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문) 행 6:8~10, 단6:1-23, 마10:16-23
오늘은 강림 후 열셋째 주일이다. 무더위는 지나는 듯했으나, 이번에 남부 지역에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그 피해가 큰 듯하다. 기후변화로 인한 대가를 크게 치르고 있는 우리가 아닌가 싶어서 두렵기 그지없다.
나는 최근 어느 분이 쓴 짧은 글에서 <정산(正山)>이란 글을 보았는데, 그 뜻은 ‘바름이 모여 산을 이룬다’는 뜻이었다. 훌륭한 경구(警句)였다. 그렇다면, <오산(誤山)>도 있을 법하다. ‘오류나 잘못도 모여 산을 이룬다’는 뜻이리라. 이건 왠지 무거운 심정을 갖게 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기후 위기로 인한 환경 재앙들은 정산일까 오산일까? 후자 오산이 분명하다. 인간들의 탐욕과 이기심의 축적이 그 아름다운 창조 세계로부터의 거센 역공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가를 치르다’는 말이 있다. 이것 역시 정설(定說)이다.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처음에는 별거 아닌 듯하지만, 나중에는 그 결과를 끝내 불러온다는 논리이다. ‘쌓였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살이도 마찬가지이리라. 선행을 추구하며 사느냐 악행을 범하며 사느냐는 것도 그렇다. 처음엔 내 언행 하나하나가 하찮게 보이지만, 세월이 지나면 결국 그 모든 게 쌓인 연고로, 나중에는 산더미가 되어 내 생애 전체를 심판하러 덤벼들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항상 깨어 있어라’는 주님의 당부는 실로 영원한 경고이다. 이는 ‘여기에서 지금’(Here & Now)의 삶의 내용과 방향을 제대로 취하며 살아야 한다는 경고이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에서부터 시작된 하나’부터 바르게 못 잡으면, 그것이 둘과 셋이 되었을 때에 고치기는 더욱 힘들어지는 것이 우리 인생임을 깨닫고, 서둘러 제대로 된 생을 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기도(祈禱)가 항상 필요한 것도 바로 그 까닭이다. 기도는 나의 처음, 나의 지금 모습과 내용을 주의 말씀과 뜻에 비추어 성찰하며, 그때그때 회개하며 수정하고 바르게 해나가도록 영적으로 조율 받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도가 살아 있으면, 오류와 오산 역시 쌓일 수 없고, 도리어 정산을 이룰 수 있어서 좋다. 몸과 마음을 바르게 세울 수 있어서 좋다. 특히 기도에는 주의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진리로 깨우치고 세워주시기에 더더욱 좋다.
마침 오늘의 세 본문은 우리가 믿음에서 오는 시련을 어떻게 극복하고, 오히려 예전보다 더욱 강하고 영광스러운 주인공으로 되살아나게 될 수 있는지를 일깨우시는 말씀으로 가득하다. 분명한 것은 이곳의 말씀 중에는, 우리가 믿을 때 모든 것이 잘되고 형통하며 성공한다는 식의 선동형 표현이나 듣기에 달콤한 유형의 표현이 전무(全無)하다는 점이다. 그보다는 믿음을 취할 때에는, 세상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의 시련이 도래할 것을 예고하여 준다.
곧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갖고 살아갈 때,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시련과 박해와 곤경들이 잇따를 것임을 통 보한다. 그리고 ‘그러기에 걱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전혀 두려워 말라’는 말씀까지 얹혀 주신다. 어찌 그럴 수 있는가? 그 까닭은 그 박해와 고난과 시련을 넘어서, 자기들과 함께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와 도우심과 지켜주심을 분명히 그곳에서 체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픔과 외로움을 위로와 환희와 기쁨으로 되돌려주실 그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도 함께 체험할 것이기 때문이다. 곧 당신을 위해 고통하는 이들을 결단코 외면하지 아니하시는 하늘 아버지를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진정한 신앙인은 이 시련의 고비를 넘어서기에 결코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복음서는 예수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시는 일을 이렇게 비유하셨다.-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다’(16절). 이는 예수께서 세상을 이리와 같은 난폭하고 거친 세력이 주도하고 있는 곳임을 지적하시면서, 동시에 바로 그런 곳이기에 세상은 더욱 양과 같이 영성을 가진 무리들이 절대 필요한 곳임을 일깨우신 말씀이기도 하다. 이는 싸움은 싸움이로되, 칼로 맞서는 싸움이 아니라 지혜와 순결로 맞서는 차원인 영적 싸움이 되어야 함을 일깨우셨다.
