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총회 회보의 내용을 오늘의 묵상 자료로 올립니다.
장공 김재준목사님께서 성령강림절을 맞이하며 회보의 권두언으로 쓴 것이 보여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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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언》
— 성령강림절에 —
사람은 무엇이 되려고 계획한다. 무엇을 가지려는 것 보다도 무엇이 되려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의로운 사람이 된다, 사랑의 사람이 된다고 장담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죄인이고 굴욕의 종이다. 인간을 개조한다고 구호를 외쳐도 외치는 그 사람부터가 개조의 기망 없는 죄악의 존재임을 어찌 못한다. 내가 집권만 한다면 당장에 유토피아를 실현시킬 것 같았지만 집권하자 마자 스스로가 권세의 사정(便丁)이 된다. 인간은 죄와 죽음에의 운명하에서 스스로를 이에 구출할 아무 약속도 능력도 없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인간 속에 좌정하여 그 인간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만들어 내지 않는 한, 구원은 없다는 것이다.
하늘 위에 초월하신 하나님의 역사 안에 인간으로 오시고 다시 인간 하나하나의 마음 속에 성령으로 임재하시는 하늘의 새 창조 운동만이 새 인간 산출을 가능케 한다. 이것이 현실화한 것이 “펜테코스테”, 성령강림의 사실이었다. 이래 이천년 성령은 믿는 자의 맘 속에 현실화한 하나님으로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 우리는 교회에서 목회자로, 치리자로, 교사로, 증언자로, 각양 계획에 분망한다. 서재에서 연구하고, 교단에서 강의하고, 사회에서 증언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참으로 하늘 영광이 가지덤불에 불타는 효능을 나타내려면, 고요한 기도와 성령의 역사에 머리 숙이는 것으로 시종해야 한다.
성령의 감화 없는 지식은 교만을 낳는다. 성령의 역사 없는 웅변은 꽹과리의 소음에 그친다. 분주해도 거품만 남고, 구름이 떠 돌아도 비는 안온다. 동력은 걸려도 움직이진 않으며, 열은 있어도 불꽃은 없다. 회려 속에 공허가 깃들고 많이 모여도 제각기 고독하다.
그러므로 오늘의 교회는 한결같이 “창조주 성령이여 오시옵소서!”하고 겸손하게 호소하고 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요, 그리스도의 영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그 바탕으로 한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빌립보 2:8에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겸손하게 자기를 비워 뭇 사람을 섬기되 죽기까지 복종하는 마음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등으로 나타난다. 성령은 교회적으로 주어진다. 다락방 모임에서 강림했고, 그 강림에서 교회가 탄생했다. 교회를 떠난 개인이 아니라 교회의 지체로서의 개인으로 성령은 임재한다. 그리스도의 영은 그리스도의 몸에 머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각도에서 한국의 성령신비주의자들의 재고가 촉구된다. (長空)
-한국기독교장로회 회보, 제55호(1965년 6월 1일),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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