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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금) 일점일획_‘먼지’(עָפָר)에 관한 단상(김창주)(IBP)
2026-10-16 00:27:12
묵상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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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עָפָר)에 관한 단상(김창주)

 

창세기 2장 7절의 ‘아파르 민 하아다마’(עָפָר מִן־הָאֲדָמָה)는 문자적으로 ‘그 흙의 먼지’나 ‘그 땅의 티끌’로 번역하면 자연스럽다. 개역개정(1998)의 ‘땅의 흙’은 어정쩡하고 심지어 애매한 번역이다. 개역한글(1961) 덕분이다.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에 익숙해져 새로운 번역이 원문을 담기보다 익숙한 번역을 의식한 결과다. 개정개역과 새번역(2004)이 “땅의 흙”으로 바꾼 것은 ‘먼지’나 ‘티끌’을 뜻하는 히브리어 아파르(עָפָר)를 최소화하고 ‘흙’을 가능한 살리려는 의도다. 공동번역(1977)은 ‘진흙’으로 옮겼다. 이 점에서 2024년 간행된 새한글성경의 변화는 눈 여겨 볼만 하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 부스러기’ 곧 흙으로 사람을 빚으셨다. 그러고는 그의 코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으셨다. 그러자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새한글>

 

위에서 보듯 ‘땅 부스러기’로 옮겨도 충분하다. 그런데도 ‘곧 흙’을 덧붙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독자에게 친숙한 번역을 지키면서 예상된 반발을 무마하려는 해석이다. 

사실 히브리어 ‘아파르’는 흙보다 

1) 티끌(창 13:16; 18:27; 28:14; 출 8:16; 9:9; 민 5:17; 신 9:21; 28:24; 32:24; 욥 4:19; 30:19; 38:38; 42:6; 시 18:42; 90:3; 사 26:19; 40:12; 애 3:29; 암 2:7), 

2) 재(창 18:27; 민 19:19; 삼하 13:19; 욥 42:6; 사 44:20; 61:3; 암 2:7; 말 4:3), 

3) 먼지(삼하 16:13; 시 7:5; 78:27; 103:14; 104:29; 113:7; 사 40:15), 

4) 진토(삼상 2:8; 욥 40:13; 시 22:15,29; 30:9; 44:25; 119:25; 잠 8:26; 사 2:10; 25:12; 26:5), 

5) 가루(신 9:21; 왕하 23:6), 

6) 부스러기(겔 26:12<공동>)’에 가깝다. 아래 영어와 독일어 번역을 참고하면 확연하다.

 

     KJV: the dust of the ground

     NIV/JPS: the dust of the earth

     CEB: some soil from the ground

     Luther: Staub von der Erde

 

위에서 ‘아파르’가 대부분 ‘먼지’(dust)로 번역되었으나, ‘티끌, 흙 조각, 부스러기, 흙덩이’ 등으로 풀 수 있다. 한편 어원적으로 아파르는 위의 용례를 포함하여 다음의 가능성도 제기된다. 

1) 아바르(עָבַר): 고대 셈어에서 b와 p는 입술 소리로 교환 가능한 자음이다. 즉 ‘관통하다, 가로지르다’의 아바르와 ‘티끌, 먼지’를 뜻하는 아파르(עָפָר) 사이의 상호적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아바르는 ‘히브리’의 어원이기도 하다. 즉 강을 ‘건너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동안 발은 물론 옷가지와 몸속까지 먼지나 티끌이 묻어 ‘흙투성이’가 된다(cf. 마 10:4). 바로의 소굴에서 서둘러 도망하고, 메마른 광야를 몇 년 동안 행진하며, 더러 가나안 원주민들과 교전하느라 온몸이 먼지로 뒤범벅이 되었던 사실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말 4:3 참조). 광야의 이스라엘은 건조한 사막과 모래바람을 뚫고 다니는 동안 흙먼지를 이고지고 살 수밖에 없었다.

2) 제공하다(provide): 고대 히브리어 ‘이브리’(עברי)는 보통 ‘저편에서 건너온 사람’으로 해석하지만 동사로는 (음식을) ‘찾다, 제공하다’와 관련 지을 수 있다. 경계를 넘고 강을 건너온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달려왔을까? 목표는 명확하다. 양식이다. 곧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수고와 여정이었다. 야곱은 이집트에 곡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 아들들에게 내려가서 구해오라고 명령한다(창 42:1). 요셉의 형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식량을 찾아 브엘세바에서 네게브와 신 광야를 가로지르고 나일강을 건너 고센 땅까지(?) 먼 길을 달렸다(창 42:5).