그럴 때, 성령께서는 시련을 받을 양들(그의 백성들)과 함께하셔서, 끝내는 견디게 하셔서 구원(승리)을 이루게 하신다(22절). 사실 로마 제국인 바벨론의 역사를 보라! 그토록 무자비하고 막강한 세속 무력의 총합인 대제국의 권세를 휘둘렀던 그들이, 결국엔 그들의 박해와 피(被) 압박민들이었던 그리스도인의 순결한 믿음의 힘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고(서기313년), 지금까지도 바티칸이 이태리 로마의 심장에 자리하면서, 그 지도하에 존재하고 있지 아니한가!
이런 측면에서 구약의 다니엘서는 아주 훌륭한 믿음의 훈련 교본(敎本)이다.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일원이었던 다니엘과 매대 제국의 다리오 황제의 권력이 여호와를 섬기는 신앙의 문제를 놓고 아주 치열하게 맞부딪친 과정에서, 결국 순결과 지혜로서 믿음의 싸움을 싸웠던 다니엘이 극적으로 승리하면서, 그 온 이방 제국으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을 온 세상의 참 신으로 인정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한 놀라운 사건이 바로 다니엘서였기 때문이다.
서신서인 사도행전의 스데반 집사의 순교(殉敎)의 내용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유대인 디아스포라 출신 중에서 가장 특출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 인사였다. 성령에 의한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복음 선교에 앞장섰던 탁월한 초대교회 집사였다. 하지만 그런 그를 정작 훼방하고 맞섰던 자들은 소위 자유민(自由民)이라 불리던 해외파 디아스포라 동류들이었다(8-9절). 그런 그들에게 스데반은 지혜와 성령으로 대응하였는데, 아무도 그런 그들 당하지 못했다(10절). 이런 대목은 장차 형제가 형제를, 부모가 자식을 죽게 하리라는 주의 말씀을 생각게 한다(21절). 그럼에도 승리할 수 있는 길은 그가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성령의 도우심을 믿을 때였다.
1. 복음서 / 마10:16-23 / “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 또 너희가 —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
우리는 ‘전능자 하나님을 믿는 일에 어찌 시련과 수난이나 어려움이 발생하느냐’란 의문과 궁금증을 품을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일이 얼마나 귀중한 가치를 갖는 일인지를 전혀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원자를 믿음은 내가 그의 사람이 되고, 그의 백성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면, 금방 이해가 될 수 있다. 사람이 수고와 대가를 치름이 없이 영광스러운 지위를 얻게 되면, 그것은 소중함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서, 자신의 새 지위가 축복이 아닌 저주에 떨어지게 한다. 이는 마치 군대에서 사전에 엄혹한 훈련 없이 한순간 높은 지위를 얻게 된 장교의 처지와도 흡사하다.
믿음의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성직과 신분의 지위를 취하려는 데에도 마찬가지이다. 사전에 엄격하고 치열하며 엄혹한 연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과 마귀의 저항과 공격에서도 의연히 맞서고 헤쳐 나갈 수 있게 된다. 특히 상대가 자기보다 더 센 대상일 경우는 더욱 훈련 강도가 높아야만 한다. 그래야 비로소 그는 병사가 되고 장교가 되며 장군도 될 수 있다. 혹 믿음 때문에 타인보다는 더한 혹독한 아픔과 시련이 있는가? 그는 원망과 탄식에 앞서서, 자신에게 다른 이들보다 더 큰 존재가 될 기회가 왔음을 생각하며 기뻐하시라.
