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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2일 (금) 일점일획_요한 마가에 관한 묵상(IBP)
2025-12-11 23:04:07
묵상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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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마가에 관한 묵상

 

요한 마가(마가라 불리던 요한. Ἰωάνης Μᾶρκος이오아네스 마르코스)와 바나바 바울이 만난 이야기를 사도행전의 문맥에서 살펴보자. 예루살렘에 2차 박해가 있었다. 1차 박해 때 스데반 집사가 살해 당했다면, 2차 박해 때는 요한의 형제 야고보 사도가 살해 당했다. 베드로는 체포 당하였고, 그 역시 죽을 운명이었다. 사도행전은 이렇게 보도한다.  

이 무렵에 헤롯 왕이 손을 뻗쳐서, 교회에 속한 몇몇 사람을 해하였다. 그는 먼저 요한과 형제간인 야고보를 칼로 죽였다. . . 그는 베드로도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네 명으로 짠 경비병 네 패에게 맡겨서 지키게 하였다. 유월절이 지나면, 백성들 앞에 그를 끌어낼 속셈이었다. 이렇게 되어서, 베드로가 감옥에 갇히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사도행전 12:1-5)

그런데, 천사의 도움으로 베드로는 탈옥에 성공하였고, 탈옥한 베드로는 자신을 위하여 모여서 기도하고 있는 교인들을 찾아간다. 그 집이 요한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서, 베드로는, 마가라고도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다. 거기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다.(사도행전 12:12)

베드로가 찾아간 곳은 마리아의 집이기도 하였지만, 아들 요한 마가의 집이기도 하였다. 성경의 직접적 언급은 없지만, 베드로가 이곳에서 요한 마가를 만났을 가능성이 있다. 어쨌든 사도행전이 전하는 베드로의 탈옥을 마지막으로 사실상 베드로는 사도행전의 무대에서 사라진다.(한번 다시 나타나는 장면은 15장의 예루살렘 회의 때) 베드로의 탈옥 이야기를 한참 전개하던 사도행전은 돌연히 등장 인물을 바꾸며 사도행전 12장을 마무리 하는데, 바나바와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요한 마가를 만나 그를 데리고 안디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바나바와 사울은 그들의 사명을 마치고, 마가라고도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왔다.(사도행전 12:25)

바나바와 사울은 기근 든 "유대에 사는 신도들"(행 11:29)을 위해 안디옥 교회가 모은 구제비를 전달하려고 예루살렘에 와 있었고, 이 임무를 수행한 후 안디옥으로 돌아가면서 요한 마가를 데리고 갔다는 말이다. 이 짧고 돌연한 보도가 전환점이 되어 이제 사도행전의 무대 중심에 바나바와 바울이 서게 된다. 우리는 요한 마가를 바울이 어떻게 만났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예루살렘에서 만났고 안디옥으로 동행한 것을 안다.   

 

나는 요한 마가를 청년으로 상상한다. 그렇게 상상하는 이유는, 

1. 요한 마가가 바나바와 바울의 조수였기 때문이다.  

바나바와 사울은, 성령이 가라고 보내시므로, 실루기아로 내려가서, 거기에서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건너갔다. 그들은 살라미에 이르러서, 유대 사람의 여러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그들은 요한도 또한 조수로 데리고 있었다.(사도행전 13:4-5)

이 구절 "조수"에 사용된 헬라어는 ὑπηρέτης(휘페레테스)로서 조수 혹은 보조자를 뜻하는데, 일반적으로 보조 받는 자 보다 어린 사람으로 추정한다. 

2.요한 마가는 바나바의 조카였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갇혀 있는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사촌인 마가가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마가가 여러분에게 가거든 잘 영접하라는 지시를 여러분이 이미 받았을 줄 압니다).(골로새서 4:10)

새번역이 사촌으로 번역한 헬라어는 ἀνεψιός(아넾시오스)인데, 놀랍게도 헬라어에서는 이 한 단어로 사촌 형제와 조카 모두를 표현하였다. 그러므로 요한 마가는 바나바의 사촌일 수도 있고 조카일 수도 있는 것이다. [개역 개정]은 아넾시오스를 조카로 취하여 "바나바의 생질 마가"라고 번역하였다. 바나바의 여자 형제의 아들이라는 말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는 새번역보다 개역개정의 번역을 취하여 요한 마가를 바나바의 조카로 이해한다.  

3.베드로의 제자였기 때문이다. 

여러분과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빌론에 있는 자매 교회와 나의 아들 마가가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베드로전서 5:13)

여기서 "아들"은 제자를 의미한다. 베드로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된 요한 마가가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선교 여행에 오르게 된 것이다. 

4.선교 여행에는 젊은 청년이 꼭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도보로 연락 소통해야 했던 당시 사정상 선교팀에 청년의 존재는 필수적이었다. 2차 선교여행 때 디모데가 그 역할을 맡았다. 

