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9:9-17, 사43:18-21, 44:21-23, 행16:25-34
오늘은 주현절 셋째 주일이다. 우리는 지금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의 삶과 일생을 본격적으로 배우고 익히는 때를 보내고 있다. 그러기에 그 동안 우리는 매 주일에 주님의 어떤 면모(面貌)를 접하고 있으며, 그에게서 어떤 부분을 배우고 익히고 있는 지가 궁금하기에, 잠시 정리해 본다.
첫째 주일(11일)에는 오셔서 우리를 당신의 제자와 백성으로 택하여 부르시는 주님을 만났고, 그가 택하신 자들이 부여받은 소명과 책임을 잘 감당하도록 하기 위하여, 가르치시고 선포하시며 치유(治癒)하시는 모습을 확인하였다. 둘째 주일(18일)에는 그런 위치에 모인 제자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고 누리며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는 절대적 수칙(守則)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서로 사랑으로 서로 하나 되어야 함을 배웠다. 이는 분열과 분쟁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나, 오직 사랑이 주는 하모니를 추구하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셋째 주일(25일)인 오늘에 주시는 세 본문의 가르침을 무엇인가? 이를 위하여 먼저 복음서는 메시아 예수께서 어떤 마음과 원칙을 가지고, 제자들이나 죄인들을 찾으시는가를 소개한다. 그때의 주님이 품으신 마음이 중요한데, 그 마음은 정죄자나 심판자의 마음이 아니라 병든 자나 죄인을 매우 안타깝게 보시고 치유하려는 의사의 마음을 가지고 상대하신다. 그런 점에서 당시 사람을 죄인으로 정죄하며 심판하고 차별하던 바리새인과는 천양지차 이셨다.
구약 예언서는 그런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은 어떤 의식 구조와 마음가짐을 품어야 하는지를 일깨워 준 내용이다. 마음에 기억하기에 불필요한 것들이 있고, 반드시 기억하고 살아야만 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기억할 필요가 없는 것은 믿기 이전에 죄 짓고 잘못 살면서 어둠의 자식으로 살아왔던 아픈 기억들이다. 반면에 반드시 기억할 것은 이제는 자신이 거룩하신 하나님이 지으신 자이며 그의 종이고 여호와께서 절대 잊지 못하실 자가 된 일이다.
서신서는 어떤가? 주의 선택받은 자가 삶의 고난과 역경을 만날 때 취하는 마음과 행동거지가 이렇게 되어야 하는 지를, 바울과 실라의 사례를 통하여 구체적 보여 준 내용이다. 기도와 찬송으로 닥친 고난과 역경과 맞서 응전해갈 때, 하나님께서 어떤 모습으로 그들과 함께 하시는 지도 생생히 보여 준 아주 고귀한 사례이다. 이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배우고 익혀야할 모습이다.
이제 세 본문 내용을 통하여 주님의 마음을 품고, 믿음으로 살아갈 때 어떤 결과와 열매를 맺게 되는 지를 제대로 확인해 보자.
1. 복음서 / 마9:9-17 / “ 너희는 가서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
본문은 구세주 예수께서 연약하고 죄인인 인생들에게 어떤 심정을 가지고 접근하시면서 은혜와 사랑을 베푸셨는 지를 증언한 내용이다. 그 분의 마음은 호6:6에 있던 그 마음이셨다.
1) 예수님의 계속된 제자 선택의 대상은 이번엔 어부가 아닌 공직자인 마태였다. 그는 가버나움 해변에 있는 세관(稅關)에서 세리(稅吏)로 일하던 공무원이었다(9절). 그 직업은 대체로 돈을 많이 만지는 일이었고 그것도 많은 돈을 거두어 로마 황제에게 보내야하는 일이어서, 유대교에서는 가장 죄인으로 정죄하는 직업군의 인물이었다. 유대교도들은 특히 세리들을 ‘죄인의 괴수’처럼 간주하였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런 직업을 가진 마태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셨다.
2) 놀라운 것은 부름을 받았던 당사자 마태의 태도였다. 성서는 그의 응답하는 태도를 매우 담백(淡白)하게 전한다. ‘일어나 (즉시) 따르니라’(9절, 하). 이런 모습은 앞선 베드로 형제들과 요한 형제들과도 다를 바 없다. 대체 마태는 어떤 마음에서 그랬을까! 평소 죄인의식에 깊이 시달리는 자기를 예수께서 그토록 무조적적으로 품어주심(긍휼)에, 그의 삶이 요동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예수님과 함께라면, 자기에게도 새 삶이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3) 매우 의미 있는 파티(만찬)가 그의 집에서 열렸다(10절. 상). 일종의 마태의 예수 제자 취임식(就任式)과 같은 식전(式典)이었다! 초대 받은 인사들도 많았다. 많은 동료 세리들과 죄인들이 그 파티에 참여하여 그의 새 출발을 축하해주면서, 예수님과 제자들과도 함께 어울렸다(10.후). 유대교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놀랍고 기이(奇異)한 새로운 어울림이었다.
