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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18일 (금) 일점일획_‘"성령"에 관한 묵상(우진성)(IBP)
2026-09-17 23:51:07
묵상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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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에 관한 묵상(우진성)

우진성 목사

 

성경은 성령에 대한 상(image)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이제까지 한국 교회가 주로 인용하는 성령에 대한 본문은 단연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불의 혀같이 임한" 영이다. 이 영은 다시 오실 예수를 기다리며 복음을 전파해야 할 사명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어주신 초월적 능력의 영이었다. 이 영이 임한 증거는 엑스터시다. 임하신 성령이 인간의 영을 강력하게 장악하며 자신의 언어가 아닌 하나님의 언어를 말하도록 인도하셨다. 초대 교인들은 성령 임재의 이런 강력한 증거에 의존하여 강력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고, 예수 십자가 처형의 트라우마를 이겨낼 수 있었고,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신적 담대함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성령을 체험한 사람들은 굳센 믿음과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받음으로써, 예루살렘에서 박해받고 흩어진 후에도 흩어진 지역에서 교회를 계속 세워가는 놀라운 일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런데, 사도행전 2장이 전하는 성령상이 특정 상황 속에서는 꼭 필요한 성령상임은 분명하지만, 마치 그것만이 성령의 전부인 것처럼 받아들일 때, 신앙생활 속에 부작용이 나타난 것도 사실이다. 하나님의 초월적 능력으로서의 성령만을 갈망하다 보니 신앙이 점점 초월 지향을 가지게 되었고, 초월적 능력을 통한 기적을 신앙의 표징으로 삼다 보니, 그런 기적이 필요하지 않은 일상 속에서 성령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가지지 못했다. 성령을 지나치게 좁은 지평 속에서 이해하다 보니 성령이 우리가 이 땅을 살아내는 삶의 지평으로 바로 연결되지 못한 면이 있다는 말이다. 성령의 일상성이랄까, 일상 속에서 동행하는 성령이랄까, 이런 신앙적 개념을 세우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성경은 한 성령에 대하여 다양하게 증언하고 있는데, 한국 교회는 그중 한 가지 상에 너무나 경도되어 다른 다양한 모습을 놓쳐 온 점이 아쉽다.

그런 면에서, 사도행전이 말하는 성령과 함께 바울 서신이 말하는 성령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울 사도가 말하는 성령은 초월적인 면보다는 내재적인 면이 더 강하고, 탈일상적이기보다는 일상적인 면이 강하기 때문에, 성령에 대한 우리의 이해의 지평을 넓혀 줄 것이다.

바울 사도는 그의 서신 여러 곳에서 성령에 대하여 언급하지만, 성령에 대한 그의 가르침이 잘 드러난 곳은 로마서 8장과 고린도전서 12~14장이다. 이곳에서 증언하는 성령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1. 해방의 영

 

바울에게 있어서 성령은 우리를 죄와 율법으로부터 해방하는 "해방의 영"이다. 로마서 8장 2절이 그리 증언하고 있다. 2절에서 말하는 죄와 죽음의 법은 율법을 말한다. 성령은 우리를 묶는 율법의 그 수많은 규정과 형벌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고 말한다. 율법이, 특히 레위기와 신명기의 율법 규정들이 얼마나 꼼꼼하게 우리의 생활 속에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규정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지키지 않았을 때, 대개의 경우 아무렇지도 않게 "죽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물론 율법의 규정을 descriptive한 것이 아니라 prescriptive한 것으로 보면, 그런 극단적 표현은 포로기 상황에서 그려낸 극단적 경건의 이상일 뿐일 수 있다. 실제 야만적 처형은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런 극단성이 이데올로기가 되어, 할례, 안식일, 정결례 등을 지키지 못하던 민중들에게 강력한 죄인 의식을 심어주는 굴레로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바울 사도는, 성령은 우리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셔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는다"고 선포한 것이다.

성령이 해방의 영이라는 설명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하나님의 존중을 뜻한다. 인간은 온갖 종교적 규정과 형벌을 통하여 “묶어야”만 그나마 선하게 살 것이다라는 이해가 있다. 율법의 기본 뜻도 그것이다. 종교적 규례를 통하여 인간의 자유의지를 묶을 때 비로소 인간이 선하게 살 가능성이 열린다는 이해가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로마서 8장이 말하는 성령은, 오히려 인간은 그를 묶고 있는 것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면 선하고 아름다운 길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존중을 담고 있다. 인간에게는 악한 면이 있다. 그러나 인간이 악한 면을 보이는 것은, “풀려 있기” 때문이고 그래서 더 “묶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묶여 있기” 때문이기에 “해방해야” 한다는 인식을 해방의 성령 개념은 전제하고 있다. 바울 사도의 성령은 이런 의미에서 장악하고 묶으시는 영이 아니라, 풀어주고 자유케 하시는(liberation) 영이시다.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우리를 완전히 장악해 들어와(possession) 우리를 그 뜻대로 움직이는 성령상과도 대비되는 이미지의 성령이다.

