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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견과 잡견

윤병선 (대전노회,,장로) 2013-07-06 (토) 07:32 7년전 2559  
신구약 성경을 보면 '목자'라는 단어가 여러 상황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물론 그 어느 경우이든 '양을 돌보고 키우는 사람'이라는 기본적 의미는 같습니다. 특히 구약에서는 백성의 지도자를 목자로 표현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인 오늘날 성도들은 과연 누가 다스리는 것일까요.
간혹 목사를 단순히 '양을 돌보는 목동'이라는 의미에서 '목자'로 불러도 어의상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목자장'으로 호칭한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목회자를 목자로 부를 경우 신도들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줄 여지가 크기에 그 점이 문제가 됩니다. 양무리의 주인이신 유일한 '선한 목자'는 오직 예수님 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도 물론 목자의 역할을 부분적으로 수행하고는 있지만 결코 양들의 주인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구태여 의미의 혼선을 주면서까지 우리가 '목자'라는 명칭을 함부로 사용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교회를 보면 성경 공부를 인도하는 구역장이나 소모임의 리더를 '목자'라는 직책으로 임명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 역시 마찬가지로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고 명하셨지, '네 양을 치라'고 하신 적이 결코 없습니다.
 
사도들은 '만물의 찌꺼기'처럼 사역했다
성경을 보면 '개'가 간간히 등장하는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사람을 개에 빗대어 표현한 경우입니다. 열왕기서에 하사엘이 자신을 낮추어 '개 같은 종'이라고 표현한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이사야서에는 부패한 종교 지도자를 개로 서술했습니다. 그리고 귀신 들린 딸을 위해 예수님께 나아왔던 가나안 여인 또한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하며 자신을 개로 묘사했습니다.
사실 모든 사역자들은 "누가 크냐" 하며 양들 위에 군림하려 하지 말고 이 여인의 겸비한 자세를 가져야 마땅합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으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듯, 매일 주인의 상에서 바닥에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구하는 그 마음을 지켜야 옳습니다. 그래서 목사는 굳이 자신을 '목자'라고 하기보다는 '양치기 개'의 직분으로 자처하는 것이 더 적절한 처신입니다.
그런데 가끔 어떤 개는 자신을 하나님의 대리자나 대사로 자임하며 성도들 위에 서려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그런 행위는 대단한 기만입니다. 바울은 스스로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세우신 사도마저 그럴진대 하물며 오늘날 회중이 세운 담임목사직이 그 무슨 초법적 직분이라고 다른 성도보다 더 특별히 우월한 신분으로 높이어야 할까요.
따라서 성도들이 목회자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고 옳은 일이나, 일부 교회에서 보듯, 이에 도를 넘어 목사를 마치 천국의 열쇠라도 쥐고 흔드는 교주나 구약 제사장처럼 대접하며 맹종하는 것은 극히 어리석고 한심스러운 일입니다. 세상에 그 어떤 목사도 임의로 성도들에게 복권을 나누어 주듯 복을 줄 능력을 지닌 사람은 없습니다. 만일 그래도 그런 특권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막장 사이비입니다.
바울은 고백했습니다.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같이 되었도다." 이것이 바로 양을 돌보던 사도의 진정한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목회자의 자리는 어떻습니까. 과연 만물의 찌꺼기처럼 낮은 자리에서 사역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한국교회 목사만은 특별히 사도보다 높은 직분인가요.
지금 한국 개신교가 극복해야 할 난제 중 하나는 일부 목사들이 자신이 서야 할 바른 자리를 모르고 자꾸 높아지려 하는 데에 있습니다. 양치기 개가 목자 자리를 넘보고 이를 새치기하려 합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돌려야 할 영광을 가로채며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있습니다.
 
