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을 돌보시는 사랑에서 드러나는 주님의 위대하심을 바라봅니다!’
1. 시편 90:16 (구약 870쪽).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2. 누가복음 12:27 (신약 115쪽).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
시편의 – 역사의 대 서사시로서 바벨론 포로까지의 이야기까지 담고 있는 105-106편으로 끝나는 – 제 4권을 시작하는 '모세의 기도'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시다. '주님께서 하신 일들을 주의 종들에게 보이시고 그 행위들 속에 드러난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들에게 드러내소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하루살이와 같은 인간들에게서 일어나는 것을 통해서 나타난다. 하나님의 능력은 위험할 수 있고 언제나 해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늘로부터 한꺼번에 쏟아지는 비는 진흙과 같은 사람들에게 그들을 쓸어버리는 거대한 홍수와 같이 경험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분노는 나뭇잎을 날리는 태풍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그분의 감당할 수 없는 능력과 한 번 발하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진노 앞에서 항상 그의 인자하심을 구할 수 있을 뿐이다. 시인은 상황을 바꾸시고 인자하심을 보이심으로 전화위복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겸손히 구한다.
백합화는 아름다운 꽃이지만 누가 가꾸거나 돌보는 식물이 아니고 또 그것은 화려함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곧 시드는 들풀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동물로서 하찮은 것을 대표하는 것인 까마귀에 – 위쪽에선 참새다(6-7절) – 평행되는 식물로 내세워지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동물인 까마귀를] 먹이시듯이 [식물인 백합화를] 입히시는 것이다.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와 들에 피는 꽃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마련해 주시는 하나님의 세심한 보살피심의 시각적 증거다. 그리고 그것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솔로몬이 입은 그 화려함이 따라올 수 없는 것이다. 잠간 그 화려함을 뽐내다가 아궁이에 던져져 태워질 풀에 불과한 꽃도 정성껏 가꾸시는 하나님이 바로 너희들의 하늘 아버지란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의 능력을 그의 보잘 것 없고 눈여겨보지 않는 피조물들에게 쏟으신다. 하물며 그의 자녀들에게 대해서 말해 무엇하랴!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인간을 비롯한 피조물들은 모두가 크고 위대하신 주님 앞에 지극히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들입니다. 주님의 크신 은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고 주님께서 한 번 진노하시면 우리는 멸절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긍휼로 대해 주시고 인자하심으로 다가와 주십니다. 우리의 영혼이 눈을 크게 떠서 주님께서 만드신 피조물들을 사랑으로 먹이시고 관심으로 입히시는 것을 보게 하시고 살피고 돌보시는 주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겸손하게 그리고 주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는 이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두려움 없이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아멘.
찬송가 588장 (공중 나는 새를 보라); 591장 (저 밭에 농부 나가); 78장 (저 높고 푸른 하늘과); 131장 (다 나와 찬송 부르세); 69장 (온 천하 만물 우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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