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부옥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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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6) - " 하나님께 부요한 인생을 택하라 "
2025-10-12 13:53:39
최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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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신 26:1~11, 눅12:13-21, 고후9:6-15

 

오늘은 창조절 여섯째 주일이다. 추석과 개천절과 한글날이란 긴 연휴를 거의 10여일 간이나 보낸 후에 맞이한 주일이다. 가족과 친지, 그리고 가까운 이웃들 모두와도 한층 거리를 좁힌 뜻깊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얻어진 긍정적 에너지로 인하여, 남은 여년(餘年)의 일정이 더욱 활기있게 이어지기를 빈다. 

 

무엇보다도 가을이 본격화되면서, 농부들의 가을 수확 계절이 활발하다. 그 바람에 맛있고 잘익은 가을 열매들을 우리는 한껏 즐길 수 있게 되어 즐겁다. 게다가 우리 한반도 주변의 여러 나라들의 기상 상황을 들으면, 그들이 돌풍, 태풍 등의 각가지 기상 이변으로 인한 환경 재앙에 얼마나 시달려 왔는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자칫하면, 식량 위기를 염려할 정도이다. 그런데도 우리 땅의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도 그런 피해가 아주 경미하다. 감사하다. 

 

이런 여건 속에서 우리는 오늘 주시는 세 본문 말씀을 받게 된다. 어떤 내용의 말씀들인가? 

 

구약의 말씀은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이 차지한 땅에서 첫 추수를 하게 된 일을 두고, 이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어떤 경배를 드려야 마땅한 것인지를 안내해 주는 말씀이다. 그들의 추수는 이제 오랜 세월 그들과 그들 조상이 종사해 왔던 목축업에서 벗어나, 땅에 주는 소출을 먹게 되는 농업 중심의 생업을 새롭게 시작하게 된 일을 두고, 그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얻어낸 소출에 대하여 여호와께 어떻게 응답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받는다. 

 

복음서의 말씀은 부모의 유산(遺産)을 형제와 나누려는 마음이 아니라 장남으로서 독점하려거나 탐욕을 부리려는 사례를 두고, 예수님의 경고하신 말씀이 올라와 있다. 탐심은 사람의 생명을 유익하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해독을 끼치게 됨을 경고하시면서,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는 가진 재물을 독점하거나 땅에다 쌓아 두려는 태도보다는, 하나님께 드리는 등의 부요(富饒)한 방식을 찾아 살 것을 지시하신다. 

 

그러면 하나님께 부요한 삶을 사는 방안은 무엇일까? 그 점에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서신서의 내용을 통하여 그 해답을 제시하여 준다. 그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연보) 이외에도, 어려운 이웃들을 생각하며 돕고 지원하며 협력하는 등의 착한 일들을 하며 사는 삶을 말한다. 곧 내가 가진 소유를 흩어서, 어렵고 가난하며 고난 당하는 많은 주변의 이웃들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다. 

 

이런 세 본문의 중심 내용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한 해의 추수(秋收)로 내 창고와 호주머니에 소유물이 쌓아지는 복(福)을 어떻게 관리하며,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 부요한 삶을 살게 할 것인지에 대한 큰 틀의 지침(guide-line)을 세워두고 착실히 실천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다음의 몇 가지를 제시해 본다. 

 

첫째, 나와 내 소유는 본래부터 없고, 다만 모두가 창조주요 조물주이신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는 인식을 품고 산다. 그렇다.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에서부터 이 세상에서 누리고 사는 그 모든 것 일체도 본래의 내 것은 없다. 모두가 조상들을 통하여 안겨진 것이며, 그 조상들 모두도 조물주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우리에게 전수해 주신 것이다. 그러기에 생각하면 할수록, 내 모든 것은 내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가 하나님의 선물일 뿐이다. 

 

특히 물질이나 소유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내 내면에 들어 있는 생명과 기능과 재주와 특성들도 모두 다 받은 것들이다. 그런 것들은 모두가 조물주가 나로 하여금 이 거친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차별화를 받으면서, 자신을 독보적 존재로 살아갈 수 있도록 부여하신 선물들이기도 하다. 그런 내면의 은사는 들여다볼수록 하나같이 그 누구와도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의 독창적이며 신성하기조차 하다. 그러기에 그런 기능과 특성을 살려내면, 그는 이 세상살이를 ‘그렇고 그런 사람’이 아니라,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될 ‘스타’로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둘째, 이런 현실을 알게 된 존재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이 된 나는 내 손에 들어온 소유물들을 어떻게 관리하며 살아가야 할까? 단연코 감사하고,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친절해야 한다. 주인 의식이 아니라 청지기 의식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이 받은 복처럼,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면서 또한 받은 그것들을 내 뜻과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도구가 아니라, 주신 분의 뜻에 맞도록 사용될 수 있는 선행의 도구가 되는 마음가짐을 품고 살아야 한다(창12:2-3 참조). 

