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의 기도 _ 허정섭 목사(서울동노회 서기 / 신사동교회 담임)
10월 4일 창조절 다섯째주일 / 세계성만찬주일 / 군선교주일
주님, 우리를 주님의 식탁으로 불러주심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생명의 떡을 떼기 위해 모인 이 은혜의 자리에서,
도리어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선을 그으며 살아왔는지를 참회합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배척하고, 성향이 비슷해야만 ‘우리’라는 좁은 테두리에 가두며,
무수히 많은 타자를 향해 차별과 정죄의 벽을 세우며 살아왔습니다.
주님, 굳어버린 우리의 비좁은 심령을 찢으시어
주님의 식탁에 앉은 모든 이를 참된 형제요 자매로 품어내게 하소서.
나아가 이 마음의 벽을 허무는 화해의 영성이
철조망으로 허리가 끊긴 이 땅의 아픔으로 뻗어가기를 소망합니다.
나와 너를 가르던 미움의 선이 지워진 자리에,
갈라진 남과 북, 헤어진 가족들이 마침내 한 식탁에 둘러앉아
평화의 밥 한 끼를 나누는 기적의 날을 허락해 주옵소서.
이 막힌 담이 온전히 허물어질 그날을 고대하며,
분단의 멍에를 짊어지고 가장 차가운 국경 곁에 서 있는 이 땅의 군 장병들을 기억합니다.
총성과 긴장이 도사리는 병영의 땅이,
도리어 생명의 존엄을 깊이 깨닫는 훈련장이 되게 하소서.
무기를 든 일상 속에서도
내 생명과 이웃의 생명이 얼마나 천하보다 귀한지를 배우게 하시고,
거친 구령 소리 사이로 따뜻한 복음의 위로가 스며들게 하소서.
그리하여 그들이 견뎌내는 병영의 시간이 단지 전쟁을 막는 차원을 넘어,
훗날 이 땅에 온전한 샬롬을 피워낼 거룩한 평화의 씨앗으로 심기게 하소서.
우리의 무너진 담을 허무시고
영원한 화해와 평화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0월 11일 창조절 여섯째주일
주님, 우리가 세상을 단번에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함부로 망가뜨리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욕심 하나를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모든 강을 깨끗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자리에서 물 한 방울을 아낄 수 있습니다.
모든 숲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내가 누리는 편리함 하나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생명을 구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내 곁에 있는 한 생명을 귀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바라옵기는, 우리의 작은 선택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생명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작은 절제 하나가 다음 세대에게는 희망이 되게 하시며,
우리의 작은 사랑 하나가 무너져가는 창조세계에 다시 생명의 길을 열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가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소유하고 누릴 것인가”를 갈구하던 탐욕의 늪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죽어가는 것들을 더 살려낼 것인가”를 묻는 생명의 신앙으로 성숙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주님께서 지으시고 보시기에 참 좋았다 하신 이 푸른 별을
더 다정하게 돌보게 하옵소서.
그래서 훗날 우리가 주님 만나볼 그날,
주님 앞에 서서 “주님, 비록 저의 힘은 미약했지만,
주님께서 맡기신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게 가꾸다 왔습니다”라며 고백할 수 있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창조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생명을 붙드시고 새롭게 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0월 18일 창조절 일곱째주일
주님, 가을이 깊어지는 시간, 우리의 발밑에 내려앉은 낙엽을 바라보며
우리의 마음을 다시 돌아보게 하옵소서.
끝없이 채우는 것만이 은혜가 아니며,
더 높이 올라가는 것만이 성공도 아님을 깨닫게 하옵소서.
때로는 내려놓아야 하고, 때로는 비워야 하며,
때로는 내가 가장 소중하게 붙잡고 있던 것까지 주님의 손에 맡겨야
새로운 생명이 시작될 수 있음을 배우게 하옵소서.
주님, 나뭇잎이 힘없이 떨어지는 듯싶습니다.
하지만 떨어진 잎은 썩어 흙이 되고, 그 흙은 다시 나무를 살리고,
그 나무는 다시 새잎을 내고, 새 계절을 준비함을 봅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의 삶도 그렇게 쓰임 받게 하옵소서.
내가 가진 것을 내려놓음으로 누군가가 살아나게 하시고,
내가 한 걸음 물러섬으로 다른 사람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게 하시며,
내가 낮아짐으로 누군가의 삶에 새로운 길이 열리게 하옵소서.
주님, 화려하게 피어나는 계절뿐 아니라
조용히 내려놓는 계절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하시고,
우리의 삶이 마지막까지 누군가의 내일을 살리는 작은 흙 한 줌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생의 마지막 날,
우리가 주님 앞에 서서 “주님, 제가 가진 것은 모두 잠시 맡겨주신 것이었고,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아름답게 돌려드리고 싶었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게 하옵소서.
떨어지는 것 같지만 새로운 생명을 준비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0월 25일 창조절 여덟째주일 / 종교개혁주일 / 이단경계주일
주님, 오백여 년 전 비텐베르크 성당의 문에 들려오던 못질 소리가
오늘 굳게 닫힌 우리 심령을 치는 거룩한 망치 소리로 메아리쳐 오기를 간구합니다.
우리는 종교개혁의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정작 우리 자신은 개혁의 대상에서 슬쩍 빠져나오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하옵소서.
과거 교회의 잘못을 이야기하며 손가락질하기는 쉬웠지만,
정작 우리 안에 자리 잡은 신앙의 허영과
자기 의를 바라보는 일에는 인색하지 않았는지요.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밖으로부터 침투하는
이단의 거짓 가르침에는 날을 세워 경계하면서도,
우리 안에 자라는 욕심과 교만은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지 않았는지요.
진짜 이단은 어쩌면 저 바깥의 사이비 집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을 잃어버린 채 굳어진 우리의 낡은 신앙적 관습 안에도 숨어 있음을
두렵고 떨림으로 깨닫게 하옵소서.
주님, 이 철저한 자기 개혁의 토대 위에서
혼탁한 이 시대의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성도들의 영혼을 거짓된 두려움으로 결박하는 자들,
자신들만이 구원의 진리를 독점한 양 교만하게 구는 자들,
그리고 그리스도의 피 묻은 십자가 자리에 특정한 교주나
사람을 은밀히 올려놓는 모든 거짓 가르침의 정체를 분별하고 물리치게 하옵소서.
우리의 내면을 향한 끊임없는 자기 개혁이
곧 밖의 이단을 이겨내는 가장 강력한 무기임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오직 말씀으로, 오직 은혜로 우리의 심령을 날마다 새롭게 기경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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