대장(大將) 되신 주 예수께서는 그의 파송을 받게 된 무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행동지침을 주셨다. 가슴에 새겨서, 이 지침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반드시 승리하기 바란다.
1) 우리가 상대할 세상은 이리와 같은 영성을 가진 무리의 무대이다. 그곳에 우리는 같은 이리의 일원이 아니라, 양과 같은 영성을 소유하고 보여줄 자들로 들어간다. 마치 소금과 같은 존재로, 빛의 존재로 들어간다(마5:13-16 참조). 이곳에서 자신이 보여줄 무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들에게는 없거나 부족한 것, 곧 ‘뱀 같이 지혜(知慧-shrewd)롭고, 비둘기같이 순결(純潔)한 모습이다’(16절).
여기서 ‘지혜’는 머리 좋고 탁월한 두뇌 상태를 말하기보다는, ‘상황 판단이 빠르고 기민한 모습’을 말한다. 즉 때와 장소와 상태에 대한 파악을 잘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주께서 주신 ‘이 동네에서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23절)는 말씀을 좇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순결(innocent)해야만 한다. 이는 그의 행동에는 항상 순전하여 죄성이 없고 흠이 없는 모습으로 드러나야만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참 소금으로, 빛으로 모든 이들 속에 그들과 그들의 복음을 담은 모습이 ‘착한 행실’로 전파되고 각인될 수 있게 된다.
2) 그래도 언제나 조심할 대상은 사람이다(17절). 이 사람은 누구인가? 외부인들은 물론이다. 그들은 조금만 어긋나도 우리를 고소하고 법정에 넘겨줄 자들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내부의 사람들이다. 곧 가족이요 혈족이다(21절). 이들은 가족이면서도 이미 자기들의 굴레를 넘어선 혈족이라고 판단되면, 우리의 발목을 붙들어 놓기 위해서도 가만있지 않을 수 있다. 배신자의 분노와 미움으로 우리의 앞길을 차단하려고도 든다. 종들은 거기까지도 각오해야 한다.
동시에 사람 조심(경계)에는 상대를 대할 때, 세상 지위나 빈부나 남녀나 종족이나 등의 겉모습과 외모 등으로 접근하고 선호하는 방식에 빠져 들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점을 그렇게 경고하신 내용으로 보아야 한다(17절). 그런 경우는 대부분 그런 사람들에게 더욱 당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우선 어떤 경우에든지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자기 안에 계셔서 하나님의 뜻과 지혜로 말하게 하시는 성령(聖靈)을 의지하면 된다(20절). 그러면 인간의 지각보다 뛰어난 하나님께서 그를 지도하실 것이다. 그 모델을 우리는 구약의 다니엘에게서와 서신서의 스데반에게서 확인하게 된다.
2. 구약 / 단6:1-23 / “ 왕이여 왕은 만수무강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
본문은 희대(稀代)의 전쟁판이 펼쳐진 내용을 전하는 곳이다. 겉보기에는 당대의 최고 권력자인 매대 제국(帝國)의 대왕 다리오를 옹위한 권력자들의 집중적인 공세와, 바로 그들의 미움과 시기의 공세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자신이 섬겨온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충성된 믿음을 견지한 까닭으로 이제 사자 굴에 던져져서 참혹한 죽음을 당하게 된, 당시의 총리 다니엘의 목숨을 건 <신앙 전쟁>을 치르게 된-, 실로 긴박하고 숨 막힌 모습 때문이다.
