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시드(חָסִיד)/경건한 자"에 관한 묵상(이영미)
히브리어 하시드(חָסִיד)는 경건한 자를 지칭하는데, 구약성경에서 총 32회 등장한다. 단수형으로 10회 (삼하 22:26; 시 4:3; 12:1; 18:25; 32:6; 43:1; 86:2; 145:17; 렘 3:12; 미 7:2), 복수형(하시딤, חֲסִידִ֣ים)으로 2회(시 149:1, 5), 그리고 인칭접미사와 함께 20회(신 33:8; 삼상 2:9; 대하 6:41; 시 16:10; 30:4; 31:23; 37:28; 50:5; 52:9; 79:2; 85:8; 89:19; 97:10; 116:15; 132:9, 16; 145:10; 148:14; 149:9; 잠 2:8) 언급된다.
하시드(חָסִיד)는 시편에 가장 자주 나온다. 시편 12:1을 기준으로 하시드(חָסִיד)는 한글성경에서는 “경건한 자”(개역개정), “신실한 사람”(새번역), “믿음 깊은 자”(공동번역), 혹은 ”한결같은 사람(새한글 성경)으로 번역되었다. 영어 성경에서는 “godly one,”(NASB) “faithful,”(NIV) “loyal,”(NET Bible) 또는 “saint”(KJV)로 번역된다.
하시드(חָסִיד) 단어 자체는 친절한, 선한 등을 뜻하는 동사 하사드(חָסַד)에서 파생되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 단어의 명사형 헤세드(חֶסֶד)는 하나님의 ‘계약적 사랑’을 뜻한다. 하시드(חָסִיד)가 하나님에게 적용되기도 하는 데, 이 경우에 “은혜로운”(시 145:17), “긍휼이 있는”(렘 3:12)으로 번역되었다. 또한 다윗은 그의 기도(삼하 22장과 시 18편)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히트파엘형(재귀형) 동사로 찬양한다. 사무엘하 22:26-27ㅈ과 시 18:25-26ㅈ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한결같은 사람(חָסִ֖יד)에게는 주님이 한결같은 분으로 나타나시고(תִּתְחַסָּ֑ד),
흠 없는(תָּמִ֖ים) 사람(גִּבּ֥וֹר)에게는 주님이 흠 없는 분으로 나타나십니다(תִּתַּמָּֽם).
깨끗한 사람(נָבָ֖ר)에게는 주님이 깨끗한 분으로 나타나시고(תִּתָּבָ֑ר) (새한글성경)
내가 한결같이 하나님께 신실하면, 하나님도 나에게 동일하게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신다니 얼마나 좋은가!
하시드(חָסִיד)가 사람에게 적용되는 경우, 그 사람은 하나님의 계약적 사랑(헤세드)을 스스로도 행하는 자를 뜻한다. 즉 하시드(חָסִיד)는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속에서 살아갈 때 형성되는 것으로, 경건한 자란 하나님의 계명을 이해하고 그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다. 특별히 하시딤(חֲסִידִֽים)은 복수형으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나라의 멸망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신실함에 의지하여 신앙을 잃지 않은 남은 자들을 지칭한다. (시 149:1, 5) 할렐루야 시편에 해당하는 시 149편은 5-6절에서 하시딤(חֲסִידִֽים)의 역할을 두가지로 설명한다.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고, 다른 하나는 손에 ‘양날의 칼’을 들고 하나님의 정의의 심판의 대리하는 일이다. 5-6절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경건한 자들은(חֲסִידִֽים) 영광 중에 기뻐하며
그들의 잠자리에서도 기뻐 노래할 것이다.
그들의 입에는 하나님을 향한 높은 찬양이 있고,
그들의 손에는 양날의 칼이 있다. (베헤레브 피피요트 베야담/וְחֶ֖רֶב פִּֽיפִיּ֣וֹת בְּיָדָֽם)
6절 하반절에서 언급한 헤레브 피피요트(חֶ֖רֶב פִּֽיפִיּ֣וֹת )는 시적인 표현이라 언뜻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를 직역하면 ‘입들의 칼’인데, 유사한 표현이 이 구절 외에 성경에서 5번 나오고, ‘양날의 칼’로 번역된다.(삿 3:16; 잠 5:4; 히 4:12; 계 1:16; 2:12; 그리스어로는 ῥομφαία δίστομος이다.) 구약학자들은 이 본문에서의 용례와 구약 주변 세계의 고고학 자료들을 토대로 이 표현이 ‘말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고 설명한다. 혀는 칼날을 상징하고, 입이 칼자루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표현을 ‘기도자의 언어’로 이해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즉 하시딤(חֲסִידִֽים)은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동시에 기도하는 자이다. 이어지는 7-9절이 이웃 나라들에 행해지는 심판과 복수를 묘사하는 것을 볼 때, 이 기도는 골방에서 드리는 개인적 경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의 실천을 위한 적극적인 기도의 행위를 뜻한다. 나아가 ‘입들의 칼’은 야웨의 종의 노래 중 하나인 이사야 49장 2절의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를 떠올리게 한다.
하시드(חָסִיד)에 대한 묵상을 마치면서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정의 돌비에 새겨진 “학문과 경건”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경건이란 세상과 분리된 거룩한 자의 골방 기도나 명상이 아니라, 기도의 언어로 하나님의 정의를 세상에 외치는 것이며, 그 경건은 학문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는 부지런함으로 더 견고해질 것이다. 그래서 장공은 경건과 학문이 아니고, ‘학문과 경건’이라고 하신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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