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시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은 사람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재난이자 하나님의 심판이었다(렘 14:12; 21:9; 24:10; 27:8; 29:17; 32:24; 42:22). 그 중에서 기근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물질, 곧 음식 부족이라는 가장 심각한 재난에 속한다. 칼로 대변되는 전쟁 역시 식량을 찾기 위한 물리적인 수단 중의 하나다. 사람들은 곡식을 찾아 이동하거나(창 12:10; 42:2; 룻 1:1), 누군가를 위협하거나 연합하고, 상대와 다투거나 심기를 맞추기도 한다(창 25:34). 목숨을 담보로 전쟁을 서슴지 않은 이유도 먹거리가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이다(창 26:10). 이렇듯 인류의 모든 전쟁은 식량의 확보에서 한치도 자유롭지 않다. 성서와 역사에서 전쟁을 어떻게 합리화해도 떡을 빼곤 설명할 수 없다.
흥미롭게도 히브리어 빵과 전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동사 라함(לְחַם)은 ‘먹다, 음식으로 삼다’ (신 32:24; 잠 4:17; 23:6; 시 141:4), ‘싸우다, 삼키다’(시 35:1; 56:1; 수 10:5; 출 1:10; 17:9,10; 삼상 8:20; 왕상 14:19; 사 7:1) 등으로 쓰이고, 명사 레헴은 ‘떡, 음식, 고기’ 등을 가리킨다(창 3:19; 31:54; 출 16:3; 신 8:3; 23:5; 삼하 6:19; 시 14:4; 78:20; 호 9:4; 욥 3:24). 아랍어 ‘겨루다,’ 시리아어 ‘연합하다, 맞추다, 위협하다’ 등도 어원상 음식을 두고 벌이는 힘겨루기다. 역시 같은 뿌리에서 나온 르훔(לְחוּם)은 ‘창자, 또는 내장’을 가리키는데(욥 20:23; 습 1:17) 음식물이 체내에서 분해되고 흡수되는 과정과 현상을 반영하는 신체 기관이다. 밀하마(מִלְחָמָה֙) 전쟁은 가운데 ‘레헴’을 두고 서로 당기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면, 베들레헴(בֵּיתלְחָם)은 음식 걱정이 없는 떡집을 의미한다.
한편 성막의 성소에 등잔대와 분향단과 함께 진설병상이 놓여있다. 여기 진설병이 떡 곧 레헴이다. 고운 가루로 구운 떡 열두 덩이를 한 줄에 여섯 개씩 두 줄로 배열한다(레 25:5-9). 이스라엘 12 지파를 가리킨다. 성소의 떡은 가나안 종교의 제의 음식과 달리 그 기원이 분명하지 않다. 가나안 전통에 의하면 제단의 음식은 신에게 바치는 희생 제물이다. 그러나 성소의 떡은 야웨와 이스라엘의 영원한 언약이다(레 24:8). 곧 이스라엘에게 양식을 베푸시는 분은 야웨라는 의미다(출 16:15). 성소의 떡은 ‘진설병’(לֶ֥חֶם פָּנִ֖ים)으로 표기되었다. 번역에 따라 ‘진설병(陳設餠)’<개역개정>, ‘거룩한 빵’<새번역>, ‘제사 떡’<공동번역>, ‘거룩한빵(진설병)’<새한글>, ‘the table shewbread’ <흠정역>, ‘the sacred bread’ <GNB>, ‘the bread of the Presence’ <NRSV> 등 일관성이 없으나 핵심은 ‘떡’이다.
진설병(레헴 파님)의 ‘파님’(פָּנִים)은 얼굴의 복수형이다. 문자적으로 브니엘(אֶל פָּנִים)이 하나님의 얼굴이니(창 32:30) ‘레헴 파님’은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하는 떡’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성소의 떡은 신의 얼굴, 곧 하나님의 현존을 의미한다. 그것은 다시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며 보호하고 함께 한다는 데 목표가 있다(민 6:24-26). 파님은 또한 ‘보이다,’ 또는 ‘내부의’라는 뜻도 있다. 19세기 랍비 말빔은 떡의 얼굴이 하나님의 현존을 상징하지만 떡의 주요한 기능은 인체의 자양분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면’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떡의 생김새보다는 영양소를 가리키는 ‘내용’(contents)에 주목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내면의 떡’이 되어 자연스럽게 영적인 의미 곧 토라와 관련된다.
성소의 떡은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얼굴과 신의 현존을 암시하지만 사람에게 필요한 양식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시인은 만나를 하늘 양식이라고 고백한다(시 78:24; 105:40). 이점에서 성소의 떡은 가나안 제의의 희생제물과 달리 전쟁의 승자가 쟁취하는 전리품이 아니다. 성소의 떡은 사람이 하루도 건너 뛸 수 없는 일용할 양식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매일 경험하는 신학적 장치가 된다. 더욱이 진설병상에 대접, 숟가락, 병, 잔 등을 둠으로써 음식을 섭취하기 위한 도구들이 함께 나온다. 떡은 하나님의 은총이며 동시에 육체의 영양분이다. 성소의 떡은 뺏고 빼앗기는 전쟁의 획득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현존인 동시에 그의 백성에게 주시는 ‘일용할 양식’이다(마 6:11). 광야의 이스라엘에게 두 가지 레헴이 요구된다. 하나는 육신의 레헴 빵(לֶחֶם)이며 다른 하나는 영적인 레헴, 하나님의 긍휼(רֶחֶם)이다. ‘하나님 얼굴의 떡’이 신체에 필수적인 양식이라면 ‘하나님의 긍휼’은 그분의 은혜를 갈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영적 양식이다.
엇비슷하게 회사 또는 친구로 번역되는 영어 company에도 ‘빵’이 들어있다. ‘함께, 더불어’를 의미하는 라틴어 com과 ‘빵’을 뜻하는 포르투갈어 panis 가 결합되었다. 빵을 함께 나누는 사이가 친구이며 공동체가 곧 회사라는 뜻이다. 한편 한자 평화(平和)는 쌀의 공평한 나눔이 곧 평화의 핵심임을 보여준다. 곧 ‘쌀’을 똑같이 나누는 일은 역사적으로 늘 예민한 주제였다. 화합과 평화는 쌀[禾]을 골고루 먹는[口] 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쪽은 배부르고 다른 한쪽은 허기를 참아야 한다면 둘 사이의 긴장과 불안은 증폭되고 평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지고 보면 쌀은 갈등과 분쟁의 요인이면서도 공평한 사회와 평화의 나라를 위한 디딤돌이다. 동학의 가르침 대로 하늘을 한 사람이 가질 수 없듯 밥 또한 소수의 독점물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세상은 ‘내가 신뢰하여 떡을 나눠 먹던 가까운 친구’가 언제든지 나를 대적하며 내 소유를 빼앗으려 한다(시 41:9). 야곱과 에서의 갈등, 상속을 두고 형제 간의 법적 소송, 노조와 사측의 긴장, 선수와 구단의 줄다리기 등은 모두 ‘밥’을 놓고 싸우는 현대적 의미의 전쟁이다. 히브리어 ‘레헴’ 떡에서 ‘밀하마’ 전쟁이 파생되었다는 사실을 놓친다면 양식의 공평한 분배를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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