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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2일 (금) 일점일획_탐내다 ἐκδικέω(엑디케오, 원한을 풀다)에 대하여(김범식)(IBP)
2026-06-11 23:18:22
묵상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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ἐκδικέω(엑디케오, 원한을 풀다)에 대하여

김범식

헬라어 동사 ἐκδικέω(엑디케오)는 신약성경에 6번 나타나고, 명사형 ἐκδίκησις (엑디케시스)는 9번 나온다. 이 단어는 접두전치사 ἐκ와 동사 δικέω의 결합형태이다. 동사의 어근은 정의의 여신 Dike를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이 동사는 ‘정의를 행하다’(do justice)의 의미를 띈다.  ἐκδικέω(엑디케오)는 잘못된 것에 대한 정의의 심판으로서 형벌을 주다(punish), 심판하다(judge)의 뜻으로 구체화된다. 동사 ἐκδικέω(엑디케오)는 결국 ἐκδικάζω(엑디카조, 심판하다)의 뜻으로 동일화 되었다.

 

   헬라어 70인경(LXX)에서 동사 ἐκδικέω(엑디케오)는 ‘보복하다’ ‘되갚아주다’의 뜻으로 사용된다. 이것은 살인의 죄와 같은 피 흘림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을 말할 때, 사용되었다. 그래서 보복(revenge)과 원수 갚는 행위(avenge)를 말하고 있다. 동생 아벨을 죽이고 보복을 두려워하는 가인을 향하여 그에게 보복하는 자에게 일곱 갑절의 벌을 받을 것(ἐκδικέω, 엑디케오)을 선포하셨다(창 4:15). 피 흘림에 대한 율법의 규정은 ‘복수법’이고 이 복수법을 정당화하고 있다(출 21:20; 민 31:2; 신 32:43). 히브리어 נקם(나캄, avenge)를 번역할 때 흔하게 사용되는 동사는 ἐκδικέω(엑디케오)였다. 형벌과 처벌의 의미로 사용하면서, ἐκδικέω(엑디케오)는 정의를 실현하는 법률행위로도 사용되었다(겔 16:38; 23:45). 형벌, 혹은 원수 갚는 보복, 법정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의미의 동사 ἐκδικέω(엑디케오)는 신약성경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명사 ἐκδίκησις (엑디케시스)에서도 똑같이 보이고 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서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눅 18:1-8)에서 과부는 자신의 송사를 열어서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 달라고 재판관을 번거롭게 한다. 낙심하지 않고 항상 기도해야 할 것의 교훈으로 이 비유를 말씀하였다. 여기에서 ‘원한을 풀다’라는 동사 ἐκδικέω(엑디케오)를 두 번이나 사용하고 있다(18:3, 5). 원한을 풀어 달라는 과부의 간절함을 기도의 교훈으로 비유하면서 명사 ἐκδίκησις (엑디케시스)를 또한 두 번 사용하고 있다(18:7, 8). 하나님께 기도하는 성도들은 마치 원한을 풀어 달라는 정의와 자비의 기도임을 암시하고 있다. 기도와 간구의 많은 내용은 성도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겪는 불행, 고난, 핍박, 억압 속에서 맺힌 한을 풀어 달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정의와 자비가 있어서, 성도로 살면서 겪는 영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풀어지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이렇게 기도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 보복하는 행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울은 성경의 전통을 따라 보복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ἐκδικέω),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ἐκδίκησις)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 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19-21).

  

그리스도인으로서 아무리 악에 의해서 희생되더라도 원수 갚는 것을 금지하는 바울의 권면은 구약성경의 전통을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원수 갚는 것(ἐκδίκησις)은 내가 하는 일이니, 내가 갚는다. 원수들이 넘어질 때가 곧 온다. 재난의 날이 가깝고 멸망의 때가 그들에게 덮친다”(새번역, 신 32:35; 히 10:30).

   피 흘린 자에 대한 보복(ἐκδίκησις)이 성경의 전통이지만(창 9:6), 성경은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억울하고 무죄한 고난과 피 흘림의 원한을 하나님께 맡길 것을 권고하는 전통도 가지고 있다. 성도의 기도는 ‘원한을 풀어 달라’는 정의에 대한 간구이지만, 보복에 대한 금지를 무시하지 못한다. 칼과 무력을 동원하여 악에 맞서고 폭력과 핍박에 맞서는 신구약 중간시대의 마카비 가문의 독립투쟁, 주후 66년의 열심당원의 유대인 반란 전쟁, 주후 132년의 바 코크바의 반란전쟁에 대한 유대인들의 거부감은 어쩌면 성경이 전하는 ‘보복하는 것이 하나님께 있다’는 전통에 대한 생각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 날에 있게 될 보복(revenge)과 징벌(punishment)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이며, 이것은 성도의 원한을 풀어주시는 기도의 응답이라 할 수 있다. ‘기도’는 성도가 믿음 없는 패역한 세대에서 믿음을 보여주는 최선의 것이며(막 9:29; 롬 12:21), 하나님의 정의와 자비를 구하며 원수를 위해 축복하고 용서를 해 주는 선한 행위인 것이다. 요한계시록 6:10에서 다섯 번째 인을 뗄 때에 하늘 제단 밑에서 순교자는 하나님께 ‘어느 때에 우리 피를 갚아 주실 것입니까’라고 묻는다. 이 때 하나님은 ‘그 수가 차기까지’ 라고 말씀하신다. 원수 갚는 보복과 재앙의 날이 오기 위해서는 순교자의 피 흘림이 더 있어야 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성도는 기도하는 삶과 순교의 죽음으로 악을 대하는 선한 백성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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