 

그렇게 살면, 그 후의 모든 국면이나 책임은 모두가 하나님이 도맡아 주신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살려는 자들을 기뻐하시면서, 당신의 모든 것을 맡겨도 좋겠다고 판단하셔서, 더 주시고 더 풍성히 살도록 채워주신다. 그것도 내 방식이 아니라, 그분의 방식대로 채워주신다. 그때는 내가 전혀 기대치 않았던 모양새로 나의 삶을 영광스럽게 만들어 주신다. 이게 바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자에게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는 하나님 보상의 법칙이다(마6:33 참조). 내가 내려놓으면, 하나님은 그 빈 자리를 채워주시는 방식이다. 

 

하지만, 정반대로 살면 어떻게 될까? 하나님이 아닌 오직 자기 욕망과 만족을 구하고 자기에게만 부요하려고만 하면, 어떻게 될까? 금새 부패(腐敗)해 지기 시작할 것이며, 그로 인하여 사람들에게는 물론, 하나님에게까지 따돌림을 받는 인생이 된다. 하나님이 없는 영혼이 되어서 그 결과는 아주 비참해질 것이다. 이웃도 없어져서, 그의 외로움이 지옥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기에 이제 선택해야 한다. 오늘 말씀을 잘 듣고, 이제라도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1. 구약 / 신26:1-11 /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에서 그 토지의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가져다가 -- ‘여호와여 내가 이제 주께서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 네 하나님 앞에 경배할 것이며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

 

하나님의 맏물(처음 것/첫 열매)에 관한 관심은 대단하시다(창4:4, 출13:1 참조). 왜 그러실까? 이는 탐욕이나 지배욕 때문이 아니라, 나머지 전체와의 관계를 확실히 하고 맺고 싶어 하신 까닭이다. 일종의 방향 잡기랄까(!). 그 바친 하나로 안 바친 나머지까지도 복을 주시려는 특별한 의도이기도 하다. 그 바친 하나로 나머지 모두를 성별(聖別) 하고자 하심이다. 그 대상은 인간이나 가축만이 아니다. 식물인 땅의 소산의 맏물까지도 구별해 바쳐야만 했다(2절). 바침의 절차도 간단하지 않았다. 불쑥 내밀어 주는 형식이 아니라, 고백과 함께 올리는 헌물이었다. 그 내용을 살핀다. 

 

1) 토지의 모든 소산의 맏물을 수확하면, 그것을 광주리에 담아 여호와의 이름이 있는 곳(성소)으로 가져간다. 그곳의 제사장에게 먼저 ’내가 오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뢰나이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라고 신고(申告)한다(3절). 그러면 제사장이 그의 손에서 그 광주리를 받아서, 여호와의 제단 앞에 놓는다(4절). 그러면 그 맏물 봉헌자(奉獻者)가 고백을 잇는다. 그 맏물에 담긴 그들 역사의 무게를 담은 진한 고백이다. 마치 우리의 사도신조(使徒信條)에 담긴 신앙고백처럼 고백한다. 

 

☞ “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애굽에 내려가 거기에서 소수로 거류하였더니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는데,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에게 중노동을 시키므로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시고,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5-10절) 

 

2) 이 고백과 함께 그 맏물을 여호와 앞에 두고,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드린다(10절). 그 직후에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그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힘없는 주변 이웃들을 초청하여 즐거움을 나눈다. 그 대상은 수입이 없이 여호와의 성전 일에만 전념하며 사는 레위인과 그들 가운데 거류하는 나그네(손님)들이다(11절). 그렇게 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풍요롭게 향유(享有)하는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스스로 입증한다. 

 

2. 복음서 / 눅12:13-21 / “ 삼가 모든 탐심(貪心)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 자기를 위하여 재물(財物)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

 

그러면 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인간이 가진 재물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하셨는가? 그를 따르던 사람들에게 가르치신 내용을 살펴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본문이 그 내용을 전한다. 

1) 먼저는 재물에 대한 그 어떠한 탐심도 버릴 것을 명하셨다(13-15절). 그 까닭은 그 어떤 재물이나 그에 대한 욕망이 그 사람의 생명(生命)을 구원하는 데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유해(有害)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르침은 유산 문제로 예수의 개입과 도움을 청하는 자가 있어서 나온 주님의 가르침이었다.