3) 구약에서 흙먼지나 티끌은 창조 세계의 가장 작고 비천한 것이며 무생물로서 죽음에 가까운 물질이다(시 103:14; 104:29; 사 26:19; 52:2; 암 2:7). 창세기 저자는 사람이 흙에서 태어나 먼지속에서 뒹굴다 종국에는 흙으로 돌아간다고 선언한다(창 3:19; 시 90:3). 곧 사람에게 흙과 먼지는 태어난 요람이요, 평생 살 공간이며, 죽어 묻혀야 할 무덤이다. 따라서 아담과 아다마, 아파르와 히브리는 사람에게 서로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준첩어(準疊語)’처럼 묘사한 것이다.[1]

 

그렇다면 하나님이 ‘땅의 먼지’로 사람을 창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흙먼지’든 ‘땅의 티끌’이든 흙(אֲדָמָה)과 관련된다. 이제 흙의 특성을 파악하면 사람에 대한 이해가 열린다. 흙에는 두 가지가 특징적이다. ① 흙에 물이 적당히 섞이면 부드럽다. 얼마든지 변형이 가능하다. 그곳에 생명이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 ② 흙에 불을 가하면 굳어진다. 가뭄이나 화산열이 달구면 흙은 마르고 건조해진다. 돌처럼 딱딱 해져 싹을 틔우지 못하고 결실을 기대할 수 없다. 사람에게도 두 가지 품성이 있다. 똑 같은 ‘나’(I)이지만 평온하고 여유로우며 수용적일 때가 있고, 조급하고 완고해서 내칠 때가 있다. ‘흙의 먼지’에서 태어난 ‘나’(I)에게 수분이 적당히 스며있을 때와 건조할 때 전혀 다른 사람이다. ③ 인도유럽어에서 homo, human, humiliate의 뿌리말은 ghum, humus, 흙이다. 영어 human은 흙에서 비롯된 존재로서 흙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상호성을 암시하는 단어다.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 시 104:29).”

 

구약에 사람이 ‘땅의 먼지’ 또는 ‘진흙’에서 창조되었다는 주장은 고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생각이었다(사 64:8; 렘 18:2ff). 창세기가 사람이 ‘흙의 먼지’로 창조되었다고 선언함으로써 기독교 신학의 기초가 되었다. 먼지가 영속할 수 없는 질료를 가리킨다면 흙, 또는 대지(אֲדָמָה)는 영속적인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람이란 영속적인 땅에서(창 13:15; 시 37:29; 104:5; 전 1:4) 이따금씩 날리다 사리지는 ‘먼지’로 창조된 유한한 존재다. 살아있는 동안 삶의 수고와 어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다(시 103:14; 욥 5:6). 여기서 야웨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창세기 2장과 욥기 33장 두 본문을 관찰해야 한다.

 

     7그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 2:7새번역>.

     4하나님의 영이 나를 만드시고, 전능하신 분의 입김이 내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6보십시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어른이나 나나 똑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진흙’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욥 33:4-6<새번역>)

 

위의 인용에서 알 수 있듯 ‘사람’은 흙먼지와 생명의 기운이 단순히 섞인 총합이 아니다. 생명이란 혼돈과 공허의 무질서가 조화와 질서의 창조 세계로 변화되었듯 무생물이 살아있는 ‘생명체’로 바뀐 것이다. 곧 발에 묻거나 밟히는 물질이던 먼지/티끌이 하나님의 숨, 창조자의 정신과 융합되어 새로운 존재로 태어난 셈이다. 먼지는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가장 보잘 것 없는 미세한 물질로 여겨졌으며 셀 수 없는 가장 작은 단위였다(민 23:10; 삼하 22:43; 사 40:12). 게다가 흙덩이에서 떨어져 나오거나 바람에 날리는 먼지는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공기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흩날린다. 이와 같이 흙의 먼지로 형성된 흙부스러기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살아있는 숨(נִשְׁמַת חַיִּים)을 만나 질적인 변화를 겪는다. ‘생명의 기운’에서 ‘느샤마/기운’은 숨(breathe)이다. 숨은 살아있는 동안 내쉬며 들이쉬는 생명체의 활동이다. 하나님은 흙의 티끌로 사람을 빚으시고 생명의 호흡(呼吸)을 그에게 불어넣음으로써 마침내 사람은 하찮은 물질에서 하나님을 닮은 영원한 ‘생명체’ 가 되었다. 흙먼지로 표상되는 (창조세계의) 물질과 생명의 기운으로 대표되는 비물질 (창조자의 영)이 일궈낸 놀라운 결과다. 이제 사람은 태어난 땅과 세상을 보존하고 경작하라는 임무를 부여받는다(창 2:15).

  

[1]준첩어란 발음이나 뜻이 비슷한 말이 겹쳐진 형태로 단순 반복을 피하며 강조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옹기종기’는 크고 작은 토기들이 ‘올망졸망’ 놓여 있는 모습을 가리킨다.

 

https://ibp.or.kr/wordspostachio/?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175025727&t=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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