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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과 승리

관리자 (광주남노회,작천교회,목사) 2010-09-24 (금) 19:58 12년전 1497  
 

2005 년 3 월 18 일(금) 오전 10 시, 강진읍교회 

한국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 광주연합회 제 157 차 강진지구회 찬양경연대회   


성경본문 : 시편 34 편 1 절 - 4 절        

제       목 : 찬양과 승리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총과 평화가 여신도회 제 157 차 강진지구회와 모든 주 안에서 사랑하는 모든 회원 여러분과 오늘 찬양경연대회에 동참하는 모든 교회의 여신도회 회원들 위에 아울러 여신도회를 이끌어가시는 존경하는 지구회장 김순자 집사님 위에 흘러넘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회장님인 김순자 집사님이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노회와 시찰회 또한 모든 교회의 내외행사에 빠짐없이 참여하시어 주께로부터 맡은 바 업무를 성실히 땀을 흘리며 수행하는 그 열심이 특심하시고 주님을 향한 그 열정과 사랑을 그 얼굴모습에서부터 역력하게 살펴 볼 수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김순자 집사님 이름 함자 그대로입니다. 김순자 - 김 : 금쪽같이 순자 : 주님께 순종하는 자!! 금쪽같이 주님께 신실하게 더욱 주께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강진지구 여신도회가 더욱 영적으로 흥왕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저 간단히 광고선전홍보했습니다만 제가 아는 우리 지구회장님은 끝나고 12 시에 만나 브라보콘 아이스크림 한 개라도 꼭 사주시고 가실 분이지 그저 가만히 모른 채하고 슬쩍 가실 양반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김자 순자 자자 집사님을 말씀드렸습니다만 어제 누군가 저에게 핸드폰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핸드폰 서비스에 대하여 문의를 하였는데 한 여자분 직원이 저에게 전화하여 물었습니다. 011-648-9220 “배 자 태 자 진짜 목사님이 맞으세요! 그래서 저 역시 끝에 부분만 힘주어 대답했습니다. ”진짜 목사님 맞습니다!“. 여기 모여 있는 모든 분들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여 진짜 장로님, 진짜 권사님, 진짜 집사님, 진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까 브라보 아이스크림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이 시간 브라보!!라는 말을 화두로 삼아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브라보가 무슨 뜻입니까? bravo!!는 대체로 “이겼다!!” “잘한다!!” “끝내줘!!” 무슨 경기를 하여 승리를 하였을 때나 무엇을 무척 잘하였을 때 쓰는 표현입니다. 성경에 보면 “bravo!!”란 말이 나옵니다. 출애굽기 15 장 1 절에서 3 절입니다.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무엇입니까?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바다를 건넌 직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어 바다를 갈라 이스라엘 백성을 무사통과시키고 애굽의 군대를 다 물에 잠기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 이스라엘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시고 구원하셨다“는 찬송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무엇입니까? ”하나님 부라보!!“ 입니다. ”브라보 야훼!! 브라보!! 아도나이! 할렐루야 야훼!!그런 뜻입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찬송은 승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찬송과 승리의 차원은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첫째 차원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 애굽 군대를 물리쳐 주시고 불레셋을 물리쳐 주시고 아말렉을 물리주시고 귀신과 악마를 물리쳐 주시어 우리로 승리를 안겨 주시는 은총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이 먼저 있고 하나님 이루어 주신 승리가 먼저 있고 난 다음에 감사와 찬양이 그 뒤를 따르는 입니다. 이와는 다른 찬양의 차원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하나님을 찬양하면 승리의 역사가 나타나는 또 다른 차원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 찬양을 부르는 이를 기뻐하시어 그에게 승리를 안겨 주시는 차원입니다.


