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비전 체득의 달 “살아계신 하나님, 처음 사랑을 회복케 하소서!”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
요한계시록 2:1-7
한국교회에서 요한계시록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교회사 전체를 보면, 요한계시록은 오히려 가장 조심스럽게 다루어졌던 성경이었습니다. 4세기 초대교회는 이 책을 쉽게 정경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363년 라오디게아 공의회에서는 요한계시록을 제외한 신약 26권만을 인정했고, 397년 카르타고 회의에 이르러서야 요한계시록을 포함한 신약 27권이 확정되었습니다. 이는 요한계시록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해되고 남용될 위험이 큰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자들도 같은 태도를 보였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요한계시록과 야고보서를 복음의 중심에서 다소 멀리 있는 책으로 평가했습니다. 이는 이 책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은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장 칼뱅 역시 신약 전체를 주석하면서도 요한계시록만은 주석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 책이 잘못 읽힐 경우 신앙을 왜곡할 수 있다는 신학적 경계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 책을 귀하게 여기되, 함부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늘 조심스럽게 읽혀야 할 책입니다.
■ 요한계시록의 질문
그럼에도 한국교회에서는 요한계시록에 근거한 종말론이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해 왔습니다. 많은 해석들이 요한계시록의 상징과 묵시의 언어를 문자 그대로 풀어내려 하면서, 이 책을 소망의 말씀이 아니라 공포의 메시지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결과 신앙은 오늘을 살아내는 힘이 아니라, 미래를 계산하고 피하려는 도구가 되어 버린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본래 고난 속에 있는 교회를 향한 위로와 권면의 편지입니다. 그리고 이 책이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은 종말의 시기가 아니라 “무엇을 사랑하는가, 누구를 두려워하는가, 어디에 충성하는가?”를 묻습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두려운 책이 아니라 신앙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거울이 되는 책입니다.
■ 요한은 누구인가?
요한계시록의 저자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여러 이야기가 있어 왔습니다. 전통적으로는 열두 사도 중 한 사람이었던 사도 요한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이 동일시에 대해 조금 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입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시기인 AD 90년대까지(도미티아누스 통치 말기) 사도 요한이 생존해 있었을 가능성이 크지 않고, 요한복음이나 요한서신과 비교해 보아도 문체와 표현 방식이 상당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을 읽는 데 있어 더 중요한 질문은 “그가 정확히 누구였는가”보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가”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자신을 ‘요한’이라 부르며, 밧모섬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고난 받는 교회들을 향해 편지를 씁니다. 그는 제국의 폭력 앞에서 흔들리는 교회를 외면하지 않았고, 타협과 무감각에 빠진 신앙을 아프게 바라보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점에서 신학자이자 목회자였던 유진 피터슨의 말은 많은 통찰을 줍니다. 피터슨은 요한계시록의 저자 요한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요한은 신학자이며, 시인이며, 무엇보다 목회자다.”
요한은 신학자로서 제국을 분별했고, 시인으로서 상징과 이미지로 진실을 말했으며, 목회자로서 상처 입은 교회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공포를 조장하는 예언서가 아니라,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를 다시 깨우려는 한 목회자의 절절한 편지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요한계시록은 “언제 종말이 오는가?”를 묻는 책이 아니라, 오늘의 교회를 향해 “너는 아직 처음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가?”묻는 책입니다.
■ 에베소 교회
에베소 교회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첫 번째 교회입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이 교회는 당시 소아시아 교회의 중심이었고, 신앙의 역사와 전통이 깊은 공동체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오래 머물렀고, 디모데가 사역했으며, 신학적으로도 매우 단단한 교회였습니다.
주님은 에베소 교회를 칭찬하십니다.
수고했고, 인내했고, 악을 용납하지 않았고, 거짓을 분별할 줄 아는 교회였습니다. 말하자면, 믿음이 흐트러진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가장 먼저 이 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네가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에베소 교회의 문제는 믿음이 없어졌거나 열심이 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바르게 살려 했고, 옳은 것을 붙들려 했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랑은 의무가 되었고, 신앙은 기쁨이 없는 책임이 되었으며, 진리가 사람을 품믄 일보다 앞서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에베소 교회에게 “틀렸다”고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식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여전히 일하고 있지만, 나를 사랑하던 그 마음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사랑’이란, 처음의 감정이나 열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목적 삼아 따르던 마음, 사랑해서 순종하던 태도, 신앙이 기쁨이던 그 자리로 돌아가라는 부르심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타락한 교회가 아니라 사랑을 잃어버린 채로 믿음을 지키려 했던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는 오늘 우리에게 묻는 것입니다.
“너는 아직 처음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가?”
■ 에베소 교회가 흔들린 이유
에베소 교회는 안팎의 압박 속에 있었습니다.
먼저 외적인 위기가 있었습니다. 에베소는 로마 제국의 중심 도시로, 황제 숭배가 일상화된 곳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가 주다”라는 고백은 신앙 고백인 동시에 사회와 경제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선택이었습니다. 신앙은 언제나 생존의 문제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동시에 내적인 위기도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는 니골라당으로 불린 거짓 가르침이 스며들어, 신앙과 삶을 분리하고 우상 제물 문제를 가볍게 여겼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이 가르침을 단호히 거부했고, 주님은 그 분별력을 분명히 칭찬하십니다. 그러나 진리를 지키는 싸움이 길어지면서 교회는 점점 경직되었고, 진리를 지키는 동안 서로에 대한 사랑이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의 위기는 믿음을 버려서가 아니라, 믿음을 지키느라 처음 사랑을 놓쳐버린 데서 시작된 위기였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제국의 압박과 거짓 가르침 사이에서 버텼지만, 그 긴장 속에서 사랑이 식어가던 교회였습니다.
■ 에베소 교회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에베소 교회의 이야기는 교회의 문제가 아니라 내 신앙의 거울입니다.
나는 여전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기도하고, 예배하고, 옳은 것을 분별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신앙이 무너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렇게 묻습니다.
“너는 아직 나를 사랑하고 있느냐?”
신앙이 어느새 사랑이 아니라 의무가 되었는지는 않았는지, 주님을 기쁘게 하기 보다 옳아 보이려 애쓰고 있지는 않은지, 믿음을 지킨다는 명복으로 다른 사람을 밀어내고 있지는 않은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처음 사랑이란 뜨거웠던 감정이 아니라, 주님을 목적 삼아 살던 방향이었습니다. 그 방향에서 벗어났다면, 더 열심히 내기 위해 애쓰기보다 다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통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신앙은 무너지지 않았는데, 사랑은 식어가고 있지는 않은가?”말씀하시며,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처음 사랑을 잃은 우리를 버리시지 않고, 다시 사랑할 수 있도록 부르십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씀은 더 많은 일을 하라는 요청이 아니라, 다시 침묵 속에서 하나님 앞에 서 보라는 초대입니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그 침묵의 자리를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내 이름조차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침묵 속에 서 있었습니다.
내 마음만이
조용히 앞으로 기울어졌을 뿐입니다.
그때,
침묵 속에서
당신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을 다시 사랑하라는 명령이기 전에,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처음처럼 사랑하고 계신다는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처음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에 응답하여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여러분 되길 축복합니다. 아멘.
■ 거둠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가 여전히 믿고 있다고 말하지만 사랑은 식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옳음을 붙들다 사랑을 놓친 자리에서 다시 주님을 목적 삼아 살게 하시고, 의무가 아닌 기쁨으로, 두려움이 아닌 사랑으로 주님을 따르게 하옵소서.
처음 주님을 만났던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가게 하시고, 지금 여기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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