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시대가 요구하는 금식
마태복음 6장 16 - 18절
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 경외심과 순종이 없이 겉모습을 거창한 종교의식들로 꾸미는 현상은 신앙이 타락할 때 나타납니다.
이런 현상은 모든 것이 넘쳐흐르는 풍요의 시대에서 더 많이 나타납니다.
오늘의 문제는 결핍보다 풍요로 일어나는 문제가 더 많습니다.
더 채워 달라는 육체적 본능에 응하다 보니 육체는 포만감에 시달리고 영혼은 감각이 무디어져 결국 영적 파산에 직면하게 됩니다.
바로 이때 필요한 것은 금식입니다.
육체적 욕구를 통제함으로 영적 건강을 찾는 것입니다.
만족을 위해 움켜쥐는 욕구를 중지시키고 비워내는 과정을 통해 영혼의 건강함을 회복하는 몸부림이 금식입니다.
금식은 내면에 깊이 숨겨져 있던 것들을 드러내고 잃어버린 중심을 되찾게 합니다.
잃어버린 영적 감각을 회복하기 위해 기본적인 욕구를 일시적으로 차단함으로 하나님에 대한 갈망을 깊어지게 하는 것이 금식입니다.
금식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는 영적 집중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금식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친밀하게 하는 것이 금식입니다.
그럼으로 온전한 금식은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과 마실 것을 줄일 뿐만 아니라 영혼을 병들게 하는 생각과 마음과 욕망을 함께 막아야 가능합니다.
유혹을 따라가는 눈, 허황된 것들을 듣는 귀를 단속하고,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쏟아내는 나의 입술도 함께 막아야 하는 것입니다.
헛된 생각과 기억들과 불필요한 탐식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나님의 시선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진정한 금식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족함과 갈증을 느끼는 육체인 경험을 통해 영혼의 광야를 체험하는 것이 금식입니다.
자발적으로 불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단순한 삶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집중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고 있음을 체험하여 영적 각성을 이루는 것이 금식입니다.
영적 무감각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더 깊이 갈망할 수 있을 때 금식은 내게 축복이 됩니다.
이런 영적 금식을 원하는 우리들에게 이사야는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외적인 형식으로서의 금식을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의 정의와 인애와 긍휼의 실천하는 것이다.(이사야 58장 6-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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