1) 유대인으로서 바벨론 제국에 포로 되어 끌려온 다니엘은 당시 제국의 대왕 다리오의 엄청난 총애를 입고 전국을 통치하는 세 명의 총리 중의 일원으로 발탁된 인물이었다. 이는 그만큼 다니엘은 지혜(shrewd)가 탁월하여 모든 이들보다 뛰어난 연고였다(1-3절, 마10:16 참조). 그런데 바로 그런 대왕의 총애가 주변 신하들의 시기와 질투를 불러오면서, 다니엘의 시련은 시작되었다(4절).
2) 그의 정적들은 다니엘을 제거할 방안을 찾았는데, 그게 바로 매일 하나님께 세 번을 기도하는 다니엘의 행동이었는데, 그들은 그 점을 빌미 삼아 ‘이제부터 30일간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지기로 한다’는 금령(禁令)을 제정 공포하게 한 것이다(7-9절). 그렇다면 자기를 겨냥한 사실을 알게 된 다니엘의 대응은 어떠했는가?
3) 전혀 개의치 않았고,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평소처럼 여전히 윗방에 올라가 모국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변함없이 하루 세 번씩 무릎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다(10절). 자신의 행위에 대한 최종 판단은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서 해주신다는 전적인 믿음으로 행동하였다(행4:19 참조). 그 바람에 그는 결국 사자 굴에 던져졌다. 그를 아끼며 면책(免責)하려던 왕도 별수 없음을 알고,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네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리라’(14-16절). 그런 후 왕은 금식도 하며 밤도 지세웠다(18절).
4) 사자굴에 던져진 다니엘 어찌 되었나? 최종 판결은 여호와께 하셨다. 당신의 사자(천사)를 보내셔서, 짐승인 사자의 입을 틀어막아 다니엘의 무사함을 지켜낸 것이다. 세상에 죄를 묻자, 하나님이 그의 믿음과 무죄함을 입증해 주셨다. 브니엘의 아침을, 부활의 아침을 맛보게 하셨다. 그 일로 원수에겐 철퇴를, 온 누리엔 여호와의 참 신이심을 공포하게 했다(22-27철 참조).
3. 서신서 / 행6:8-10 / “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
본문은 초대교회 집사 7인 중, 하나인 스데반이 사도들 못잖게 은혜와 권능의 충만함을 받아서 큰 기사와 이적을 민간에게 행하게 되면서, 그의 적대자들로부터 신성 모독과 성전 훼방죄목 등으로 고발을 당하는 과정에서, 가장 탁월하게 대응하던 장면을 전한다. 여기에서 그는 앞서 본 다니엘과 주의 사도들이 보유했던 그 지혜와 능력으로, 상대를 압도했다(10절).
그런데 그런 스데반을 꺾어내고자 사람들을 매수하며 거짓 증언자로 내세워, 스데반을 허위 선동자로 고발하고 결국은 순교에까지 이르게 한 그 적대자들은, 다름 아닌 자유민(自由民)이라는 해외파 동료 디아스포라들이었다(9-11절 참조). 그럼에도 그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택했다. 목숨을 바꾸게 한, 대(大)사도 못잖은 은혜로운 설교를 남긴 평신도 설교자의 위상도 보여주었고(행7장 전체), 죽음 직전에는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심도 보았으며, 자기를 돌로 치는 자들의 죄에 대한 용서까지 구하면서 떠나는 거룩한 순교자의 모습도 보여 주었다(행7:55-60 참조). 결국 그는 최초의 평신도 순교자의 명예를 취한 인물도 되었다.
o 내 믿음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내 믿음은 성경에 소개된 믿음의 선조들의 계보에 이어진 믿음인가? 내 믿음에는 성령과 지혜가 담겨 있는가? 그래서 순간순간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만나거나 세상에 보여주는 모습이나 경험들은 있는가? 열매도 있는가? 나의 믿음은 내 삶의 그 어떠한 것과도 대신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를 담고 있는가? 나의 믿음에는 필히 좋은 대가가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가? 믿음의 주님은 그런 나의 믿음에 과연 어떤 반응을 보여주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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