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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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성과 폼페이의 교훈
2026-02-23 15:27:33
이선규
조회수   46

소돔성과 폼페이성이 보여주는 교훈 (창세기 20)

 

창세기에서 노아 시대의 호우로 세계의 멸망과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돌아본다.

이 두 재앙은 모두가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를 벌하시기 위하여 내리신 천재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 인근에 있는 소돔과 고모라라 호칭하는 이 두성은 지질학상으로 볼 때 지진에 의해 생긴 것이고 아름다운 갈릴리호수도 화산작용에 의해 생긴 것으로 학자들은 헬몬산에서 요단남쪽에 있는 사해(死海)까지 생긴 것이라 한다.

이와 같은 추측은 지금까지도 이 근처에서 많은 분화구(噴火口)와 지진에 의하여 생긴 지 진의 이동을 볼 수 있기 때문 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소돔과 고모라가 사해 왼쪽이나 동부 쪽에 있었다면 창세기에서 말한 기사가

과학적으로 충분히 증명된다. 본인은 전에 이태리의 네이플즈(NAPLES)나포리만의 베시비우스를 다녀왔다. 그곳에서 여러 볼거리가 많았지만 그중에 특이했던 점은 1500년간이나 땅속에 깊이 잠들었던 곳이 완전에 가깝게 발굴 되었다는 것이고 당시 패륜적인 타락상을 본다는 점이다 .

이 사건이 죄에 대한 심판 이었다면 재앙과 하나님의 심판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지진학자들의 견해로 라면 종교적 설명은 필요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재앙을 해석함에 있어 반드시 과학적으로만 해석 되어야 올바른 것이라 할 수 없다. 성서는 바람을 하나님의 천사로 보기도 했으며 비와 눈도 하나님의 섭리로 설명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과학적인 천연의 해석법과 신앙적인 천연의 해석법이 일치한 면도 있으나 상이함도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이태리의 베시비우스 화산재가 덮쳐 도시 전체 가 멸망해 버린 사건을 보면 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지방은 일직부터 비옥한 광야를 끼고 있어 농산물의 집산지로도 유명했으며 초기에는 귀족들의 피서지와 사업의 중심지로서 항구 도시였던 폼페이는 500년 동안 영화를 누리다 가 갑자기 화산의 대 폭발로 하루아침에 멸망해 버린 것이다.

일부주민들은 지진 화 산 폭발을 예상하고 도망쳐 화산을 면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화산재를 뒤집어 쓴 채 그대로 화석이 되고만 것이다.

그 모습을 볼 때 오늘에 교훈을 주는 듯하였다. 목욕을 하고 식사를 하다 혹은 침대위에서 사 랑을 나누던 사람들이 화산재를 뒤집어 쓴 채 시체로 변해 버린 것이다.

그중 가장 놀라운 것은 베티의 집 즉 술집이었다. 그 당시 가장 부자였던 이집은 술과 여자를 팔던 색주가의 (色酒家)의 집 이었다고 한다. 그 집 입구에는 길에 드러낸 남자가 자신의 성기와 황금을 저울에 올려놓고 어느 쪽이 더 무거운가를 저울질하고 있었으며 방안 곳곳 마다 춘화가 새겨져 있었다.

폼패이는 먹고 마시고 춤추는 쾌락의 도시 였음을 볼 수 있었다.

이 도시가 하루아침에 멸망한 것은 화산의 폭발 때문이 아니라 엄청난 향락과 쾌락의

독소 때문 이라고 생각 되어졌다. 여행 해설자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이 광경이 성적타락으로 망한 것이 아니냐고 여쭈니 아니라며 자기들끼리 즐기고 있는 모습에서 현대의 도시의 모습을 떠 올리며 생각에 잠겨든다.

그날 그 시에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홍수가 나던 날

에도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다가 모두 물에 휩쓸려갔다.

그러니 너희는 항상 준비하고 있어라. 주님은 우리에게 언제인가는 다가 올 그날 그 시간에 대해서 주의를 주고 계신다.

본문에서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한 것은 전혀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라는 사실상 아브라함의 아버지인 데라에게서 태어난 이복누이이기 때문이다. (12)그러나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사라가 자기의 아내라는 점을 속이려 하였던

것은 명백한 거짓 이었다.