 

2. 그리스도의 영

 

바울 사도에게 성령은 철저하게 "그리스도 중심적"이다. 사도행전의 성령은 그리스도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초월적인 하나님이 보내 주시는 영이다. 그러나 바울 사도가 말하는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다. 로마서 8장 9~10절에 이것이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여러분의 몸은 죄 때문에 죽은 것이지만, 영은 의 때문에 생명을 얻는다." 바울에게 있어서 성령의 다른 말은 곧 "그리스도의 영"이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하다는 것이고, 성령을 따라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라 산다는 것이다. 이 말은,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초월적 하나님으로부터 미래에 임할 초월적인 시간까지 견디게 하는 초월적 능력을 받아 초월적 기적을 체험하고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 세상에 육신의 몸을 입고 완전한 인간이 되셔서 죄와 죽음을 이겨내신 그리스도의 영을 우리가 입어, 지금-여기에서 구원의 현실을 경험한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바울 사도가 말하는 성령-그리스도의 영은 “저 세상”이 아닌 “이 세상”에 내재해 계신 영이다.

 

3. 고백의 영

 

바울 사도에게 성령이 임재한 증거는, 사도행전에 드러난 것과 같은 초월적인 기적 혹은 엑스터시가 아니라, “고백”이다. 우리가 성령을 힘입을 때 드리는 고백은,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고백이다. 로마서 8:14-17이 이것을 증언한다. 14절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 16절은 성령이 우리의 영과 함께하시는 일은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라 한다. 그리고 15절에서, 그 영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고백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17절은, 그렇게 고백하는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자라고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고백은 또한, 예수가 우리의 주님 되신다는 고백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되는 길을 예수께서 열어 주셨기 때문에 그는 주님이시다. 그런데, 예수가 주님이라는 고백 역시 성령을 힘입지 않고는 아무도 할 수 없다고(고전 12:3) 한다. 이렇게 바울 사도에게 있어서 성령 임재의 증거는 고백이다. 비록, 우리가 초월적 능력과 기적을 경험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성령에 의해 혀가 뒤틀려 우리의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말하는 경험을 못했다 할지라도, 일상을 벗어난 초월의 경험이 평생 없었다 할지라도, 예수를 우리의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것을 고백할 수 있고 그것이 믿어진다면, 우리는 성령의 충만 가운데 있는 것이다. 사실 방언보다 예언보다 그 어떤 기적보다, 예수를 우리의 주님으로 고백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딸임을 믿고 고백하게 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기적이다.

(바울은 사도행전에서 성령 임재의 증거로 드러난 방언과 같은 현상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중시하지는 않았다는 것도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고전 14:18-19, 39-40에서 바울 사도의 이런 생각을 읽을 수 있다.)

 

4. 사랑의 영

 

우리가 성령 안에서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고백한다는 것이 우리 존재에 관해 설명하는 것이라면, 그런 우리 존재가 삶을 통해 어떻게 구체적으로 드러나는지를 설명하는 언어는 사랑이다. 성령 안에서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다. 이 점은 고린도전서 12장과 13장 사이에 잘 드러나 있다. 12장은 은사장으로 성령이 주시는 선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은사, 기적을 행하는 능력, 예언하는 은사, 영을 분별하는 은사, 방언을 말하는 은사,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가 그것이다. 성령의 은사에 관한 바울 사도의 가장 포괄적인 설명일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정말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다음에 있다. 그 모든 설명을 마친 바울 사도는 “그러나 여러분은 더 큰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더 좋은 길을 보여드리겠습니다”라는 말로 12장과 13장을 연결 짓는다. 그리고 13장에 이어져 나오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사랑에 관한 교훈이다. 이런 구조를 통해 바울 사도가 강조하여 말하고 있는 것은 사랑이야말로, 사랑하는 삶이야말로, 성령 임재의 가장 커다란 선물이라는 것이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생명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5. 공동체의 영

 

성령은 개개인에게 다르게 다가오고 다른 은사를 주지만, 성령의 의도는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다. 12장에서 각종 은사를 나열하기에 앞서 바울 사도는 그런 은사를 주시는 뜻을 이렇게 설명한다.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그것을 주시는 분은 같은 성령이시다. 섬기는 일은 여러 가지지만, 섬김을 받으시는 분은 같은 주님이시다. 일의 성과는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에게서 모든 일을 하시는 분은 같은 하나님이시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 주시는 것은 공동 이익을 위한 것이다.(고전 12:47)

이어지는 절에서 바울 사도는 지체들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몸(고전 12:1227)에 대해 설명한다. 지체가 모여 한 몸을 이루는 원리, 서로 다른 인종과 신분을 뛰어넘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원리를 바울 사도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유대 사람이든지 그리스 사람이든지,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서 한 몸이 되었고, 또 모두 한 성령을 마시게 되었다."(고전 12:13) 이렇듯 성령은 개인에게 내린다. 그러나 성령은 성령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한 몸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다. 그리스도의 몸은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 없이 세워질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성령 체험 없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 향기 풍기며 살아가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게 하는 것은 성령의 힘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지나치게 사도행전 중심의 성령 이해 속에서, 성령과 동행하는 삶이 저세상적이고 초월적이고 기적적이고 탈일상적으로 잘못 이해되어 온 경향이 있다. 이런 잘못된 경향을 뒤집으며, 한국 교회에 성령과 동행하는 삶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를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 바울 사도의 성령론 다섯 가지 특징을 기억하며 성령으로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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