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13-16
1.
“삼포로 가는 길”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가사 일부 들어보면 기억나실 겁니다.
'바람 부는 저 들길 끝에는, 삼포로 가는 길 있겠지...
사랑도 이젠 소용없네, 삼포로 - 나는 가야지’
삼포의 한자 의미는 숲이 있는 작은 항구이고
노래에서 삼포는
살다가 삶에 지쳤을 때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삶에 지쳐 고향으로 가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어떤 사연이 있기 마련입니다.
성경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어느 순간
“겐그레아로 오는 길”과 “앗소로 가는 길”이 보입니다.
이 길에도 어떤 사연이 있습니다.
둘 다 전도여행하는 사도 바울과 관련된 사연들입니다.
이 시간 이 사연들을 통해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점검해보려고 합니다.
2.
“겐그레아”라는 지명이 조금 생소하실 겁니다.
2차 전도여행 그림에서
왼쪽 땅은 지금의 그리스이고 오른쪽 땅은 지금의 터키입니다.
겐그레아는 그리스 남부에 있는 고린도라는 도시 바로 옆에 있습니다.
고린도에서 배편으로 동쪽 땅으로 갈 때 사용했던 항구입니다.
사도바울이 겐그레아로 오는 길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요?
겐그레아에 도착해서 사도바울이 행한 것을 주목하면 됩니다.
바울은 겐그레아에서 배를 타기 전 머리를 깎습니다.
그동안 바빠서 못 깎고 이제 머리 깎았다면 별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의 행동은 삭발처럼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삭발에는
앞으로 이렇게 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삭발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서원한 것이 있어서 머리를 깎았다고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기간을 정해서 하나님께 서원을 하면
서원 기간이 끝날 때 머리를 깎아야 합니다.
이 점을 감안하면
바울은 2차 전도여행 어느 시점에 하나님께 서원을 했고
겐그레아에서 서원을 끝내면서 머리를 깎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서원을 했을까요?
2차 전도여행 시작하면서 그랬다는 추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랬다면
서원 기간의 끝은 전도여행이 끝났을 때가 자연스럽습니다.
비록 주요 활동은 끝났지만 겐그레아는 여행 끝이 아닙니다.
서원의 시작점을 알 수 있는 단서는 겐그레아의 위치에 있습니다.
겐그레아는 그리스를 배 타고 떠나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서원 기간이 끝났다는 것은
서원의 시작을 그리스 지역으로 들어오면서 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2차 전도여행은 1차 전도여행에 비해 마음의 부담이 적었습니다. 1차 때 전도했던 곳을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둘러보다가 터키 서쪽 해안 지역 새로운 곳에서 전도하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상하게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서쪽으로 가는 길이 막혀서 북쪽으로 이동했는데 이 길도 막혀서 다시 서쪽으로 향하다가 도착한 곳이 터키 북부 “드로아” 항구였습니다. 배타고 그리스로 가는 항구입니다.
이 드로아에서 사도바울 일행은 그리스로 건너가 전도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환상으로 확인하게 됩니다. 문제는 그곳은 사도바울에게 생소한 지역이라는 점입니다. 게다가 그리스로 건너가는 것은 계획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때 바울은 힘든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마음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힘을 얻고 자신의 마음을 잡기 위해 그리스로 건너가면서 하나님께 서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주님, 낯선 땅으로 들어갑니다. 이 땅을 벗어날 때까지 정신 차리고 임무 수행하겠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바울의 느낌처럼 첫 도시인 빌립보부터 감옥에 갇히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리고 그 어려움은 한동안 계속 이어집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하나님께 서원할 때 다졌던 각오를 가지고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마침내 그리스를 떠나는 겐그레아에서 서원을 끝내면서 머리를 깎은 것입니다.
“겐그레아 오는 길”을 뒤돌아보면
힘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임무 수행을 해온 바울의 사연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이제 앗소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앗소로 가는 길”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요?
우리에게 앗소라는 지명은 ‘겐그레아’보다 더 생소합니다.
앗소는 드로아 항구가 있는 반도 남쪽에 있는 항구입니다.
3차 전도여행 지도 중앙에 녹색 동그라미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3차 전도 여행의 초반 코스는 2차 때와 비슷합니다.
다만 이번에는 서쪽 에베소로 직진합니다.
이곳에서 2년 넘게 있다가
2차 전도여행 코스였던 그리스 지역으로 넘어가
그때 세워진 교회들을 방문하려 했고
순조로울 수밖에 없는 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2차 때처럼 겐그레아에서 배타고 복귀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돌발사태가 터집니다.
바울을 암살하려는 계획이 알려집니다.
누가 알려주었을까요? 영화처럼 흥미롭습니다.
암살을 피하기 위해 예정된 코스를 바꿔야 했습니다.
사도바울 일행은 겐그레아에서 배를 타지 않고
그리스 북부로 다시 올라가 터키로 건너가기로 합니다.
