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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66 (한영1- 신31:2 외 )

이동원 (서울북노회,성광교회,목사) 2019-11-07 (목) 07:37 15일전 153  

최근 한국의 한글이 뛰어난 언어라고 극찬한 세계적 학자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어떤 언어마다 특성이 있을 것이고 다른 나라의 언어와 비교하여 장단점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세계어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는 영어와 국어로 함께 성경을 대조하여 읽는 것도 대단히 유익하다고 본다. 어떤 언어에서 정확히 느끼지 못한 부분을 새롭게 깨닫기도 한다. 영어는 우리 한국의 교육과정에서 이미 배우고 있기에 한영으로 같이 보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유익하다 할 것이다.

세계인으로서 당연히 세계어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사용할 기회가 거의 없다. 그러나 성경을 한영으로 읽는다면 그것은 영적 신앙적 그리고 우리의 삶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유익하다 할 것이다. 영어 성경은 영어 문장은 가장 정통적 문학적으로도 탁월하다 할 것이다. 영어에는 문법 독해 듣기 쓰기 말하기 읽기 등 여러 내용이 있다. 여기에 많은 유익을 줄 것이다. 그런데 영어를 듣기는 역시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말하는 사람마다 저마다의 표현 양식이 있고 영어식 발음은 한국어와 전혀 다르고 문장의 순서 그리고 문화도 다르기에 영어의 듣기는 가장 어려운 것 같다. 그러나 그 외에는 많은 유익을 즐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 성경은 평생 읽어야 하고 읽을 책이다. 이것은 비록 신앙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내가 볼 때 일반의 책으로 비교한다 해도 가장 탁월하고 놀라운 책이라고 본다. 물론 내가 목회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평가 할 수도 있다고 보겠지만 많고 많은 책을 읽었지만 최고의 책이라고 본다. 그것은 읽으면 읽을수록 그러하다. 역사적 문학적 교훈적 등등 거의 모든 면에서 그러하다는 것이다. 알면 알수록 보면 볼수록 더욱 그러하다는 것이다. 물론 주관적 판단이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말이다. 한영 성경의 영어 판은 niv 1984 판을 사용하였다. kj 번역이 가장 역사 깊고 놀치 평가 격찬하기도 하지만 극히 부분적으로이지만 고어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1. 주님의 교훈은,

(신32:1-2)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단비로다.

 Listen,

O heavens, and I will speak; hear, O earth, the words of my mouth./

 

Let my teaching fall

like rain and my words descend

like dew, like showers on new grass,

like abundant rain on tender plants'

 

표현이 사실적이고 실제적이면서도 문학적이다. 문학적으로 표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어도 자연이 문학적이고 예술적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는 자연의 그 모습을 최고의 예술일 것이다. 어떤 청순이 차를 타고 산을 넘어가며 자연의 단풍의 모습을 보고 울었다는 것이다. 너무 아름답고 감동적이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자연을 하나님이 창조한 자연을 그대로만 표현할 수 있다면 최고의 문장이고 예술일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로 그러하지만 말이다. 일부러 꾸밀 것이 없이 사실적으로 아니 사실에 가깝게 표현만 할 수 있다면 말이다. 홍해 바다 앞의 이스라엘의 상황과 건너가는 모습 그리고 건넌 후의 감격을 누가 그 백분의 일 천분의 일이라도 제대로 표현 할 수 있겠는가, 성경에는 그러한 장면과 내용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많다는 것이다. 문제는 누구도 그것을 다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은 그 표현의 부족함도 채워주신다는 것이 우리의 위로이다.

 

연한 풀 위에 가는 비

채소 위에 단비로다.

연한 새싹의 풀에 무겁고 강한 비가 임한다면 그 새 싹의 풀은 다 상하고 그 이상일 것이다. 그런데 그 때는 창조주 경영자께서 부드러운 단비를 주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좀 더 자란 채소 위에선 감당할 만하고 거기에 맞는 좀 더 강한 적절한 비를 주신다는 것이다. 신앙의 인생사에도 하나님의 역사는 그렇게 역사하실 것은 물론일 것을 알 수 있다.

( * 이러한 내용을 원문대로 운율에 맞게 잘 번역한 개역의 본문을 개정은 더 부족하게 수정하여 버렸다. 성경 이해와 문학적 수준과 감감이 둔한 번역자가 불필요하게 수정한 것이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2. 우상은 없고 없고 없더라 이다.

(왕상18:29)

이같이 하여 오정이 지났으나 저희가 오히려 진언을 하여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를지라도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고

아무 돌아보는 자도 없더라

Midday passed, and they continued their frantic prophesying until the time for the evening sacrifice.

But

there was no response,

no one answered,

no one paid attention.

(* 역시 잘 번역한 개역의 번역을 무슨 이유인지 개정판은 수정한 것이다. 구약을 번역한 분은 유대계 인으로 성경을 잘 알고 시편을 거의 암송하며 자란 사람이었다. 또 어학도 육개국어 이상을 한 어학의 귀재 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잘 갖춘 분이 개역 성경을 감수하였고 특히 구약을 번역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에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었다고 이미 역설한 바 있다.)

