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면류관 사랑
마태복음 27장 29-30절
29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30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사랑
이정록
연초록 껍질에
촘촘 가시를 달고 있는
장미꽃을 한 아름 산다.
네가 나에게 꽃인 동안
내 몸에도 가시 돋는다.
한 다발이 된다는 것은
가시로 서로를 껴안는다는 것
꽃망울에게 싱긋
윙크를 하자
눈물 한 방울 떨어진다.
그래, 사랑의 가시라는 거
한낱 모가 난 껍질일 뿐
꽃잎이 진 자리와
가시가 떨어져 나간 자리, 모두
눈물 마른자리 동그랗다.
우리 사랑도, 분명
희고 둥근 방을 가질 것이다.
** ‘한 다발이 된다는 것은 가시로 서로를 껴안은 것’이라는 표현이 가슴을 울렁거리게 합니다.
‘한 다발이 된다는 것은 가시로 서로를 껴안는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가 되는 길은 단순한 과정이 아니라는 것을 직설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녹아들기까지 무수한 부대낌이 있어야 하고, 이 과정을 회피해서는 온전한 하나를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사랑도 그렇게 다듬어져 왔고 서로를 안아주는 마음이 되어갑니다.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해 봅니다.
그 설레임과 떨림을….
이 마음이면 한 다발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요.
서로를 껴안아 주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시마저 껴안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해 갑자기 사랑이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가시를 껴안고 인내하고 품어주고 놓지 않는 것이 사랑이기에 사랑이 아파 온 것입니다.
그리고 고민합니다.
내가 계속해서 껴안을 수 있을까?
내가 아파하면서 껴안는 것은 손해가 아닌가?
계산하니 더 아픕니다.
견딜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프기에 사랑이라고 말하려 합니다.
당신 가시에 찔리는 아픔을 통해 나와 너의 사랑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픔에 눈물 흘리면서도 윙크할 수 있는 마음이 사랑인 것을 알게 됩니다.
가시마저 감싸안을 수 있는 마음이 되면 너와 내가 아니라 우리가 되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 쇼펜하우어의 저서에 ‘고슴도치의 딜레마’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추운 겨울밤 고슴도치 두 마리가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견디기 위해 가까이 가지만, 곧 서로의 가시에 찔려 화들짝 놀라며 멀리 떨어집니다.
그러다 추위를 느끼게 되면 다시 가까이 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내 가시에 찔리게 되고 또다시 아픔을 피하려 떨어집니다.
추위와 아픔이라는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다 두 고슴도치는 상대의 가시가 주는 아픔을 참을 수 있는 적절한 거리를 찾아내고 유지하게 됩니다.
아프지만 견딜 수 있고 따뜻함으로 추위를 이길 수 있는 절묘한 거리를 찾아내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한 다발이 된다는 것은 상대의 가시를 견딜 수 있는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랑의 온기를 느끼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쇼펜하우어의 지혜를 통해 배웁니다.
** 시인의 표현이 또다시 가슴을 울렁거리게 합니다.
‘한 다발이 된다는 것은 가시로 서로를 껴안은 것’
이 시어는 나의 죄를 감당하기 위해 가시면류관에 찔려 피를 흘리신 예수님의 사랑과 나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 모든 모멸을 감당하신 예수님의 고난이 스쳐 지나갑니다.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마태복음 27장 29-30절)”
예수님께서 가시면류관을 쓰셨다는 것은 곧 나의 죄와 저주를 머리에 짊어지셨다는 강력한 증거인 것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찔러 피 흘리게 한 면류관의 가시는 내가 가진 죄악의 가시이었고, 내가 내민 죄악 가시에 찔려 흘리신 예수님의 피는 나와 한 다발이 된 사랑이었습니다.
“그 가시가 내 죄다”라는 고백은 단순한 신학적 해석을 넘어서, 개인적인 회개와 감사의 자리로 이어지는 저의 작은 신앙의 고백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는 내가 지닌 죄악의 가시를 품는 사랑의 간격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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