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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4일 (금) 일점일획_말아크(מַלְאָךְ): 사자(使者) – 메신저와 메시지에 대한 묵상"(송민원)(IBP)
2026-04-24 06:27:25
묵상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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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아크(מַלְאָךְ): 사자(使者) – 메신저와 메시지에 대한 묵상

송민원

지인 한 분이 요즘 어느 목사님의 설교를 계속 들으며 깊은 은혜와 감동을 받고 있다고 하더군요. 저도 직접 만나 뵌 적은 없지만 존함은 익히 알고 있었고, 지역 교회를 섬기면서 저술활동도 열심히 하시는 목사님으로 많은 존경을 받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교회 홈페이지에 공개된 그분의 설교 목록 중 욥기를 본문으로 하는 설교가 있어서 그 설교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해당 본문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욥기 42장 2절에서 6절까지여서 더더욱 관심이 갔습니다.

강해 설교였고 역시나 공부를 깊이 있게 하신 분답게 욥기의 주요한 부분들에 대해 주석가들의 설명들을 잘 요약해서 한 구절 한 구절마다 여러 다양한 해석들이 있음을 성도님들께 잘 전달하셨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습니다. “이런 여러 해석들이 있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로 시작하는 말 뒤에 이어지는 목사님 ‘본인의 해석’이 바로 “지혜란 무엇인가-잠언, 욥기, 전도서의 상호작용”이라는 저의 책의 내용과 (거의) 동일했기 때문입니다. 관점이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책에 있는 표현과 거의 유사한 어휘들과 문장들을 구사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저의 책을 언급하시지는 않았습니다.

 

많이 당황스러웠고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하고 꽤 오래 생각했습니다. 가뜩이나 표절 설교를 하는 목사님들이나 신학 저술의 표절 문제가 지난 몇 년간 교계에서 문제시되어 왔고, 그 목사님 역시 이 문제에 대해 모르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의 오랜 고민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메시지가 중요하지 메신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 말아크(מַלְאָךְ) – 어원적 의미와 성경의 용례

말아크(מַלְאָךְ)는 성경에서 주로 ‘사자(使者)’로 번역됩니다. 우리말에서 ‘사자(使者)’는 “명령이나 부탁을 받고 심부름하는 사람”(표준국어대사전)을 뜻합니다. 히브리어에서도 거의 유사한 의미를 가집니다. 말아크의 어근인 라아크(לאך)는 ‘어떤 소식이나 명령을 전하려고 누군가를 보내다(send),’ 혹은 ‘누군가의 명령으로 어떤 일(미션)을 수행하다’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는 동사형으로 사용된 적은 없지만, 같은 셈족어에 속해 있는 우가릿어, 아랍어, 게에즈(고대 이디오피아어) 등에서 이런 뜻으로 쓰입니다. 히브리어 말아크는 그리스어의 앙겔로스(ἄγγελος)에 해당하는데, 이 단어 역시 ‘어떤 소식을 전하러 보냄을 받은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말아크나 앙겔로스는, 한마디로, 메신저(messenger)입니다.

앙겔로스는 우리가 흔히 아는 ‘천사’를 뜻하는 엔젤(angel)의 어원이 됩니다. ‘천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하얀 옷에 날개 달린 백인-는 그리스-로마를 거쳐 중세와 근대의 서구문화를 통해 형성된 이미지입니다. 구약성경이나 고대 이스라엘에는 현대인에게 익숙한 천사의 이미지는 없었습니다.

 

  • 말아크 – 사람인가 천사인가?

신약의 앙겔로스가 주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천상의 존재(divine messenger, angelic being)를 의미하는 반면, 구약의 말아크는 보다 넓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왕이나 주인의 명령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경우도 많고(창 32:4, 7, 겔 23:40, 느 6:3, 삼상 23:27, 삼하 11:19 등),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메신저의 경우에도 선지자(학 1:13, 사 44:26, 대하 36:15)나 제사장(말 2:7)을 뜻하기도 합니다.

구약에서 개역개정이 “천사”로 번역한 경우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그 메신저가 사람을 뜻하는지 아니면 어떤 천상적 존재를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소돔과 고모라 사건에서 등장하는 두 “천사”의 경우(창 19:1, 15), 창 18장에서는 “사람들(아나쉼 אֲנָשִׁים)”로 표현됩니다(창 18:2, 16). 롯에게 나타난 “천사들”과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사람들”이 동일한 존재라는 가정 하에 말입니다. 또한, 민수기 20:16에서도 “우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우리 소리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사”(개역개정)라고 번역되었지만, 잘 아시다시피 출애굽기의 ‘모세의 기적’ 이야기에는 “천사”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 말아크를 보내서 백성들을 인도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장면이 많이 나오기는 합니다(출 23:30, 23:23, 32:34, 33:2). 그러나 이 말아크가 날개 달린 천사 같은 천상적 존재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모세 같은 하나님의 대언자나 혹은 어떤 군사적 힘을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물론, '야곱의 사다리'의 경우처럼 말아크가 정확히 어떤 모습인지는 몰라도 분명히 천상의 존재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창 28:12, 개역개정)". 