목양견과 잡견
본래 양치기 개란 목장에서 양을 돌보기 위해 훈련한 특수견으로 매우 영리하고 충성스러운 것이 그 특징입니다. 이미 구약 욥기에 '양 떼를 지키는 개'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 양치기 개의 역사가 매우 오래됨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략 20여 종이 있는데 그중에 유명한 것으로는 이미 잘 알려진 셰퍼드와 콜리, 보더콜리, 웰시코기, 올드잉글리시쉽독, 그리고 세틀랜드쉽독 등이 있습니다. 이런 양치기 개를 달리 '목양견'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그 충성심에 걸맞게 아주 적절하게 붙여진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도처에서 수많은 목회자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목양견의 책무를 헌신적으로 잘 수행하고 있는데 반해, 어떤 목사는 하필이면 하늘나라 족보에도 없는 잡견 노릇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목양견과 잡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외모나 크기보다는 그 '품성'에 있습니다. 목양견은 자기의 책임과 의무를 정확히 알고 이를 성실하게 수행합니다. 도적을 감시하고, 이리와 싸우고, 그리고 양들을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합니다.
반면에 잡견은 책임과 의무 그 자체를 아예 모릅니다. 신학교에서 조직신학과 실천신학을 달달 외우고 나오지만 그런 것들은 그저 겉치장일 뿐입니다. 막상 실제 목회 현장에서는 배운 지식과 상관없이 그냥 자기 욕심대로 삽니다. 그래서 도적을 보면 꼬리 치거나 도리어 이리와 합세하여 양을 덮치기 일쑤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일부 잡견들은 크게 변이하여 아예 이리로 거듭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틈만 나면 아무데서나 먹고 싸고 더럽힙니다. 그러다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될 것을 삼키기도 합니다. 소위 말하는 '삯꾼 목사'가 바로 이들입니다. 심지어 어떤 잡견은 노망이 들었는지 나이가 들수록 더욱 방종하더니 근자에는 자식까지 동원하여 교회 공금을 나누어 삼키며 부자가 나란히 개망신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더욱 가증한 일은 이 잡견들이 겉으로 위선을 떨며 명견 행세를 하려고 아주 애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두툼한 속주머니에 향수를 뿌리고, 돈으로 사치를 떨고, 그리고 알량한 박사 학위로 두꺼운 얼굴에 금칠을 합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잡견이 명견으로 둔갑할 리가 없습니다. 도리어 가는 곳마다 사고를 쳐서 온 누리에 악취와 노린내만 진동할 뿐입니다. 그 덕분에 지금 한국교회는 아주 순조롭게 개판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근자에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에서 목회자들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했었는데, "당신이 가장 존경하는 목회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답변에서 현재 생존 목회자 중에 1위가 조 아무개 목사님이랍니다. 그 뒤로 줄줄이 오 씨, 김 씨 등 대형 교회의 목사님들이었습니다. 대부분 공금 횡령, 논문 표절, 거짓말, 교회 세습, 성추행, 그리고 축재 논란으로 세상에 위명을 날린 분들입니다. 이게 지금 한국교회 보통 목회자들의 의식 수준입니다. 아무리 개가 색상 구분을 못 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흑백만이라도 제대로 구별해야 옳지요. 이러니 단일 직종 중에 사기꾼이 가장 많은 직업이 목사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오는 것입니다.
대형 교회 목회자들이 먼저 달라져야 합니다. 이들이 지금 정말 개처럼 낮은 자세로 헌신하며 사역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정승처럼 호사하고 있을까요. 교회 직분이 무슨 벼슬입니까. 주의 종이라면서 왜 그리 푼수처럼 사치와 위세를 부리며 사는지 정말 한심합니다. 어떻게 종이라는 분이 교인들은 아이들 간식비까지 줄이고 택시 대신 버스를 타며 힘들게 모아서 건축 헌금을 하고 있는 시기에 한 번에 천만 원이나 하는 1등석 비행기를 타고 다닐까요. 보통의 상식으로는 그 거룩한 심보를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하여튼 이런저런 이유로 요즘은 옆집 강아지 보기가 미안할 정도입니다. 한국교회의 귀족 목사들을 양치기 개라고 호칭하는 것은 도리어 '동물 학대'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대형화하여 연봉 몇 억은 기본으로 챙기고 거기서 단물을 빨고 권력을 누린 것 외에 무슨 대단한 사역을 하였는지 스스로 반성을 좀 해야지요. 어느 분이 오죽 답답하면 이들을 향해 '양복 입은 무당'이라고 하겠습니까.
예수님도 단지 12명의 제자를 두셨을 뿐인데, 어떤 귀족님들은 자기가 무슨 대단한 초능력자라고 수천의 제자를 키우겠다며 피라미드 다단계 사업처럼 저리 욕심을 부리는지 정말 가소롭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그깟 대형 건물 하나를 건축할 능력이 없어 빈들이나 소박한 회당에서 사역을 하셨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요즘 유명 목사들보다 가르치시는 역량이 부족하셔서 고작 12명의 제자를 키우셨을까요. 결코 아니지요. 한 영혼 그리고 또 영혼을 소중히 돌보아야 하는 진정한 목회는 그런 양계장식 대량 사축이 절대로 아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대형 교회 담임목사 대부분은 자기 양의 이름은 물론 그 아픈 속사정을 거의 모르고 있습니다. 이러니 결국 참된 제자는 별로 못 키우고 만날 복 타령이나 하는 맹신도를 무더기 날림으로 양산하여 돈을 갈취하고 교단 정치에 몰려다니며 자기 권력과 세력 키우기에 몰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분들이 진정 '신성한 목사님들'인지 아니면 '실성한 목사님들'인지 성도들은 마냥 헷갈립니다.
그러니 무슨 파수꾼의 역할을 잘 감당하겠습니까. 입으로는 늘 칼뱅과 웨슬리의 신학을 자랑스럽게 노래하지만, 실제로 그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검소하고 청빈하게 살았는지 그런 중요한 사실은 제대로 가르치거나 실천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껏해야 은밀한 밀실에서 교회 장부나 뼈다귀처럼 움켜 물고 침을 흘릴 뿐입니다. 누가 이들에게 그 냄새 나는 장부 좀 잠깐 보자고 하면 아예 난리가 납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일부 잡견들이 아무리 무게 잡고 유창하게 달콤한 설교를 늘어놓아도 수시로 '개소리'처럼 들리는 것은 필자만의 환청일까요.
성경에 제자를 키우라고 했지, 언제 화려한 건물을 키우라 했습니까. 과연 건물 삽질에 몰두한 선지자나 사도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나요. 다 대형화한 귀족 교회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며 '전심으로' 돌보고 있습니까. 그리고 정말 한 영혼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양육하고 있습니까. 턱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들 상당수는 그저 성도들의 주머니를 털기 위해 매주 느끼한 화술과 잡다한 프로그램으로 '종교 쇼'를 열연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잡견과 목양견을 구별하는 방법이 그리 어려운 것만은 아닙니다. 우선 목회자 신분으로 사치를 떠는 자는 일단 잡견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제 주제를 모르는 것이 잡견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가 아무리 천사의 입술로 설교를 잘하거나 은사를 듬뿍 퍼 준다고 해도 쉽게 믿지 마십시오. 또한 당회나 제직회를 어용화하여 목회 독재를 하고, 교회 재정 장부를 숨기고, 툭 하면 선교나 사업을 핑계로 해외여행을 하고, 고액 강사료를 주고받으며 외부 집회에 분주하고, 고급 승용차를 즐기고, 그리고 시치미 떼며 고연봉을 챙기는 자들은 거의 틀림없이 이리로 변절하고 있는 '변이 잡견'이라고 의심하셔도 무방합니다.
 
