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사 “바브(ו)”와 아가서 1장 5절 "검으나 아름다우니"에 대한 묵상
히브리어는 접속사가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영어, 독일어, 그리스어, 라틴어 등과 비교했을 때, 히브리어는 “그리고,” “그러나,” “그런데,” “그러므로,” 등 단어와 단어, 구와 구, 문장과 문장 사이의 대등적, 반어적, 혹은 인과적 연결관계를 아주 명확히 해주는 “논리적 연결사”를 그리 정교하게 발전시키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어는 접속사 “바브(ו)” 하나가 “그리고”로도 “그러나”로도 “그러므로”로도 번역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접속사가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히브리어가 무척 “상황적(contextual)”인 언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상황, 즉 문맥 속에서 접속사의 의미가 파악됩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어는 문맥을 파악하는 해석자의 판단이 아주 중요하게 됩니다. 언어 자체가 그 언어를 듣는 사람들의 판단을 요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문법적인 언어로 표현하자면, 히브리어 접속사 “바브”는 A와 B 사이를 연결하되(A와 B는 단어일 수도, 구일 수도, 문장일 수도 있습니다) 둘 사이의 관계는 명시하고 있지 않은 접속사라고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창세기 앞부분에 나오는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면,
- “그리고(and)”: “하늘과(and) 땅(창1:1),” “땅이 혼돈하고(and) 공허하며(and)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and)…(창1:2),” “궁창 아래의 물과(and) 궁창 위의 물로(창1:7)” 등 접속사 바브를 그리고(and)로 번역한 예는 성경에 수를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나옵니다.
- “그러나(but)”: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but)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창2:16-17),”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but)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창4:4-5)”, “그러나(but)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6:8).” 이렇게 접속사 바브를 대립적인 의미의 “그러나(but)”로 번역한 경우도 (“그리고”처럼 많지는 않지 않지만) 적지 않습니다.
접속사 바브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문제는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해석자가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를 다르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가서 1장 5절입니다. 아가서의 화자 중 술람미 여인이 자신의 외모를 묘사하는 장면입니다.
שְׁחֹורָה אֲנִי וְנָאוָה
쉐호라(שׁחורה)는 피부색이 검다는 뜻이고, 아니(אני)는 “나”, 그리고 접속사 바브 다음에 나바(נאוה)는 “예쁘다/아름답다”는 뜻입니다. 이 문장을 풀어보면,
검다(black) + 접속사 바브 + 아름답다(beautiful)
“검다”와 “아름답다” 사이를 연결하는 접속사 바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리고”일까요, “그러나”일까요? 여기서 해석자의 판단이 중요해집니다.
대표적인 우리말 번역들을 살펴보면,
- 개역개정: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 공동번역: 나 비록 가뭇하지만 (…) 귀엽다는구나
- 쉬운성경: 내가 비록 (…) 검지만, (…) 아름답습니다.
- 현대인의성경: 나는 비록 검지만 아름답단다.
- 카톨릭성경: 나 비록 가뭇하지만 어여쁘답니다.
위의 번역들은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검다”와 “아름답다”를 반어적, 대립적 관계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똑같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없는 "비록"이라는 부사를 첨가하여 두 형용사 사이가 반대 개념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영어 번역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I am black but lovely(NASB, NJB),” “I am very dark, but lovely(ESV),” “I am black, but comely(KJV, JPS, TNK).”
