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자가의 무게 **
마태복음 10장 37-38절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 일찍이 크리스토폴이라는 성자는 힘이 장사였는데, 강을 건너는 나그네들을 업어주는 일로 먹고살았다. 그는 자신이 지은 죄가 많아 꼭 그리스도를 만나 속죄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스도를 만나는 인연이 주어진다면 어떤 죄도 남기지 않고 천국에 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강변 버드나무 아래서 낮잠을 자고 있을 때 한 소년이 다가와 그를 깨웠다. 성자는 소년을 업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는데, 물살이 세찬 강 중앙쯤에 이르렀을 때 소년이 천근의 바위처럼 무겁게 자신을 누르는 것을 느꼈다.
누구냐고 묻자, 소년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네가 그토록 만나고 싶어 했던 그리스도다. 네가 나를 업고 가는 인생의 강은 앞으로도 이처럼 고되고 힘들 것이다.”
(최인호 [인생] 中에서)
** 내가 지고 가야 하는 십자가가 무엇인지 늘 궁금합니다.
본문 말씀처럼 부모가 십자가일 수도 있고, 자식이 내 십자가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십자가는 감당할 만하다 느끼기도 했고, 어떤 십자가는 너무 무거워 눈물로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십자가의 무게는 매 순간 달랐습니다.
너무 무거워 피하고 싶었는데도 결국 짊어졌고, 지금은 그 무게를 느끼지 못한 채 지고 있기도 했습니다.
남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지만, 정작 나는 십자가를 지고 있는지조차 모를 때도 있었습니다.
폴 성자처럼 인생의 무거운 짐을 해결하기 위해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심정으로, 내 십자가가 무엇인지 찾으며 살아갑니다.
이미 짊어졌을 수도 있고, 지금도 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찾지 못해 헤매는 마음으로 때로는 회피하기도 했고, 짊어지기도 했지만 십자가의 무게는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랐습니다.
십자가는 대하는 마음에 따라 부피와 색채가 달라졌습니다.
무거운 십자가도 있었고, 싫어하는 십자가도 있었으며, 감당하기 어려워 헉헉거리며 짊어졌던 십자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는 견뎌냈고 지금도 견디며 주님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그동안 내 힘으로 짊어지고 왔다고 여겼던 십자가를 사실은 주님이 함께 지고 오셨다는 깨달음을 너무 늦게 했다는 점입니다.
은혜로 살아왔음을 감사하지 못하고 늘 떼쓰는 아이처럼 살아온 것을 알게 되니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십자가를 내가 짊어지고 간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주님이 항상 함께 하셨습니다.
무거워 주저앉을 때에는 주님이 버팀목이 되어 기다려주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고백은 그저 “주여, 감사합니다”뿐입니다.
연약함을 고백하고 나니, 언제 십자가가 가볍게 느껴졌는지 깨닫게 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믿음으로 의지하고 십자가를 지면 가벼웠고, 세상을 바라보며 지면 너무나 무거웠습니다.
내게 주어진 십자가의 무게는 믿음의 깊이와 반비례합니다.
믿음이 깊으면 십자가는 가벼워지고, 믿음이 얕으면 십자가는 무거워집니다.
결국 십자가의 무게가 달라지는 것은 주님을 의지하는 내 믿음의 변화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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