오늘 성경말씀 시편 34 편 1 절에서 4 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나와 함꼐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다윗의 이 찬양을 구조적으로 분석해 보자면 찬양과 승리의 두 번째 차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 한번 볼까요?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여호와는 광대하시다”, “여호와의 이름을 높이세!”  이 표현들은 각각 다르지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 말씀입니다.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다윗이 찬양을 하고 난 다음에 중요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무엇입니까? 여호와가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다고 합니다. 즉 모든 두려움과 역경과 고난에서 승리하게 하셨다. 찬양할 때 기도를 응답해 주시고 찬양할 때 찬양하는 자로 하여금 브라보 승리를 안겨 주시어 다시금 할렐루야 찬양을 하게 한 것입니다. 


만일 요즘 잘 나가는 가수 비가 여러분 앞에 나타나 여러분만을 위하여 노래를 감미롭게 불러 준다면 아마도 어떤 분은 몸둘 바를 모르고 좋아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도 그러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칭송하는 노래를 불러 드리면 몸 둘 바를 모르고 좋아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세상사와 무관한 무감정하고 무감동하시며 무관심하셔서 하늘 저기 구름 건너편 저쪽에 앉아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팔짱끼고 시시한 인간의 일에는 개입하지 않으시는 희랍적인 나몰라라신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함께 아파하시고 우리가 기뻐하면 함께 그 즐거움을 나누시고 우리가 찬송 부르면 만사 제쳐 놓고 온 우주천하에 다른 바쁜 일이 있으시어 수백억광년 저 멀리 출장을 가셨다하더라도 그 일정을 취소하시고 우리의 찬송을 기뻐 열납하시기에 찬송부르는 우리들 가운데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여러분들이 드리시는 찬양을 받으실라고 우리 하나님께서 바로 이곳에 강림하시고 이 시간 현존하시고 이곳에 임재하여 계신 이유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찬송을 받으시고 마음이 흡족해 하시고 때론 손수건으로 감동의 눈물도 훔치시곤 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찬송을 부르는 이에게 생의 놀라운 기쁨도 주시고 선물도 주시고, 지켜 주시고 붙잡아도 주시고, 어려움과 시련 가운데서도 건져주시고 악한 영들의 불화살공격을 막아도 주시고 승리를 안겨 주시며 찬송 부르는 이에게 힘을 주시고, 그 힘을 주셔서 이기게 하시고 승리의 삶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찬양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냥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메가톤급 이상의 파워와 능력과 권세가 있어서 우리 삶에 승리를 가져다 줍니다. 이는 제가 만든 가설이거나 제 신앙경험이 아닙니다. 찬양이 우리 삶에 승리를 가져다준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성서가 우리에게 어제나 오늘도 언제든지 변챦게 증거해 주시는 진리입니다. 사울이 악령에 들렸을 때 다윗은 수금으로 찬양함으로 악령을 물리쳤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전도여행을 하다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그들은 찬미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감옥창살에 비추이는 달을 보고 신라의 달밤을 부른 것이 아니라 찬양을 하였습니다. 그 절대절망의 쇠창살 속에 절대희망의 새 찬송을 불렀습니다. 옥문이 열렸습니다. 쇠사슬도 풀렸습니다. 여호사밧 왕 때의 일입니다. 모압자손과 암몬자손이 연합하여 유다를 침공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은 위기를 타개하는 방책으로 독특한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맨 앞에 서서 여호와를 찬송하도록 하였습니다. 휘하의 장수들은 전투에 대한 FM 교본에 전혀 없는 비상식적인 명령을 듣고 속으로 “저 넋이 빠진 왕 때문에 세계전쟁사에 유례없는 일이 벌어지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장수들의 당혹함에 전혀 개의치 않고 믿음대로 밀고 갔습니다. 과연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온 암몬자손과 모압자손을 치게 함으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세계전쟁사에 유례없는 일이 벌어져 승리하였습니다. 다른 어떤 이들이 뭐라고 해도 여호사밧은 찬송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 일촉즉발 위기의 순간에, 그 절대절명의 순간에 여호사밧은 찬송의 능력을 믿음으로 끌여 당긴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찬송을 듣고 그들의 편이 되시므로 당연히 여호사밧은 승리를 얻었습니다.


