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비전 체득의 달 “살아계신 하나님, 처음 사랑을 회복케 하소서!”
눈물이 길이 될 때
느헤미야 8:1-12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소설가이자 칼럼리스트 메이르 샬레프는 2008년에 In the Beginning: Firsts in the Bible 『시작들: 성경 속 처음의 것들』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서 샬레프는 성경 속에 등장하는 ‘처음 일어난 일들(Firsts)’을 하나하나 짚어 가며 그 의미를 되새깁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처음’이 등장하는데, 그 처음들은 이미 완성된 답이 아니라, 인류가 앞으로도 계속 붙들고 씨름해야 할 질문의 시작이다.”
샬레프는 성경 속의 첫 사랑, 첫 눈물, 첫 노래, 첫 분노를 소개하며 성경의 ‘처음’은 언제나 어설프고, 미숙하고, 흔들리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성경의 이야기는 비록 오래전에 쓰였지만 단순히 지나간 옛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이 시대에도 다시 일어나야 할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 말씀 앞에서 흘린 눈물
오늘 우리가 읽은 느헤미야 8장의 장면도 그렇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후 일곱째 달에 이르러 처음으로 광장에 모여 하나님의 율법을 ‘처음처럼’ 다시 듣습니다. 돌아온 후 일곱 달 동안 무엇을 했을까요? 아마도 무너진 성벽을 쌓거나 파괴된 성전을 재건하는 일, 자신들의 살아갈 집을 수리하고 짓는 일 등등 외형적으로 자신들을 지켜줄 일들에 치중했을 겁니다. 그러나 문득, 그것보다 더 근원적인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일곱째 달에 이르렀을 때 백성들은 에스라는 수문 광장에 모여 율법책을 읽어 달라는 것입니다. 온 백성은 말씀을 듣고 울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말씀 앞에서 자기 현실을 너무 분명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돌아왔지만, 여전히 율법의 삶과는 멀다. 성전은 다시 세웠지만, 공동체는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여전히 거룩하신데, 우리는 너무 초라하다.’
그래서 그 울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산 결과로 우리가 이렇게 되었구나.’하는 자각의 눈물, 회개의 눈물일 가능성이 큽니다.
■ 방향을 바꾸라
하지만, 여기서 결정적인 대목이 나옵니다.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 말고 울지 말라.”(느 8:9)
이 말은 울음을 꾸짖는 말이 아닙니다. 울지 말라는 명령이 아니라, 울음의 방향을 바꾸라는 선언입니다. 울어야 할 이유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울음이 과거에 머물러 우리를 붙잡지 않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주저앉히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도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며,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어라. 오늘은 주님의 거룩한 날이니 근심하지 말라. 주님으로 인한 기쁨이 너희의 힘이다.”(8:10)
이 장면은 회개의 눈물을 금지하는 장면이 아닙니다. 말씀 앞에서 흘리는 회한의 눈물은 너무도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눈물이 자기 연민과 좌절로 굳어지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말씀 앞에서 울었다면, 이제는 그 말씀을 힘 삼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울음은 여기서 기쁨과 나눔, 그리고 축제로 전환됩니다.
■ 우리의 삶에서도 일어나는 일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 자신을 세우면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한 시간들이 떠오르고, 자책과 후회로 눈물이 날 때가 있습니다. “왜 나는 여전히 이 모양일까.” “신앙이 이렇게 오래됐는데도 왜 여전히 부족할까.” 말씀은 때로 우리를 위로하기보다 먼저 정직하게 아프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그만 울어라”가 아니라, “이제 그 울음을 붙들고 앞으로 걸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완벽한 신앙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말씀은 다시 살아갈 힘을 주기 위해 주어집니다. 그래서 신앙은 언제나 회한의 눈물에서 끝나지 않고, 기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자기 반성에서 멈추지 않고, 다시 삶을 선택하는 용기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으로 인한 기쁨이 너희의 힘이다.”
이 기쁨은 감정의 고양이 아니라, 넘어졌어도 다시 걸어가게 하는 힘이며, 여전히 부족하지만 포기하지 않게 하는 은혜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말씀 앞에서 울 줄 아는 사람인가?”
그리고 동시에 이렇게 초대하십니다.
“이제 그 눈물을 힘으로 바꾸어, 다시 살아갈 수 있겠느냐?”
