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찔러본다 **
찔러본다
최영철
햇살 꽂힌다
잠든 척 엎드린 강아지 머리에
퍼붓는 햇살
깼나 안 깼나
쿡쿡 찔러본다
비 온다
저기 산비탈
잔돌 무성한 다랑이논
죽었나 살았나
쿡쿡 찔러본다
바람 분다
이제 다 영글었다고
앞다퉈 꼭지에 매달린 것들
익었나 안 익었나
쿡쿡 찔러본다
칙칙칙 소리 내는 압력밥솥을 열고 고구마와 감자가 익었는지 찔러 봅니다.
맛있는 저녁을 상상하며 달걀찜이 익었는지 찔러 보았습니다.
죽은 듯 잠자고 있는 이구아나가 살아있나 죽었나 찔러 봅니다.
시간을 앞당기니 옆 사람 눈치를 보며 옆구리를 찔렀던 기억이 살아납니다.
욕심에 끌리는 것들을 찔렀고, 소유하고 싶은 것들을 찔렀습니다.
이익이 되는 것들을 찔러 보았습니다.
욕망의 눈에 보이는 것들을 주로 찔렀습니다.
내 중심으로 찔렀습니다.
인간 중심으로 찔렀습니다.
이런 나에게 시인은 훅하고 찌릅니다.
‘눈에 비친 것 말고 마음으로 이어지는 것을 찔러 본 적이 있어?’
‘인간 말고 피조물로 찔린 적은 있어?’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찌르고, 찔림을 당했던 기억이 없는 나에게 시인의 언어는 감각의 눈을 열어주었습니다.
햇살이 강아지를 찌르고, 비가 다랑이 논을 찌르고, 바람이 영글어 가는 과일을 찌르는 광경은 새로운 감각을 갖게 했습니다.
인간 중심의 관계가 아닌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모든 만물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감각입니다.
인간과 자연이 어울리고, 자연과 자연이 함께 하고, 피조물과 피조물이 이어지는 감각입니다.
상처없이 찔리고, 상처없이 찌르기 위해 찔릴 수 없는 것에 찔리고 찌를 수 없는 것들로 찌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이 관계를 맺는 방법이고 느끼는 감각입니다.
이 방법은 내 중심이 아닌 서로가, 혼자가 아니라 함께 관계를 맺어갑니다.
차가운 생각이 아니라 따스한 시선으로 이어져야 교감할 수 있고 내밀한 세계까지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을 시인은 ‘찔러본다’라는 시어로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찔러본다’는 말이 아픔이 아니라 생명과 사랑의 느낌으로 달려옵니다.
가슴에 박히는 따스한 햇살로, 천사의 아름다운 몸짓으로 내 영혼을 ‘쿡’하고 찌릅니다.
웬수라 부르는 옆사람의 옆구리를 한번 찔러 보는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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