4) 거센 반발도 잇따랐다. 정죄와 심판에 능한 당시의 유대교 바리새인들로부터 거센 공격이 들어온 것이다. ‘어찌 (의인인) 예수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느냐’는 것이었다(11절). 그들은 소위 랍비란 자인 예수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랍비가 저토록 죄인들과 어울리는 일에 경악했다. 사실 그들은 바로 그런 시각 때문에, 죄인들을 향한 선교(宣敎)가 막히면서, 자기들의 종교가 죽은 종교로 전락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5) 그러면 예수님은 도대체 어떤 가능성을 보시고 죄인인 마태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신 걸까? 기본적으로는 한 인간을 죄인이란 멍에를 씌워서 공동체에서 배제하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기회를 부여하는 일이 당신의 뜻으로 보셨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을 위하여 예수는 모든 인간들을 정죄 받아 매장시킬 대상이 아니라, 치료와 의사가 필요한 환자들로 보셨고, 당신이 바로 그 죄인들의 치료(구원)자로 오신 자임을 분명히 천명하신 것이었다(12-13절).
(☞ 이후의 마태는 아마 제자 공동체 속에서 살림 부분에서 많은 기여와 헌신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정리된 예리한 머리로,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자기와 죄인을 구원해 주신 예수의 역사를 온 세상에 전한 큰 인물이 되었다!)
6) 이 부분은 당신의 제자들 교육용임도 분명히 하셨다(13절. 상). 호6:6의 내용을 들어서, 하나님이 신도들에게 보다 원하시는 것은 제사보다는 긍휼이다는 점을 강조하셨다. 제자 공동체는 모두가 부족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그러기에 서로의 부족과 약점을 탓하기 이전에, 약점을 서로 포용하고 채워주려는 긍휼과 자비의 마음을 좇아 사는 따뜻한 공동체여야만 한다. 그래야 서로 공존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어서, 하나님 나라를 맛보고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7) 그러자 이번에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예수께 따졌다. ‘왜 자기들과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하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였다(14절). 그들도 역시 자기 입장 중심의 틀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들임을 드러낸 것이다. 보다 다른 입장을 취하는 이들에게서 보다 나은 가치와 새로움을 찾아 볼 눈과 마음이 닫혀 있기에 나온 질문이었다. 그들도 메시아 예수가 몰고 온 새 시대, 새 가치, 새 문화에 동참해야만 구원받을 존재들이었다(15-17절).
2. 예언서 / 사43:18-21, 44:21-23 / “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 야곱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 ”
1)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나약한 백성 이스라엘을 새롭게 창조(創造)하시려는 하나님의 선택의 말씀이 올라와 있다. 귀환한 그들은 이미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을 통하여 죗값을 치렀고, 그만큼 미래를 향한 장애물로부터 해방된 족속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과거의 어두운 상황에서 발목이 잡혀 있었거나, 하나님이 오래전 자기들을 잊어버리셔서 이제는 자기들을 도울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마음이 그들의 열린 미래를 막고 있었다.
2) 그런 상황을 불쌍히 보신 성부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그 문제 해결책으로 당신의 백성된 자들이 마음에 기억하지 말 것과 기억해야 할 것을 함께 제시해 주셨다. 이는 새해를 맞이한 우리들도 앞으로의 인생을 축복되게 맞이하고자 반드시 붙잡아야할 지침들이다.
☞ 첫째는 기억하지 말고 생각하지 말 것들이다(43:18). 이것들은 무엇인가? 바로 ‘이전 일과 옛적 일’이었다. 곧 벌 받고 고생했던 과거의 일들이었다. 그러면 그것들을 왜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것이 좋은가? 그것들은 이미 하나님을 만난 후 회개하면서 다 청산 받은 과거의 일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것을 계속 기억하고 있으면, 그들에게 새롭게 열리고 있는 밝고 축복된 미래를 받아낼 마음의 공간(자리)은 없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은 이미 바사(페르시아)제국의 고레스 황제를 통하여 그들의 본국 귀환의 문을 활짝 열어주시면서, 하늘과 땅이 놀라워할만한 새 일들을 시작하셨다. 광야에 물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시면서 그가 택한 백성들의 목마름을 해소시킬 새 역사를 시작하신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이제 예전의 어둠의 시절에 관한 기억에서 벗어나, 여호와께서 새롭게 열어주실 미래에만 시선을 집중하면 된다. 새 역사를 시작하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나가면 되었다(19-21절).