 

3. 12:30

이스라엘의 애굽 생활 사백 삼십년 만에 자유함을 찾는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감격에 감격이다. 물론 그들이 처음부터 노예가 된 것은 아니지만 어느 덧 애굽의 노예의 삶에서 자유함을 얻는 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은 감격과 놀라움일 것이다. 더구나 애급 왕 바로가 그들의 노동력 이스라엘 백성을 보낸다는 것은 누구도 상상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길고도 난공불락의 어려울 것 같았던 하나님의 표징의 역사로 바로가 드디어 항복하고 이스라엘을 보내는 장면이다. 너무나 극적이고 감격적이고 놀라운 장면이다.

그러나 한글 성경으로 읽다보면 그 중요한 사건의 동사가 저 뒤에 묻혀있으므로 별 생각없이 읽으며 지나갈 수 있다. 아무런 감동도 못 느끼며 말이다. 그러나 영어 성경은 그 사건의 동사가 제일 앞에 있으므로 그 내용의 장면을 더욱 분명히 알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출12:30-31)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호곡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사망치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Pharaoh and all his officials and all the Egyptians got up during the night, and there was loud wailing in Egypt, for there was not a house without someone dead.'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서 떠나서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During the night Pharaoh summoned Moses and Aaron and said,

"Up! Leave my people, you and the Israelites!

 
Go,

 

worship the LORD as you have requested.'

 

이 예배하라는 말도 얼마나, 얼마나 놀라운 말인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를 부를 때

네가 애굽에 가서 내 백성을 인도하여 내리라고 하셨다.

모세는 그것이 말도 안되는 불가능 한 것으로도 보여 계속 사양하였다.

다섯 번 정도를 여러 핑계를 대고 사양한 것이다. 누가 보아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바로 애굽 왕 바로의 입을 통해서 예배하라 섬기라고 한 것이다. 영어성경에는 이러한 단어가 문장의 제일 처음에 동사로 나오기에 잘 의식을 할 수 있는데 한국어 성경에는 뒷 부분에 다른 단어와 섞여 뒷 부분에 나오기에 이 놀랍고 감격적이고 감동적인 단어를 그 냥 무심코 지나쳐 버릴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 다른 나라의 성경 특히 잘 번역된 한영성경과 같이 보면 좋다는 것이다. 영어 성경은 그 번역의 역사가 한글 성경보다 오래 전 번역이 되었기에 더 잘 검증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4.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I have told you these things, so that in me you may have peace. In this world you will have trouble. But take heart! I have overcome the world."

 

이 내용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전날 밤 마가의 다락방에서 유월절을 지키시면서 하신 말씀 중 마지막 말씀이다. 그런데 그 내용을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에서 이기었다는 것은 죽으시고 부활 또한 그 이후를 말씀하시는 것은 분명하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간적인 생각의 문법으로는 당연히 미래를 써야 하지 않겠는가 할 수 있다. 내가 이길 것이다. 내가 미래에 이길 것이기 때문이다 라는 뜻으로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국어로 이기었노라고 하셨다. 미래가 아니라 이미 이기신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은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어 성경으로는 현재완료의 동사를 사용하였다. 이미 현재 이겼다는 것이다. 한국어에는 이러한 현재완료의 표현을 하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을 초월하시는 분이시기게 미래의 사건을 현재화 해서 이미 현재 이겼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도 한영성경을 같이 보는 것은 좋다. 그 비슷한 중요한 부분을 한 군데 더 보자. 너무나 잘 알려진 내용이다. 모세가 하나님께 이름을 무엇이라고 하여야 하겠는가 물었을 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내산 불붙은 떨기나무 앞에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과 같다는 것이다.

요8:58절의 말씀을 보자.

 

5. 내가 있느니라

(8: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8:58 "I tell you the truth," Jesus answered, "before Abraham was born, I am!"

 

아브라함 이전이면 당연히 과거나 과거완료 동사를 써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현재이시기에 현재 동사를 사용한 것이다. 모세가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가 너를 보내었느냐고 하면 그 이름을 무엇이라고 하여야 합니까 물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알려주신 출3:13절의 스스로 있는 자 (I AM)와 요8:58 절의 내가 있느니라(I AM)는 동일한 뜻이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다. 지구의 문법에 제한되시지 않는다. 지구의 과학에도 역시 제한되시지 않는 것이다. 시간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 지구의 시간에 제한되어 계실 수 없다는 것이다. 지구의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영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무한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머리털을 세시고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지키신다는 것에 놀라움과 함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가 동일하다. 영원히 현재이신 분이시다. 과거 현재 미래는 지구에 제한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구의 시간은  지구가 자전 공전 하므로 시간이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지구의 자전 공전이 만든 시간에 제한되어 계시는 분이 아니시다. 시간을 초월 하시는 영원한 분이시다. 인생들의 시간이나 문법에도 제한되지 않고 초월하신 영원하신 분이시라는 것이다.

                                                                ( - 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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