목양견은 '바닥'에 앉는다
참된 목자는 없고 도적과 이리가 설치는 교회를 향해 성경은 이렇게 탄식합니다.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아니하며 쫒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포악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고 흩어져 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겔 34:3~5)."
한국교회에 양의 탈을 쓰고 제사장 가운을 걸친 간교한 이리들이 설치고 있습니다. 교회의 많은 '지도자'들이 목자의 마음을 배신하고 '지배자'로 변절하였습니다. 그 결과 교회가 사랑과 공의를 잃고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이야말로 정말 강직하고 헌신적인 목양견이 매우 절실한 때입니다.
어느 여론 조사를 보니 세인들이 교회를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목사들 때문이라고 합니다. 매우 슬픈 사실입니다. 혹시 높은 자리를 선망하여 목사가 된 분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제발 다른 직업을 찾기 바랍니다. 또한 확실한 소명 없이 아무나 신학교로 달려가지 말기 바랍니다. 신학교는 양들의 영혼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걸고 이리와 싸우는 목양견을 훈련하는 곳이지, 복날에 때려잡을 잡견을 사육하는 곳이 아닙니다.
아울러 일부 목회자들은 말로만 겸손한 척하지 마시고 실제 삶으로 종의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종은 종다워야 하고, 개는 개다워야 합니다. 개가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지 않고 함부로 주인의 밥상에 오르면 그 상은 당연히 개판이 됩니다.
그러므로 목사가 종의 자리를 망각하고 상전이 된 교회는 비록 간판은 정통일지 모르나 저절로 사이비화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게 바로 한국 귀족 교회들의 적나라한 현주소입니다. 개가 상석에 앉은 교회는 결국 개 같은 공동체가 된다는 것을 지금 우리 모두가 날마다 보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교회는 이제 특정 직분을 우상화하는 몰지각한 성직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목사가 실질적으로 교회의 거의 모든 일을 간섭하고 관리하는 '목회자 중심주의'는 반기독교적인 그릇된 사상입니다. 모든 성도가 다 제사장이고 또한 모든 직분자가 다 대등한 동역자입니다.
교회 내의 여러 직분 중에 목사는 진리를 가르치고 지키는 파수꾼의 사명으로 동역하는 아주 소중한 직분입니다. 한국의 개혁 교회가 바로 서려면 이 목사직이 탈선하지 말고 바른 자리를 견실하게 지켜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목자 예수님을 사랑하는 충성된 목양견은 '밥상'이 아니라 '바닥'에 앉는 법입니다.

샬롬!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사 56:10~11)."
 
출처  -   뉴스앤죠이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3-07-06 10:16:55 게시판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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