☞ 둘째는 반드시 기억하며 살아야할 것들이 있다(44:21).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부여하신 소명(Calling)과 정체성(Identity)이다. 그들은 본래 여호와가 당신을 찬송하도록 창조하신 족속이고(43:21), 그의 종(從)으로 지으신 자들이어서, 여호와께서는 절대 잊을 수 없도록 구속(救贖)하신 대상이다(44:21).
그러기에 여호와께서는 당시 최강의 제국의 대왕인 고레스를 앞세워, 당신의 크신 긍휼을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풀어 주셨다. 그 바람에 그들은 귀환 시에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최고의 보상과 배려를 받으면서 그토록 오랜 식민지 백성의 굴레를 환호와 감사 속에서 벗어나오게 하셨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이제 그 점을 기억하며, 감사하고 노래하며 여호와께 돌아오면 되었다. 그럴 때 그들은 그들에게 임하는 여호와의 영광을 누리게 되면서 보다 밝은 미래를 누리며 살 수 있게 되었다(23절).
3. 서신서 / 행16:25-34 / “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
1) 바울과 실라는 헬라의 빌립보를 선교 차 방문하던 중, 어느 여종을 사로잡고 있던 점치는 귀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쫓아냈다(16-18절 참조). 그러자 뜻밖의 시련이 두 선교사들에게 밀려왔다. 그것은 그 점쟁이 여자로 인하여 돈을 벌고 있던 주인이 이 두 선교사들을 관에다 ‘지역 소란 죄’등의 혐의로 고발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이들은 관에 끌려가 매를 많이 맞고 발은 차꼬에 채운 채, 깊은 옥에 투옥되고 말았다(20-24절).
2) 하지만 그 무거운 환경을 순간 환희(歡喜)의 장으로 돌변시킨 사건이 그곳에서 발생했다. 곧 그렇게 투옥된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을 하면서, 온 죄수들이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25절). 그와 동시에, 그때 그곳에 큰 지진(地震)이 발생했고 옥 터가 흔들리면서, 옥문들을 다 열리고 모든 죄수들의 매인 것까지도 모두 벗겨지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었다(26절)! 하지만 그곳을 지키던 간수(看守)는 죽을 맛이었다.
그런 여건에서 모든 옥문이 활짝 열렸으니, 그곳의 죄수들은 당연히 모두 탈출한 줄 알고, 그 무거운 책임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게 된 것이다. 결국 모든 책임감 때문에 자살하려는 순간에, 옥중의 바울이 급히 그를 제지하므로 써, 그를 살려내는 일까지 발생하였다(27-28절). 그 바람에 간수를 향한 전도가 되어서, 그 간수와 그의 온 집안은 세례도 받게 되었고 큰 기쁨까지 누렸다(29-34절)!
3) 어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성령의 사람인 바울과 실라가 억울한 박해 속에서도 감사의 기도와 은혜의 찬송을 올릴 수 있는 믿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그들이 상황에 굴복하거나 분노하고 억울해 하였다면, 그런 판을 바꾸는 역사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고난을 귀하게 사용하시는 성령께 감사하며, 자신들이 주님의 십자가 사역에 동참하게 됨을 찬양하게 될 때, 은혜의 주님이 그들과 함께 하심을 그렇게 보여주신 것이었다. 동시에 그런 것을 모르고 자살로 자신의 고통을 면하려던 간수까지도 긍휼(矜恤)의 은혜를 입으면서 그의 자결(自決)도 막고, 그와 그의 가족에게까지도 구원의 복음과 하늘의 기쁨을 전할 수 있었다(27-34절 참조). 하나님은 지금도 이런 역사를 견인할 기도와 찬송을 듣고 싶어 하신다-!!
☞ 바울과 실라를 통하여, 귀신에서 해방된 여자와 또 허망한 죽음을 면하고 예수를 영접한 간수와 그의 가족들은 그 후 어떤 인물들이 되었을까? 분명히 빌립보교회의 기둥이 됐으리라!
o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힘입어 그의 택함을 받았고 그의 일꾼이 되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항상 그의 사랑에 의지하여 기도하고 찬송하며 살아가야 한다.
특히 우리는 이미 청산된 예전의 죄의식의 굴레에서 벗어나, 그의 구원을 찬양하고 그 이름을 증거하며, 내 안에서 일하시는 그 분을 담대히 증거 해야 한다. 특히 그가 안겨주신 긍휼과 자비의 마음을 품고, 이웃과 세상을 상대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마5:7). 어떤 경우에도 이웃을 향한 정죄와 심판의 마음은 버려야 한다. 오직 따뜻한 긍휼과 자비의 영성으로 무장하고 살아야 한다. 우리의 찬송과 기도를 듣고 살아날 이웃들이 많아지게 꿈꿔야 한다. 그러면 주님이 함께 하셔서, 바울과 실라가 경험하였던 하늘 세계를 우리도 펼치며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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