■ 눈물이 기쁨으로 바뀐 이유
느헤미야 8장에서 백성들의 울음이 기쁨으로 바뀔 수 있었던 이유는 “울지 말라”는 말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말씀을 밝히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가 아니라,
말씀을 이해했기 때문에 삶의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말씀이 소리로만 머물 때는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말씀이 뜻으로 스며들 때는 삶을 움직입니다.
본문은 매우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레위 사람들은 말씀을 읽는 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백성들 사이에 서서 말씀을 풀이해 주었고, 의미를 설명해 주었고, 그 말씀이 지금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알아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안다는 것은 지식을 많이 쌓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히브리어 문법을 잘 아는 것이고, 성경 공부를 오래 했다는 말도 아닙니다. 말씀을 밝히 안다는 것은 그 말씀이 지금 내 삶의 어느 지점을 향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은 그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 나에게 말을 거는 살아 있는 음성이 됩니다.
■ 말씀을 알기 위한 노력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읽는데 삶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말씀을 몰라서가 아니라 말씀을 밝히 알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너무 익숙해져서 묻지 않고, 너무 많이 들어서 다시 생각하지 않고, 너무 잘 안다고 여겨서 삶과 연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알기 위해서는 몇 가지 노력이 필요합니다.
첫째, 속도를 늦추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급하게 읽는 말씀은 지나가지만, 머무는 말씀은 남습니다. 한 절이라도 붙들고 묻고, “이 말씀이 지금 내 삶에 무엇을 요구하는가”를 정직하게 되묻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둘째, 혼자가 아니라 함께 읽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느헤미야 8장에서 말씀은 개인 묵상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이해되었습니다. 서로 질문을 듣고, 서로의 삶을 통해 말씀을 비추어 볼 때 우리는 내가 보지 못한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셋째, 적용을 미루지 않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이해했다면, 아주 작게라도 삶으로 옮겨야 합니다. 작은 순종 하나가 말씀을 다시 살아 움직이게 만듭니다.
그래서 느헤미야 8장의 결론은 단순합니다.
백성들은 말씀을 밝히 알게 되었고, 그래서 기뻐할 수 있었고, 그래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울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울음은 끝이 아닙니다. 말씀을 밝히 알 때, 눈물은 길이 되고, 회한은 용기가 되며, 기쁨은 삶을 다시 일으키는 힘이 됩니다.
■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며
이스라엘의 소설가 메이르 샬레프는 성경에 등장하는 ‘처음’들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처음들은 이미 완성된 답이 아니라, 인류가 앞으로도 계속 붙들고 씨름해야 할 질문의 시작이라고 말입니다. 성경의 처음은 늘 어설프고, 미숙하고, 흔들립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부족한 채로 다시 시작하기 때문에 성경의 이야기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느헤미야 8장의 장면이 바로 그렇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처음으로 다시 말씀 앞에 섭니다. 그들의 처음은 감격만으로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울음이 있었고, 회한이 있었고, 현실을 직면하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처음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밝히 알게 되었고, 그래서 울음은 기쁨으로, 자책은 힘으로, 과거는 새로운 삶의 출발점으로 바뀌었습니다.
샬레프의 말처럼, 성경의 처음은 언제나 질문으로 남습니다.
“너는 이 말씀 앞에서 어떻게 다시 시작할 것인가?”
느헤미야 8장은 그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말씀을 밝히 알 때, 비로소 우리는 다시 살아갈 수 있다고 말입니다.
■ 맺음말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신앙은 한 번의 결단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신앙은 언제나 처음처럼 다시 시작하는 용기입니다. 말씀 앞에서 울 줄 아는 용기, 그리고 그 눈물을 붙들고 다시 걸어갈 용기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은 완성된 사람을 찾지 않으십니다. 다만, 말씀 앞에 다시 서려는 사람, 다시 시작하려는 사람을 부르고 계십니다. “주님으로 인한 기쁨이 너희의 힘이다.” 이 말씀처럼, 우리의 신앙도 눈물에서 끝나지 않고, 기쁨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성경의 이야기가 오늘 우리 삶에서 다시 한 번, 처음처럼 시작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거둠 기도
주님, 말씀 앞에 설 때마다 우리의 삶이 드러나 눈물이 납니다.
그러나 그 눈물이 절망에 머물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길이 되게 하소서.
말씀을 밝히 알아 오늘의 삶에 연결하며, 작은 순종으로 걸어가게 하옵소서.
주님으로 인한 기쁨이 우리의 힘이 되게 하시고, 나눔과 감사의 삶으로 인도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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