 

2) 어리석은 부자의 사례를 비유로 들어서, 그 탐욕의 폐해와 함께 그 소유물로도 영혼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있음도 제시하셨다. 한마디로, 자기 소유를 가지고 자기만족이나 탐욕의 함정에 빠져 사는 것을 중지하고, 오히려 하나님께 부유한 자의 삶을 선택하라는 점을 지시하신 것이다(16-21절 참조). 그런 예수의 가르침으로 인하여, 우리 그리스도인은 재물을 저주의 도구가 아니라 축복의 도구로 삼을 수 있는 길을 찾게 되었다. 

 

3) 비유에 나타난 부자는 왜 어리석었는가? 소출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게 되니까, 고민이 생겼다. 그 고민은 쌓아 둘 곡간의 부족 문제였다. 그래서 기껏 방책을 찾은 것이 공간 확충을 통하여, 보다 많은 재물을 보유하고자 한 일이었다. 그런 생각만 해도, 무한이 행복했다. 육체의 만족감을 물론이고, 영혼까지 행복해진 느낌이었다. 온 세상을 소유한 느낌이다.

 

4) 그러자 그를 지켜보신 심판자 하나님이 급습(急襲)하셨다(20-21절). ’이러석은 자여‘라는 부름이 그 이유였다. 그 영혼의 주인이 그에게서 자신이 주셨던 영혼을 다시 찾으시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날 밤에 말이다. 결국 그의 어리석음은 어디에 있었는가? 이미 앞에서 증언한 바대로, 자신의 것 곧 육체는 물론 영혼까지도 자신의 것은 하나도 없음을 그가 깨닫지 못하고 산 까닭이요, 자신은 오로지 하나님의 청지기임을 잊고서, 모든 것을 자기 맘대로 자신만을 위한 것으로 삼고 살아왔다는 이유 때문이다. 탐욕과 독점의 허상에 빠져 산 것이다. 

 

5) 예수님은 그런 허상에 빠진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책임을 묻고 심판을 하신다는 점을 아주 분명히 선포하신 것이다(20절). 이 얼마나 두려운 통고인가? 

 

하지만 자비로우신 주님은 우리에게 숨 쉴 수 있는 출구를 알려 주셨다.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는 입장이셨다. 곧 그 부자처럼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게 사는 자들은 오히려 그 재물로 인하여 생명과 구원을 풍성히 누리게 되리라는 점이다(21절). 이는 참 복음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 부요한 길은 어디인가? 

 

3. 서신서 / 고후9:6-15 / “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

 

그 답의 일부를 예수의 제자인 사도 바울이 사례를 들어 제시한다. 바울의 선교지인 그리스의 남부인 아가야 교회(고린도교회)와 북부인 마게도니야 교회(빌립보-데살로니가교회 등)들은 예루살렘 모(母)교회가 대흉년으로 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대모금 운동에 함께 했다. 그 결과, 먼저 시작한 남부는 게을렀으나, 뒤늦게 참여한 북부는 적극적이고 뜨거웠다. 헌금도 일찍 끝냈으나 남부의 지연으로 전체가 늦춰졌다. 바울 편지는 바로 그 점을 담고서, 고린도 교회의 분발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곧 하나님께 부요한 길은 이러하였다 : 

 

1) 모금 참여는 ’심는다는 마음으로‘ 참여하라. 그 누구든 심은 분량대로 거둘 것이다(6절). 

2) 정한 마음으로 하되, 인색한 마음은 안된다. 주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신다(7, 11절). 

3) 하나님은 이 일을 교회를 통하여 성취하게 하실 터인데, 그 착한 일에 동참자가 되라.(8절) 

4) 자기 소유를 흩어 가난한 자에게 준 자는 그 의가 영원토록 있으리라(9절, 시112:9 참조).

5)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분과 심을 것과 풍성하게 하셔서 의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같은 분이심도 잊지 말라(10절)

6) 이 봉사로 부족함을 보충받는 이들은 감사를 하나님께 돌릴뿐더러, 봉사자들을 위하여 간구하게 되고 그들을 사모하게 됨으로서, 하나님의 지극한 은혜를 모두 맛보게 한다(12-14절). 

 

o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 한복판에서 살고 있다. 물질 만능주의가 판을 친다. 가진 자가 힘 있고 능력자로 우대받는 시대를 산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얼마를 소유를 하였는냐에 있지 않다. 반면에 소유가 얼마든 간에, 그 소유를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하나님의 것들에 대한 청지기 정신이 절대 중요하다. 하나님의 뜻과 원하신 바대로, 그가 맡기신 모든 재물과 소유를 사용하려는 태도가 절대 중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나의 재물은 나를 지옥으로 보내는 저주물이 될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임을 다시 기억하자. 나와 내 안의 것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이기를 소원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힘과 위로를 주는 하늘 생명이 되기를 소망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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