이상의 네 가지를 고려할 때, 요한 마가를 젊은이로 추정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청년 요한 마가는 실패를 맛보았다. 바나바와 사울과 함께 안디옥으로 내려온 요한 마가는 그들의 조수가 되어 선교여행에 동행하였다.  

 바나바와 사울은, 성령이 가라고 보내시므로, 실루기아로 내려가서, 거기에서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건너갔다. 그들은 살라미에 이르러서, 유대 사람의 여러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그들은 요한도 또한 조수로 데리고 있었다.(사도행전 13:4-5)

그런데 요한 마가는 선교여행 중도에 남은 일정을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버린다. 

바울과 그 일행은 바보에서 배를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로 건너갔다. 그런데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사도행전 13:13)

우리는 요한 마가가 일행을 이탈한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 여러 추정이 있을 수 있으나, 이에 대한 추정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분명한 것은 요한 마가의 이탈이 바울에게 커다란 실망을 남겼다는 것이다. 2차 여행을 준비하며 바나바는 요한 마가를 데리고 가길 원했지만, 바울은 단호히 그에 반대하였다. 

그런데 바나바는 마가라는 요한도 데리고 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버리고 함께 일하러 가지 않은 그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심하게 다툰 끝에, 서로 갈라서고 말았다.(사도행전 15:37-39)

바나바는 요한 마가에게 세컨 찬스를 주기 원했지만 바울은 이에 반대하였고, 이 일로 바울과 바나바는 "심하게 다툰 후에 서로 갈라지고 말았다."

 

요한 마가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사도행전은 이후 요한 마가에 대해 침묵한다. 사도행전은 실라라는 새 멤버를 꾸려 2차 여행을 떠나는 바울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한다. 요한 마가에 대한 사도행전의 마지막 보도는 "바나바가 조카 마가를 데리고 고향 키프로스로 떠나갔다"이다.(사도행전 15:39) 

다소 쓸쓸해 보이는 이 보도가 정녕 끝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몇 가지 점에서 요한 마가가 다시 일어섰고, 이 전의 실패를 교훈 삼아 더욱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먼저는 사도행전 밖 서신서들 속에 등장하는 요한 마가에 대한 언급을 통해 알 수 있다. 

나와 함께 갇혀 있는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사촌인 마가가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마가가 여러분에게 가거든 잘 영접하라는 지시를 여러분이 이미 받았을 줄 압니다)(골로새서 4:10).

나의 동역자인 마가와 아리스다고와 데마와 누가도 문안합니다(빌레몬서 1:24).

골로새서와 빌레몬서는 바울의 옥중 서신이다. 어느 감옥에서 썼는지는 여전히 확정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에베소 감옥(54-55), 가이사랴 감옥(58-60),  로마 감옥(60-61) 중 하나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요한 마가는 바울의 곁을 지키며 바울의 "동역자"로 다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더하여 디모데후서에서 바울은 요한 마가를 "나의 일에 요긴한 사람"(개역개정 "나의 일에 유익하니")이라고 묘사한다. 

그대는 속히 나에게로 오십시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해서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가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가고, 디도는 달마디아로 가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그대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십시오. 그 사람은 나의 일에 요긴한 사람입니다.(디모데후서 4:9-11)

사도행전의 아쉬운 엔딩과 달리, 이런 서신서 말씀들은 실패했던 요한 마가의 재기를 분명하게 보도하는 것이다. 

또한 교회의 전통을 통하여 요한 마가의 재기를 확인할 수 있다. 

  • 전통적으로 마가복음을 쓴 사람이 요한 마가라는 주장이 있다. 베드로가 전한 마가 이야기를 그의 제자(아들) 요한 마가가 기록한 것이 마가복음이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마가복음의 "마가"는 다름 아닌 요한 마가이다. 
  • 오순절 성령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하는데, 요한 마가의 다락방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부르는 전승이 있는 것이다.  
  • 심지어 마가복음 14장에 나오는 도망친 젊은이를 요한 마가로 보는 전승도 있다. 

현대의 신학자들은 이런 전승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나, 요한 마가가 후대 교회의 거룩한 전승에 오르내리는 것자체가, 키프로스로 떠난 요한 마가의 모습으로 요한 마가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는 선교현장에서 이탈하였고, 그 일로 바울의 신뢰를 잃고 배척당했지만. 다시 일어났다. 우리는 어떤 과정으로 일어났는지 알 지 못하지만, 거의 재기는 분명해 보인다. 키프로스에서 바나바는 요한 마가를 가르치고 키우는 일에 전념한 것일까? 

요한 마가 이야기는 실패 했지만, 다시 일어선 청년의 이야기이다. 청년의 실패를 비판하기보다 재기를 칭찬하고 재기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어야 한다.

https://ibp.or.kr/wordspostachio/?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168946393&t=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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