흩어져 이동한 후 집결을 드로아 항구에서 합니다.
이곳에서 7일간 머물면서 집회를 했는데
창문에 걸터앉아 졸다가 떨어진 유두고 사건이 이때 일어납니다.
결과적으로는 집회는 잘 마무리되었고
이제 남은 일정은 배를 타고 편하게 이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뜻밖의 말을 합니다.
드로아에서 앗소까지 혼자 걸어가겠다는 겁니다.
약 50킬로미터, 이틀이 걸리는 거리입니다.
다른 일행이 드로아 항구에서 해변 타고 앗소 항구로 이동한 후
대기하고 있으면 그 배에 합류하겠다는 것입니다.
“앗소로 가는 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길은 어떤 길이었을까요?
이 길을 걸은 후 사도 바울에게 일어난 변화를 보면 됩니다.
이 길을 걷기 이전의 바울은 암살당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아마 이 암살 계획은 반대 세력 수뇌부와 관련되어 있을 겁니다.
본부는 예루살렘에 있고요. 이곳이 호랑이 굴인 셈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길을 걸은 후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두릅니다.
항로에 있는 에베소에 들릴 법한데도 들리지 않고
밀레도라는 곳에서 에베소 교인 대표들을 잠시 만납니다.
빨리 예루살렘으로 가려는 바울의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 교인 대표와 작별 인사는 눈물바다였습니다.
앞으로 내 얼굴을 못 보게 될 것이라는 바울의 말(21:38) 때문이었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바울의 각오가 보입니다.
이런 바울의 태도가 두로에서도 가이사랴에서도 유지되며 21:13에서는 바울이 죽음을 각오하고 있다는 말을 직접 합니다.
앗소로 가는 길은 바울에게 마음을 잡기 위한 기도 시간이었습니다. 걸으면서 기도한 것입니다. 죽을 것까지도 각오하게 만든 길이 앗소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4.
“겐그레아 오는 길”과 “앗소 가는 길”에는 이와 같은 바울의 사연이 깊게 배여있습니다. 중요한 시기에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고 강하게 하고 결단하는 바울의 신앙생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바울의 모습을 세상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어떤 평가가 나올까요?
“마음이 흔들릴 때 자신의 마음을 잘 추스르고 결단하는 강한 사람” 한마디로 “정신 수양에 힘쓰는 사람”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왠지 어색합니다.
바울이 정신 수양에 힘쓰고 마음을 잘 챙긴 사람이라니?
그것은 불교 쪽이나 명상 같은 것 하는 사람들 모습 아닌가?
이런 의문이 드는 이유는
자기 성찰을 하고 마음 잘 챙기고 정신 수양하는 사람과
우리 기독교인은 거리가 멀다는 인식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겐그레아 오는 길”과 “앗소 가는 길”의 바울을 보십시오.
바울에게서 모범적인 마음 챙김과 자기 성찰과 마음 회복력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기도를 통해 그 과정이 진행되지요.
추석 연휴 때 명상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불교도가 아니더라도 자기 관리를 잘 하는 사람들이 명상의 효과를 활용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인 듯합니다.
다른 뉴스도 보았습니다.
경주의 어떤 절의 템플스테이가 외국인들에게 명상 핫플레이스였습니다.
이런 프로그램을 볼 때면
성도들이 이것 보면서 부러워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깁니다.
신앙심 떨어질까 해서, 생기는 걱정이 아닙니다.
우리 기독교에 있는 것을 누리지 못하고
‘남’을 부러워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입니다.
마치 제가 스마트워치 사용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다양한 기능이 있지만 그것들을 사장시키고
운전할 때 이어폰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서양의 기독교인들이 동양의 명상이나 마음 수련에서 새로운 것을 찾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특히 우리의 기도생활에 이미 들어 있는 것들입니다.
짧게 해야 하는 설교라 따로 심리학적 근거를 제시할 수 없지만
“겐그레아 오는 길”과 “앗소 가는 길”의 사도바울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고칠 것 고치고 약한 것 강하게 하는 것이
기독교 전통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병원에 근무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은 선교사 사도바울과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의료선교기관에서 일하면서 선교사 역할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처럼 □□병원 구성원 여러분들도 사명감을 가지고 활동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배우셔야 할 것이 더 있습니다.
“겐그레아 오는 길”, “앗소 가는 길”의 사도바울처럼
기도를 통해 마음을 새롭게 하고 마음을 회복하고 마음을 강하게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사명을 수월하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병원 구성원 여러분들을 보혜사 성령께서 도우셔서 마음을 늘 새롭게 하시고 힘주시기를 소망합니다.
[註]
(1) 오늘 아침, □□병원 직원예배에서 전하게 될 신앙교훈입니다. 어제 주일예배 때 전한 내용을 많이 줄였습니다. 줄이는 것의 유익을 실감했습니다.
(2) 전도여행 지도는 인터넷에서 가져왔습니다. 겐그레아 위치는 고린도와 인접하도록 제가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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