이와 같은 아브라함의 태도는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 부족임을 부인 할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아무리 굳건한 신앙인이라 해도 잠시 방심하고 진리의 길을 떠나게 되면 그 결과 어떠한 것인가를 발견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잘못에 대하여 이방인의 입을 통하여 경책 하신 후 다시 금 믿음을 통한 의를 그에게 입혀주셨으니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섭리이다.

1, 아브라함가은 믿음의 조상이라 해도 같은 실수를 두 번이나 한다. (창세기12)

누가복음 18:22절을 보자.

부자의 말을 듣고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고하셨다. 여기서 예수님은 모든 계명을 다 지켰다고 자부하는 부자 청년에게 오히려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고 지적 하셨다.

거짓말을 함으로 난처해지는 경우는 너무도 많다.

거짓말은 그에 따르는 보응이 있기 마련이다.

요즈음 세상에 목사의 입에서 거짓말 하는 경우도 있고 신앙인의 말에서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통해 보여 주는 교훈을 보아야 할 것이다.

2.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생활에 위협을 느낄 때에는 인간의 방법을 사용하였다. (17)

그는 여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실수를 인정하고 실수를 고치는 자였다.

우리가 여기서 생각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훌륭한 점이 많아서 위대한 것이 아니라

회개함으로서 위대해 졌다는 점이다.

 

3. 어떤 일에든지 속단하는 일은 대한 금물이다.

에베소서 6:9을 보자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하고 공갈을 그치라 나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이 혹 잘못을 저질러도 그의 권위를 세워 주신다.

삼상 2410절을 보자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손에 붙이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입니다.

혹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주를 해치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 이니라.

이와 같이 선지자는 기름 부음 받은 자이다.

봄문 12절에 아브라함은 신앙이 견고하고 열 심도 특출 하였지만 온전치는 못 하였다.

그는 사람과의 교제에 있어서도 과감하지 못하고 대인관계에도 소심하였음을 볼 수 있다. 사탄은 때로 우리의 약점을 파고들 때가있다. 우리도 우리의 약점을 확인하고 보완하여 실수 없는 참 신앙인이기를 소원한다. 그러나 잘못이 있다 해도 회개하는 일은 더욱 중요한 과제이다. 우리에게도 어느 시기에 심판의 날이 다가오게 될 것이다.

준비에 게으르지 말아야 겠다.

소돔성과 폼페이성이 보여주는 교훈 (창세기 20)

 

창세기에서 노아 시대의 호우로 세계의 멸망과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돌아본다.

이 두 재앙은 모두가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를 벌하시기 위하여 내리신 천재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 인근에 있는 소돔과 고모라라 호칭하는 이 두성은 지질학상으로 볼 때 지진에 의해 생긴 것이고 아름다운 갈릴리호수도 화산작용에 의해 생긴 것으로 학자들은 헬몬산에서 요단남쪽에 있는 사해(死海)까지 생긴 것이라 한다.

이와 같은 추측은 지금까지도 이 근처에서 많은 분화구(噴火口)와 지진에 의하여 생긴 지 진의 이동을 볼 수 있기 때문 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소돔과 고모라가 사해 왼쪽이나 동부 쪽에 있었다면 창세기에서 말한 기사가

과학적으로 충분히 증명된다. 본인은 전에 이태리의 네이플즈(NAPLES)나포리만의 베시비우스를 다녀왔다. 그곳에서 여러 볼거리가 많았지만 그중에 특이했던 점은 1500년간이나 땅속에 깊이 잠들었던 곳이 완전에 가깝게 발굴 되었다는 것이고 당시 패륜적인 타락상을 본다는 점이다 .

이 사건이 죄에 대한 심판 이었다면 재앙과 하나님의 심판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지진학자들의 견해로 라면 종교적 설명은 필요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재앙을 해석함에 있어 반드시 과학적으로만 해석 되어야 올바른 것이라 할 수 없다. 성서는 바람을 하나님의 천사로 보기도 했으며 비와 눈도 하나님의 섭리로 설명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과학적인 천연의 해석법과 신앙적인 천연의 해석법이 일치한 면도 있으나 상이함도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이태리의 베시비우스 화산재가 덮쳐 도시 전체 가 멸망해 버린 사건을 보면 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지방은 일직부터 비옥한 광야를 끼고 있어 농산물의 집산지로도 유명했으며 초기에는 귀족들의 피서지와 사업의 중심지로서 항구 도시였던 폼페이는 500년 동안 영화를 누리다 가 갑자기 화산의 대 폭발로 하루아침에 멸망해 버린 것이다.