이를 어찌 다윗의 경험이요 이를 어찌 바울과 실라의 경험이요 이를 어찌 여호사밧의 경험이라고만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어찌 바울과 실라의 경험이라고만 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의 공동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싱가폴 정부가 마약사범들을 수용하는 교도소에 가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과 함께 찬양예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교도소는 마약사범을 초범, 재범, 그리고 5 범, 6 범들을 따로 수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배를 드릴 때 한군데로 모여 있었는데 그들이 부르는 찬양은 간절했습니다. 그들은 마약의 사슬에서 해방되기만을 기도하였습니다. 선교사에 의하면 많은 마약사범들이 찬양하는 모임에 나오면서부터 재범률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마약이 주는 즐거움보다도 주님을 찬양하는 즐거움이 훨씬 그들에게 더 자극적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찬양은 그만큼 절실하였고 그 찬양의 능력은 죄악의 사슬 속에서 그 사슬을 불탄 새끼줄 같이 끊어져 버리고 절망의 옥문이 활짝 열려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인들은 승리는 병거나 기마의 수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이스라엘인의 지혜는 여기서 더 발전합니다. 찬양은 하나님의 승리를 이끌어 드린다는 확실한 고백아래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들의 삶 속에 찬양을 접속시키는 일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찬송을 내 생활 속에 접속하면 내 생에 놀라운 영적 고부가가치가 나타납니다. 보통 우리가 기분이 좋을 때 베타 엔돌핀이 증가한다고 합니다. 이 베타 엔돌핀이 조금 나올 때는 뇌에서 인체에 전혀 해가 없고 유익만 되는 모르핀과 같은 약이 쭉쭉 나와서 이슬과 같이 우리 온 몸에 스며들지만 우리의 마음이 최고로 좋고 마음과 영혼이 아울러 기쁘고 즐거울 때는 우리 뇌 어느 부분에서 최고 20 여 가지의 베타 엔돌핀이 한꺼번에 마치 스프링 쿨러와 같이 돌아가면서 우리 온 몸에 뿌려 주기 때문에 우리 온 몸, 뼈와 살 마디마디에 흘러내려 노화를 방지하고 자연치유력을 높여주고 암세포와 같은 파괴적 세포를 제거해 주는 뛰어난 약리적 효과를 증대시킨다고 합니다. 이 말은 제 얘기가 아니라 기독교인이 아니면서도 자신의 쓴 의학서적인 “뇌내혁명” 통하여 창조주의 신비를 전하는 하루야마시게오 박사의 주장입니다.


