 한마디의 꾸중이 자녀들의 영혼을 완전히 고물로 만들고 재활용도 할 수 없는 망가진 영혼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격려받지 못하면 시들어 버립니다. 만일 아이가 맨날 꾸중만 받거나 야단만 맞으면 그 아이는 꽃이 피기도 전에 시들어 버립니다. 시들어 버리니 어떻게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격려와 인정 그리고 칭찬은 단 몇 마디로 이루어졌지만 놀라운 효과를 가져옵니다. 우리는 오늘날 세계에 유례없는 빡빡한 공부일정으로 시달리고 있는 우리 자녀들, 특별히 수능을 치른 자녀들을 격려하고 고무해 주어야 합니다. 자녀들도 부모님을 격려할 수 있습니다. 1993 년 9 월 텍사스 레인저스의 투수로 활동하다 그라운드를 떠난 놀란 라이언은 만 43 세까지 활약한 미국 최고령 투수일뿐 아니라 최고구속 162.3 Km는 기네스북에 올라 있으며 무엇보다도 탈삼진 714 개와 7 차례의 노히트노런은 좀처럼 깨지기 힘든 대기록이었습니다. 그의 여섯째 노히트노런 때 9 회말 마지막 공을 던지러 나가는 긴장된 순간에 관중석의 아들이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빠, 이제 3 명밖에 남지 않았어요! 비록 몸은 파김치가 되었으나 아빠는 아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여섯 번째 노히트노런에 성공했습니다.


여러분! 격려는 따뜻한 맘과 따뜻한 손이 있으면 누구든지 어디서든지 무엇을 하던지 좋은 격려자가 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따뜻한 마음과 예수님의 사랑의 손으로 격려할 때 격려는 놀랄만한 효과가 나타납니다. “18 살 작은 체구의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 헌신하고 수녀의 길을 걷기로 작정하고 유고슬라비아의 스코피에 있는 그녀의 집을 떠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떠날 때 그녀의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얘야,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님의 손을 놓아서는 안된다. 그리고 네가 사랑하는 예수님을 닮아 예수님의 손이 되어 살아가거라.” 그 후 그녀는 집을 떠날 때의 어머니의 음성을 일생 동안 기억하며 살았습니다. 기쁠 때에도 예수님의 손을 붙잡고 슬플 때에도 예수님의 손을 붙잡았고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을 때도 예수님의 손을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죽어가는 사람, 홀로 사는 어린이, 홀로 사는 여인을 위해 예수님의 손이 되어 살았습니다. 테렛하 수녀입니다. 마침내 1979 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비록 작은 체구로 보잘것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머니의 격려로 평생을 한 손으로는 예수님을 붙잡고 또 한 손으로는 가난한 인도의 영혼을 붙잡으면서 살아갔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서 악수를 제일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성도들의 손을 잡으려하면 “목사님 제 손은 찬데요! 그럽니다. 그래도 손을 잡으면서 ”일반적으로 손이 찬 사람은 맘이 따뜻하답니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그 말을 듣고 좋아합니다. 그런데 손을 잡으면 금방 호주머니에서 꺼냈는지 따뜻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성도가 제게 말합니다. ”목사님 손이 찬데요!“ 그러면 ”제 손이 찬 것이 아니라 집사님 손이 따뜻하니까 그렇습니다. 손이 따뜻한 사람은 맘도 따뜻하답니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눈치 챘습니다. 아니 목사님! 언제는 손이 찬 사람이 맘이 따뜻하다고 하시고 또 언제는 손이 따뜻한 사람은 맘도 따뜻하다고 하니 뭐가 진실입니까? 그렇게 따지면 서로 웃습니다. 진실이 무엇입니까? 실상 저는 손이 찬 사람이 마음이 따뜻한지 손이 따뜻한 사람이 맘이 따뜻한지 과학실험실이 있어서 어떤 객관적인 검증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제가 목회하는 모든 성도들이 맘이 따뜻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손을 잡을 때마다 당신은 맘이 따뜻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사람은 자기를 맘이 따뜻한 사람이라고 격려해주면 그 사람은 마음이 더 따뜻해지려고 노력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성도 여러분 모두가 맘이 따뜻하여 그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을 격려하고 그 따뜻한 사랑으로 소외된 사람을 돌보고 따뜻한 마음으로 격려해주고 인정해 주고 용기를 북돋우어 주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따뜻한 격려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랑의 하나님을 경험케 하고 하늘나라를 느끼게 합니다. 한 마디의 격려가 그 사람의 영혼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따뜻한 맘을 가지고 삭개오를 격려해주셨습니다. 따뜻한 격려를 하고 살 때 예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그래 저는 보은산에 오를 때마다 마음속으로 저 자신에게 “칭위격용포!!” “칭위격용포!!” 합니다. 칭은 칭찬, 위는 위로, 격은 격려, 용은 용서, 포는 포옹입니다. 칭찬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용서하고 포옹하고 혹은 포용하고 살자는 것입니다. 이 시간 옆에 사람을 안아주고 포옹해 주면서 칭위격용포! 하고 인사해 봅시다. 인사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칭위격용포!하는대로 칭찬하고 살고 격려하고 살면 이것이 칭찬받는 위로받는 그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격려하고 용서하고 포옹하는 내 인생에게도 참으로 고부가가치의 행복을 창출해 줍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 세상을 살면서 삭개오를 격려하시는 예수님의 따뜻한 맘과 따뜻한 손, 따뜻한 가슴이 되겠다고 다짐하시는 분은 눈을 감으시고 여러분의 두 손을 여러분의 심장에 얹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저희가 양손을 심장에 얹었습니다. 저희들은 이 시간 이후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따뜻한 심장을 가지고 어려운 이웃, 소외된 이웃 의지할 데 없는 이웃, 돌볼 이 없는 이웃뿐만 아니라 저희 가까이 있는 부모님과 자녀들과 형제들과 성도들과 교역자들을 격려하면서 용기를 북돋워 주면서 인정해 주면서 살겠습니다. 주님 행여나 저희가 남을 헐뜯고 남을 시기중상 모략하는 악인의 자리에 서지 않게 하시고 남을 깍아 내리는 죄인의 자리에 앉지도 않게 해주옵소서. 주님 저희가 이 세상을 살 때 예수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칭찬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용서하고 포용하고 살아가게 해 주시옵시고 저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환한 빛을 비추이면서 따사로운 맘을 전하면서 격려하면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참으로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게 하시고 예수님 닮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해 주시옵소서!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27:30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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