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구한 십자가
한번 죽었다가 다시 살 때 한 살 먹는 것,
나무는 일 년에 한 번 죽었다가 살아난다.
사람은 매일 죽는다.
매일 죽었다가 다시 산다.
바울 선생도 말씀하시기를 “나는 매일 죽노라” 했다.
나도 매일 죽는다.
오늘 죽는 사람은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할 것이다”
오늘 죽는 사람은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룰 수 없다.
오늘 죽으니 오늘을 완전하게 살아야 한다.
이것이 종말론적 삶이다.
나름대로 역사를 공부하다 보니 내 나이를 착각하는 경우가 있었다.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비잔틴, 현재의 이스탄불)의 멸망(1453년)을
공부하면서 내가 정말 그 곳을 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것도 시간을 훌쩍 거슬러 그 시대를 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투르크의 대포에 함락 되었던 그 해에
역시 대포의 힘으로 프랑스가 영국을 이김으로 백년전쟁이 끝났다.
그 해 우리나라에서는 수양대군이 계유정란을 일으켜 실권을 잡았다.
콘스탄티노플의 함락과 계유정란을 경험한 내 나이는 500살이 훌쩍 넘는다.
또 한 번 나이를 크게 먹은 것은
마지막 빙하기를 관심을 갖고 볼 때였다.
1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간다.
빙하기의 끝이라지만 아직 두께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빙하가
지구의 상당부분을 덮고 있었다.
육지에 있는 빙하가 두꺼운 만큼 해수면은 낮았다.
지금보다 해수면이 수십 미터 낮았다.
그때는 西海(서해)가 없었다.
지금의 서해 한가운데로 황하가 흐르고 있었다.
그때는 코끼리보다 몇 곱절 큰 맘모스가 활보하던 때였다.
아시아와 아메리카 사이의 베링해협도 없었다.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의 조상들은 그곳을 통해서 아메리카로 들어갔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면서 지구 기온은 급상승한다.
전 세계적으로 홍수가 일어난다.
노아의 홍수도 그때 이야기다.
흑해와 지중해를 이어주는 보스포러스 해협도 그때 만들어졌다.
지구의 기온이 오르고 올라 지금보다도 기온이 2도 정도 더 높았던 때도 있었다.
그때는 황하 유역에 코끼리가 살았다.
마지막 빙하기를 여행하면서 내 나이는 1만 살이 되었다.
나이를 만 살 정도 먹다 보니 사람들이 부귀하다 하는 것이 부귀한 것이 아니고
비천하다 하는 것이 비천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
사람들이 선하다 하는 것과 악하다 하는 것이
진정으로 선하고 악한지 그 경계가 흐림도 알았다.
사람의 지적, 영적 나이는 참으로 장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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