일부주민들은 지진 화 산 폭발을 예상하고 도망쳐 화산을 면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화산재를 뒤집어 쓴 채 그대로 화석이 되고만 것이다.

그 모습을 볼 때 오늘에 교훈을 주는 듯하였다. 목욕을 하고 식사를 하다 혹은 침대위에서 사 랑을 나누던 사람들이 화산재를 뒤집어 쓴 채 시체로 변해 버린 것이다.

그중 가장 놀라운 것은 베티의 집 즉 술집이었다. 그 당시 가장 부자였던 이집은 술과 여자를 팔던 색주가의 (色酒家)의 집 이었다고 한다. 그 집 입구에는 길에 드러낸 남자가 자신의 성기와 황금을 저울에 올려놓고 어느 쪽이 더 무거운가를 저울질하고 있었으며 방안 곳곳 마다 춘화가 새겨져 있었다.

폼패이는 먹고 마시고 춤추는 쾌락의 도시 였음을 볼 수 있었다.

이 도시가 하루아침에 멸망한 것은 화산의 폭발 때문이 아니라 엄청난 향락과 쾌락의

독소 때문 이라고 생각 되어졌다. 여행 해설자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이 광경이 성적타락으로 망한 것이 아니냐고 여쭈니 아니라며 자기들끼리 즐기고 있는 모습에서 현대의 도시의 모습을 떠 올리며 생각에 잠겨든다.

그날 그 시에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홍수가 나던 날

에도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다가 모두 물에 휩쓸려갔다.

그러니 너희는 항상 준비하고 있어라. 주님은 우리에게 언제인가는 다가 올 그날 그 시간에 대해서 주의를 주고 계신다.

본문에서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한 것은 전혀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라는 사실상 아브라함의 아버지인 데라에게서 태어난 이복누이이기 때문이다. (12)그러나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사라가 자기의 아내라는 점을 속이려 하였던

것은 명백한 거짓 이었다.

이와 같은 아브라함의 태도는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 부족임을 부인 할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아무리 굳건한 신앙인이라 해도 잠시 방심하고 진리의 길을 떠나게 되면 그 결과 어떠한 것인가를 발견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잘못에 대하여 이방인의 입을 통하여 경책 하신 후 다시 금 믿음을 통한 의를 그에게 입혀주셨으니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섭리이다.

1, 아브라함가은 믿음의 조상이라 해도 같은 실수를 두 번이나 한다. (창세기12)

누가복음 18:22절을 보자.

부자의 말을 듣고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고하셨다. 여기서 예수님은 모든 계명을 다 지켰다고 자부하는 부자 청년에게 오히려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고 지적 하셨다.

거짓말을 함으로 난처해지는 경우는 너무도 많다.

거짓말은 그에 따르는 보응이 있기 마련이다.

요즈음 세상에 목사의 입에서 거짓말 하는 경우도 있고 신앙인의 말에서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통해 보여 주는 교훈을 보아야 할 것이다.

2.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생활에 위협을 느낄 때에는 인간의 방법을 사용하였다. (17)

그는 여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실수를 인정하고 실수를 고치는 자였다.

우리가 여기서 생각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훌륭한 점이 많아서 위대한 것이 아니라

회개함으로서 위대해 졌다는 점이다.

 

3. 어떤 일에든지 속단하는 일은 대한 금물이다.

에베소서 6:9을 보자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하고 공갈을 그치라 나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이 혹 잘못을 저질러도 그의 권위를 세워 주신다.

삼상 2410절을 보자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손에 붙이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입니다.

혹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주를 해치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 이니라.

이와 같이 선지자는 기름 부음 받은 자이다.

봄문 12절에 아브라함은 신앙이 견고하고 열 심도 특출 하였지만 온전치는 못 하였다.

그는 사람과의 교제에 있어서도 과감하지 못하고 대인관계에도 소심하였음을 볼 수 있다. 사탄은 때로 우리의 약점을 파고들 때가있다. 우리도 우리의 약점을 확인하고 보완하여 실수 없는 참 신앙인이기를 소원한다. 그러나 잘못이 있다 해도 회개하는 일은 더욱 중요한 과제이다. 우리에게도 어느 시기에 심판의 날이 다가오게 될 것이다.

준비에 게으르지 말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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