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이어의 못을 뽑고 **
고린도후서 12장 7 - 9절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타이어의 못을 뽑고
복효근
사랑했노라고 그땐
또 어쩔 수 없었노라고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도 모를 너를 찾아
고백하고도 싶었다
그것은 너나 나의 가슴에서 못을 뽑아버리고자 하는 일
그러나 타이어에 박힌 못을 함부로
잡아 뽑아버리고서 알았다
빼는 그 순간 피식피식 바람이 새어 나가
차는 주저앉고 만다
사는 일이 더러 그렇다
가슴팍에 대못 몇 개 박아둔 채
정비소로 가든지 폐차장으로 가든지
갈 데까지는 가는 것
갈 때까지는 가야 하는 것
치유를 꿈꾸지 않는 것
꿈꾼대도 결국 치유되지 않을 것이므로
대못이 살이 되도록 대못을 끌어안는 것
때론 대못이
대못 같은 것이
생이 새어나가지 않게 그러쥐고 있기도 하는 것이다
*** 아픈 세월을 보내지 않아도 가슴팍에 대못 하나쯤은 박고 살고 있습니다.
박힌 대못으로 인해 헤어지기도 하고 한평생 원망을 품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때로는 내 가슴에 박힌 대못처럼 상대의 가슴에 대못을 쳤습니다.
사라지지 않은 통증을 해결하고 싶어 사죄를 청하는 심정으로 가슴의 대못을 빼고 싶습니다.
용서 없이 가슴에 박힌 대못을 빼면 견딘 세월이 새어나가 영육이 주저앉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대못을 빼지 못하고 그저 그렇게 한평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용서를 빌 용기가 부족하고 용서해 줄 마음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대못을 내 뼈라 여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여기까지 어떻게 견디며 왔는 지를 묻게 되는 날, 나는 이렇게 답을 할 것 같습니다.
‘가슴에 박힌 대못의 고통을 참느라 힘든 이 세상이 주는 고통을 견딜 수 있었다.’
사도 바울은 거대한 고통을 겪으면서 생활했습니다.
견디어 내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 하나님께 세 번이나 고쳐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사도 바울이 원하는 기도와 달리 다른 응답을 주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 말씀을 통해 사도 바울은 자신에 박힌 가시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그가 깨달은 첫째 의미는 자신에게 박혀있는 가시는 자신을 자만하지 못하게 지키는 경계라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깨달은 의미는 자신의 가진 능력의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오히려 연약함을 도와 온전하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게 하는 힘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 사도 바울은 평생 자신에게 박혀 있는 가시를 품고 인내하며 자신이 가야할 길을 달려갔습니다.
다들 가슴에 아픔 하나씩 품고 있습니다.
가슴 한구석에 대못 하나 아프게 박혀있습니다.
그러나 이 아픔이 매듭이 되어 나를 물러나지 않게 했고 여기까지 견디게 했습니다.
치유할 수 없다면, 빼낼 수 없는 고통이라면, 꿈을 꾸어도 용서되지 않는다면 내 인생에 박힌 대못이 살이 되도록 끌어안고 가는 것이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내가 온전해지는 길입니다.
내 안의 그 대못이 내 인생의 매듭이 되게 하는 것이 오히려 나를 살리고, 나를 살리는 흔적이고 내가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머물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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