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솔문목사

커뮤니티   >   목회자칼럼및활동   >   목회자   >   신솔문목사
말(言)의 힘
2026-05-20 10:05:04
신솔문
조회수   48

1.

 

새벽기도회 때 후미진 마을도 운행합니다.

2차선 양옆으로 소막(우사)들이 있고요.

몇 개월 전부터 한 소막에서 키우는 개들이 어두운 도로에서 종종 보였습니다.

밤에 소막에서 퇴근하면서 어미 개를 풀어 놓으면

어미 개가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새끼들도 따라 나오는 것 같습니다.

어미 개는 흰색, 새끼들은 검은색에 가까운 것이 특이했습니다.

 

이제 새끼들도 제법 컸고요.

그렇지 않아도 고라니 때문에 신경 쓰는 길인데

개들까지 설쳐서 더욱 민감한 길이 되었습니다.

 

요즘도 교인 데리러 가는 길은 캄캄합니다.

어제 그 소막에 접근해갈 때

흰색 어미 개가 중앙선에 버티다가 반대 차선으로 살며시 물러났습니다.

차선을 막는 느낌이 들어

이제 교통경찰 행세를 하네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미 개가 그랬던 이유는 그 길을 다시 지날 때 드러났습니다.

반대편 차선 가운데에 새끼 한 마리가 교통사고로 죽어 있었습니다.

새끼에게 또 차가 덮치지 않도록

어미 개가 두려움을 무릅쓰고 최대한 차들을 막고 있었던 것이지요.

 

새벽기도회 끝나고 운행할 때 보니

새끼 옆을 어미 개가 멍하니 지키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출근할 때까지 그렇게 있었겠지요.

 

그 광경을 휴대폰에 담아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즉각 그 마음을 버렸습니다.

슬픔에 빠진 어미 개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해서요.

 

 

2.

 

우리 같은 설교자에게 이런 경험은 매우 요긴한 예화 재료입니다.

그러나 이 경험을 우리 교회에서 언급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무심코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다짐을 해두어야 합니다.

 

지금은 지하 차로가 생겨 교통사고가 드물지만

옛날에는 교통사고가 잦았던 지역이고

오래전 목회자 한 분도 이곳에서 교통사고로 소천하셨습니다.

교인 몇 분이 이런 슬픔을 겪었다는 것을 제가 비공식적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런 예화가 그분들의 아문 상처에 덧낼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이 유발하는 부정적 결과까지 고려해보는 세심함이

설교자에게 필요합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나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30년 전 일입니다.

부임하고 몇 개월이 지난 주일 설교에서 제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성도에 대한 언급했던 모양입니다. 주제는 아니었던 것 같고 그 주중에 접한 연예인 뉴스를 잠깐 언급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일에 대한 평소 입장을 언급했을 것이므로 이런 내용이었을 겁니다.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 맞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일을 한 성도가 엄청난 잘못을 했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긍휼에서 차단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 일에 대한 우리 기독교의 강한 입장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었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성도를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도들을 지키려는 목회적 관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는 신실한 성도들을 설득하기 위해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선의의 협박을 한 것이지요...”

 

저도 잊어버린 이 짧은 언급을 몇 년이 지난 후, 한 교인이 지나가는 말로 거론하시면서 감사를 표하셨습니다. 어떻게 할 수 없었던 마음속 응어리 하나가 녹아졌다고요. 두루뭉술하게 말씀하셨지만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는데요. 그때는 이분이 겪은 슬픈 일을 목회자로서 비공식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

 

화자(話者/설교자)인 우리들이 세심하게 숙고하고 주의해서 언표하지만, 다 파악이 불가능한 청자(聽者/회중)들의 상황에 따라 화자의 언표가 긍정적 결과를 낳기도 하고 부정적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성령께서 이 과정에 개입하셔서 긍정적 결과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첨부 파일
627 [성령강림주일] 결승전: 아집 대 '예집'(막 4:35-41)    신솔문 2026-05-25 27
626 말(言)의 힘 신솔문 2026-05-20 48
625 빨려 들어가는 슈팅 vs 빨랫줄 슈팅    신솔문 2026-05-07 82
624 관악산 단상    신솔문 2026-05-06 78
623 물만 주었지만 (고전 3:5-9)    신솔문 2026-04-30 101
622 [일반 회의규칙] 노회는 연합회가 아니다    신솔문 2026-04-29 157
621 신종(新種) 성경퀴즈 신솔문 2026-04-24 111
620 [일반 회의규칙] 번안동의 신솔문 2026-04-17 117
619 [일반 회의규칙] 부수동의 신솔문 2026-04-17 118
618 [일반 회의규칙] 특수동의 신솔문 2026-04-16 128
617 [일반 회의규칙] 보조동의 신솔문 2026-04-15 125
616 천문학 초보(15): 유인우주선 아르테미스 2호    신솔문 2026-04-10 134
615 배추꽃에 대한 예의    신솔문 2026-04-10 125
614 뜨거운, 예전적 예배    신솔문 2026-04-06 140
613 2026년 부활절 공동예배문(ver. 우리 교회)    신솔문 2026-04-04 144
1 2 3 4 5 6 7 8 9 10 ... 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