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우리의 허물을 담당하시고 목숨까지 주셨다!’
1. 이사야 53:5 (구약 1033쪽).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2. 로마서 8:32 (신약 250쪽).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사실상 모순이며 불합리이다. 죄인은 자기가 지은 죄의 값을 받아야 한다. '죄와 벌'이다. 그것이 원칙이고 맞는 것이다. 아무도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핑계를 대며 빠져나갈 수 있어서는 안 된다. 이를 분명히 하는 것이 예레미야와 에스겔 예언자이다.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신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죽는 것이다(렘 31:29-30; 겔 18:2). 그것이 정의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는 현실과 진리가 있다. 타인의 잘못을 대신 지는 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 대한 책임을 자신의 어깨에 짊어지는 이들이 있다. 사실 제사의 원리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지은 죄를 제물이 되는 짐승에게 전가되어 그 짐승의 죽음으로 죄가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레 1:1-4; 4-5장 etc). 부모가 자식의 양육이라는 짐을 지고 희생을 감내하는 경우도 여기에 속한다. 그것은 사랑 때문이다. 사랑은 남의 허물을 덮어주게 하고 자신이 그것을 담당하게 한다(잠 10:12; 17:9).
예수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해의 틀이 그것이다. 하나님이 아들을 주신 것은 세상에 대한 그분의 사랑 외에 달리 십자가에 얽힌 이 놀라운 사건을 파악할 수 있는 다른 열쇠가 없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9-10. cf. 요 3:16-17). 해석의 키(key)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6-8). 덧붙일 말이 없다. 그래서 사랑이 우리에게 덧씌워진 의무가 된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의로운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죄로부터 속량하시고 깨끗한 사람으로 다시 살아갈 기회를 얻었습니다.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한 감격 속에서 살게 하시고 용서 받은 죄인으로서 평생 빚을 갚으며 겸손하게 열심히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아멘.
찬송가 271장 (나와 같은 죄인 위해); 296장 (죄인 구원하시려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