오늘 강진읍교회 여러분들은 찬송을 여러분의 매우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연결시키시기 바랍니다. 찬송의 두 번째 차원을 발전시키기 바랍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와 사랑을 찬송하여야 하겠지만 찬송을 부름으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놀라운 승리의 능력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으로부터 7 년전 미국에서 운전면허를 딴지 얼마 안되어 중고차 한대를 사서 고속도로를 타고 버클리에서 엘에이로 신나게 달렸습니다. 시속 85 마일로 달렸으니 시속 135 KM 로 계속 달린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캄캄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커브길이 나타나면서 갑자기 큰 공룡같은 트럭이 함께 커브를 돌면서 내 차를 덮쳐버릴 것 같이 다가왔습니다. 당시 1 차선을 달리고 있었는데 가드레일이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초보운전자가 당황하니까 당황하니까 시야가 더욱 캄캄해지면서 내가 지금 어디로 핸들을 틀어야 하는지 순간 판단력이 제로가 되었습니다. 한쪽 코너링을 하는 그 거대한 트럭은 나를 압사시켜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이제 가는구나”, 그 생각이 스치는 순간 그때 저는 어떤 한 복음성가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 하소서” 그런 내용의 복음성가입니다. 내가 그 위기일발의 순간 내가 노래를 불러야 하겠다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데 언제 어느 새인가 그 복음성가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부른 것이 아니라 제대로 표현하자면 그 노래가 내 입에 내려앉은 것입니다. 그 노래 일절을 다 부르기도 전에 평탄한 넓은 길이 나타났고 나를 부수어버릴 것 같은 그 공룡같은 트럭은 어느새 저만치 앞서가서 오히려 어두운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향도하는 빛이 되어 주었습니다. 맨 먼저 운전대를 잡은 손을 느꼈습니다. 상당히 운전대를 꼭 잡고 있었고 부여잡은 두 손은 상당히 뜨거운 듯한 느낌을 가졌는데 누군가 제 손을 양손으로 잡아준 그런 느낌을 가졌습니다. 그 위기를 벗어난 직후 어떻게 그 노래가 갑자기 떠올라 부르게 되었는지 또 내가 그 노래를 어디서 배웠던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때부터 약 4 개월전에 카톨릭수녀원에서 3박4일간 무슨 영성훈련인가를 받으면서 여러 번 반복해서 불렀는데 그것이 제 안의 영혼 어디에선가 저장되어 있다가 “캄캄하여 이제 이 세상 이별하는구나”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에 내 마음과 입술 속에 내려앉은 것입니다. 불과 3-4 초도 안된 그 영점 몇초도 안된 순간에 뭔가가 일어났음에 분명하였습니다. 저는 그때 그 생각을 하며는 그 전광석화와 같은 순간 내 입술에 노래를 얹어 주시고 흑암속 내 앞길을 빛으로 열어주신 것은 꼭 어떤 우연이 아니라 찬양을 부를 때 이 손을 꼭 잡고 가신 분의 손길이 있었다고 분명히 믿고 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서 저는 시편 34 편 오늘 본문에 있는 그대로 “찬양할 때 여호와께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다윗의 고백은 내 실존적 상황속에서 나의 것이었습니다. 뿐 만 아니라 주님은 정말 필요한 때에 우리 영혼에 노래를 얹어 주시는 분임을 실감하였습니다. 


저는 오늘 예배를 드리는 여신도회 강진지구회 회원들이 찬양을 삶에 연결시키고 성도 여러분들이 섬기는 교회에 연결시키고 여러분들이 일하는 처소마다 연결시키는 찬양의 에이젼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냉전시대의 소련의 케이지비 요원과 미국의 시아이에이 유능한 요원 하나는 서로 상대방의 3 개 기갑사단 탱크부대와도 안바꾸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영화 람보에서 나오는 것 같은 그런 에이젼트들은 엄청난 파괴력이 있었습니다. 객관적 전력으로는 비교도 안되지만 에이젼트 하나가 적진에 들어가기만 하면 007 산더볼작전으로 완전히 분위기를 바꾸어 결국 승리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여신도회원 여러분이 하나님의 찬양의 능력을 승리의 능력을 연결시키는 찬양의 에이젼트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양함으로 하나님의 승리를 견인해 내는 브라보 에이젼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찬양의 능력을 끌여 들여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환하게 바꾸고, 찬양의 능력을 끌여 들여 가정의 환경을 영적 터전으로 바꾸고, 찬양의 능력을 끌여들여 맺고 있는 모든 인간관계를 아름답게 바꾸고 특별히 찬양의 능력을 끌여들여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교회를 온통 통채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교회로 바꾸는 찬양의 일급 에이젼트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찬양의 능력을 끌여드려 온갖 못된 악령을 쫓아내며, 찬양의 능력을 끌여드려 모든 죄악의 쇠사슬과 옥문을 열게 하며, 찬양의 능력을 끌여들여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능력가운데서 어디가나 무얼하나 박수치면서 승리하시는 그런 브라보 찬양 할렐루야 찬양의 승리의 에이젼트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주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오늘 여신도회 강진지구회 회원들에게 귀한 영적인 교훈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로 늘 찬양하여 하나님의 승리를 경험하는 찬양의 에이젼트들이 다 되도록 복내려 주시옵소서! 저희로 주님을 향한 찬양을 저희 영혼과 생활 속에 접속시키고 교회와 일상생활에 접속시켜 주님의 승리를 보여주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저희들이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죄악의 세력들에 의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지만 무덤과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부활하여 승리하신 우리 주님 이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19:35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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