여기서 질문입니다. 왜 번역자들은 “검다”와 “아름답다” 사이의 접속사 바브를 “그러나(but)”로 이해했을까요? 피부가 검고 짙은 흑인여성이 예쁠 리가 없다는 인종차별적인 선입견이 그 바탕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렇게 반박할 수도 있겠습니다.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아1:5b 개역개정)”라는 표현이 뒤따라 나오는데, “게달의 장막”은 검고 못난 유목민의 텐트를 가리키는 것이고, “솔로몬의 휘장”이 아름다운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서로 반어적이고 대립되어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개역성경의 “같을지라도”는 번역자가 첨가한 부분입니다. 원어는 “께다르의 장막처럼, 솔로몬의 휘장처럼(כְּאָהֳלֵי קֵדָר כִּירִיעֹות שְׁלֹמֹה)”입니다. 영어 번역성경들도 대부분 “Like the tents of Kedar, like the curtains of Solomon(NASB, ESV, NRSV) 혹은 이와 비슷하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두 구문은 접속사로도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럴 경우, 이 두 가지는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고 보는 게 좋습니다. 즉, 께다르의 장막과 솔로몬의 휘장은 둘 다 색깔이 어두우면서 아름다운 것을 지칭한다고 말입니다.
과연 아가서가 쓰여진 시대에도 피부가 검은 것이 부정적인 의미를 가졌을까요? 해가 뜨기 전 짙은 어둠을 가리키는 어근 쉰-헤트-레쉬(שׁחר)는 아가서에서 두 번 더 쓰입니다. 5장 11절의 “머리는 순금 같고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 같이 검구나(שְׁחֹרוֹת)”에서 남성의 검은 곱슬머리를 가리킬 때와, 6장 10절의 “아침빛(שָׁחַר)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에서처럼 아름다운 여성을 묘사할 때 사용됩니다. 즉, 두 경우 다 어근 쉰-헤트-레쉬가 검고 아름다운 것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습니다.
아가서 1장 6절에 술람미 여인은 포도원을 지키느라 햇볕에 그을린 검은(שׁחרחרת) 피부를 갖게 된 것을 마치 부끄러워하듯이 “번역”되었습니다(“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개역개정)). 그러나 이 해석의 문제는 술람미 여인이 포도원을 지키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아1:6b). 포도원에서 일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햇볕에 탄 검은 피부를 갖게 된 걸까요?
본문은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내 남자형제들이 내게 화가 나 그들이 나를 포도원지기로 삼아서 햇볕에 그을려 내 피부가 검어졌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אַל־תִּרְאוּנִי). 나는 포도원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즉, 여인은 자신의 검고 아름다운 피부가 많은 야외활동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본래 타고난 것이라고 자랑하는 장면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이 여인이 사랑하는 남성은 양과 염소를 치는 목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아1:7-8). 이 남자의 피부색깔 역시 여인의 검은 톤과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논증했듯이, “검다”와 “아름답다”를 반어적인 “그러나(but)”로 연결하는 것은 번역자의 인종차별적인 판단 외에 다른 본문적 증거는 없습니다. 이 판단에서 히브리어 원문에는 존재하지 않는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라든가,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등의 표현을 삽입한 것입니다.
이 본문에 대한 이해는 그러나 1960년대 흑인인권운동이 생겨나며 변하기 시작합니다. 흑인신학자들은 “검으나 아름다우니(black but beautiful)”이라는 해석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대체 왜 검은 것은 아름답지 않은가? 이러한 영향으로 새로운 번역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1989년에 나온 NRSV가 “I am black and beautiful”로 개정하였고, 2000년에 출판된 ISV가 그 번역을 그대로 따라했으며, 2010년에 나온 CEB(Common English Bible)가 “Dark I am, and lovely”로 번역하게 됩니다. 한글 성경 중에서는 새번역이 “내가 검어서 예쁘단다”로 해석하는데, 이 번역은 단순히 “검다, 그리고 아름답다(black and beautiful)”를 넘어서, “나는 검다, 그래서 아름답다(I am black, therefore, beautiful)”라는 한발 더 나아간 해석을 채택함으로써, “나는 검기 때문에 아름답다”라는 흑인신학자들의 해석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쉐호라 아니 베나바(שְׁחֹורָה אֲנִי וְנָאוָה)"라는 아가서 1장 5절의 히브리어 원문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문장을 보는 우리의 시각이 바뀌면 같은 문장이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그만큼 성경은 독자인 우리가 어떠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내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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