 

  • 하나님과 하나님의 메신저가 구별되지 않는 경우들

말아크라는 단어가 구약에서 사용되는 경우들을 자세히 살피다 보면 한 가지 특이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 사이에 ‘존재론적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메신저(말아크)가 말하는 장면에서 그 말 속의 일인칭 주어 ‘나”가 가리키는 것은 메신저 자신이 아니라 그 메시지의 원 출처인 하나님입니다.

 

창세기 16장은 아브람의 본처 사래에게 학대 받아 쫓겨난 이집트 여인 하갈에게 하나님의 사자(말아크)가 나타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하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창 16:10).

 

이 말 속에 담긴 행위의 주체는 하나님이지 말아크가 아닙니다. 하갈 역시 자신이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의 사자를 만났다고 기술하지 않습니다. 그 지역을 ‘브엘라해로이’라고 부르며,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시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살피셨다고 고백합니다(창 16:13-14).

 

창세기 22장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치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도 하나님의 사자(말아크)가 나타나서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는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이 말아크의 말 속에 있는 1인칭 대명사는 하나님의 사자일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하나님의 메신저에게 바치려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 메시지와 메신저에 대한 히브리적 사고

이러한 ‘주어/주체의 혼란’은 히브리적 사고를 이해하는 힌트를 줍니다. 이 언어문화 속에서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가 누구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말아크가 사람인지 천사인지 성경은 별로 중요하게 다루지 않습니다. 어떤 천상적 존재를 상정할 때에도 그 존재가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하는 것에 성경은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지 그 말씀을 누가, 어떤 존재가 전달했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신비한 존재로서의 ‘천사’에 대한 관심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신구약 중간기부터 유대문헌에 등장합니다. ‘Watcher’라 불리는 천상적 존재를 언급하는 에녹서와, ‘Songs of the Sabbath Sacrifice(4Q400-407, 11Q17)’ 같은 사해문서(Dead Sea Scrolls) 등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긴 선지서인 이사야서를 보면, 이사야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정보가 극히 적습니다. 그가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했던 사람이며, 그의 아버지 이름이 아모스라는 것(사 1:1), 그리고 그에게 아내가 있고 두 아들이 있다는 사실(7:3, 8:3) 외에 성경은 이사야라는 사람 자체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이사야는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말아크일 뿐,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 메시지가 반드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라는 메신저를 거쳐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선지자들도 이사야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언어문화가 메신저가 누구냐 하는 것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예는 샬라흐(שׁלח)라는 동사의 용례입니다. ‘보내다(send)’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는 자주 목적어 없이 사용됩니다. 주로 바이쉴라흐 바이끄라(וַיִּשְׁלַח וַיִּקְרָא) 형태로서, 직역하면 ‘그가 보냈다. 그리고 그가 불렀다’가 됩니다(창 31:4, 41:8, 41:14, 출 9:27, 수 24:9 등).

            

      창 31:4 야곱이 사람을 보내어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 떼가 있는 들로 불러다가(개역개정)

 

개역개정의 번역에서는 “사람을”이라는 목적어를 첨가했지만, 히브리어 원문에는 목적어가 없습니다. 하인을 보냈는지, 친구나 친척을 보냈는지, 아니면 천사를 보냈는지 성경은 명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누가 가서 야곱의 말을 라헬과 레아에게 전달했는지는 전혀 중요한 부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메시지와 메신저, 그리고 저작권 문제

저는 저작권은 보호 받아야 하고 창작자의 노고가 지금보다도 더욱 존중 받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주옥 같은 찬양들을 만드신 부흥한국의 고형원 대표님이나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를 작사작곡하신 이민섭 목사님 같은 분들이 저작권을 정당하게 인정받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이 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자에게 겨우 6-7퍼센트, 많아야 10퍼센트의 인세를 지급하는 출판업계의 관례는 바뀌어야 한다고 믿습니다(저의 책을 출판한 감은사는 이 관행을 바꾸려고 지금껏 대단히 고군분투해오고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남의 설교를 자기 설교인 양 도용하는 부도덕한 설교자들이나, 다른 학자들의 저술과 연구를 적절한 인용 표식 없이 도용하는 학자와 연구자들은 강단과 학계에서 퇴출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제 개인에게 한정해서 말하자면, 저는 성경이 제게 보여주는 자신의 ‘속살’을 그대로 전달하려고 애쓰는 전달자일 뿐입니다. 저의 강의나 설교를 들으시는 분들께 저는 제가 작업한 모든 자료들을 아낌없이 모두 드립니다. 그러면서 마음껏 요리해서 사용하시라고 말씀드립니다. 저에게는 성경이 제게 들려준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하지, 그 이야기가 저를 통해 전달되었다는 사실은 그리 중요한 부분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메시지이지 메신저가 아니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메신저가 사라져야 메시지가 살아납니다. 요즘처럼 하나님의 말씀보다 설교자가 더 돋보여야 하는 시기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https://ibp.or.kr/wordspostachio/?q=YToy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zOjQ6InBhZ2UiO2k6MTc7fQ%3D%3D&bmode=view&idx=15391145&t=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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