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세에 대하여(김범식)
히브리 성경에는 나라 혹은 왕이 부과하는 세금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세금’을 지칭하는 직접적인 단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다윗이 전쟁을 끝내며 강력한 통일 이스라엘 왕국으로 발전시키고, 말년에 이스라엘 전국(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에 있는 백성들의 숫자를 계수하게 한 인구조사(census)를 하였다. 왜 이것이 하나님 앞에 범죄가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징병을 위한 인구조사보다는 세금징수(taxation)를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왕의 세금징수는 권력남용의 모습으로 간주되었다. 하나님의 통치(theocracy)보다는 왕의 제도를 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무엘은 왕의 권력남용이 가져오는 한 가지 문제로 세금징수를 말하였다: “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삼상 8:15). 북 이스라엘의 왕 므나헴은 앗수르 왕 불에게 조공을 바치기 위해 이스라엘 모든 부자에게 각각 은 50세겔을 바치는 세금을 부과했고(왕하 15:20), 유다 왕 여호야김은 애굽의 파라오 느고의 압력에 굴복하여 백성에게 세금을 거두어 조공을 바쳤다(왕하 23:35). 세금은 왕의 권력을 유지하는 불의한 수단으로 간주되었고, 왕의 의해 강제된 노역(forced labor)도 권력을 남용하는 세금과 같이 부정적으로 보았다(왕상 5:13).
세금의 근거가 되는 사람의 값(에레크עֵרֶךְ)을 정하는 이야기가 제사장 문서에서 나온다(레 27:3). 성인 남자(20-60세)의 값을 은 오십 세겔(שֶׁקֶל)로 정하고, 서원한 사람의 예물 값으로 정하였다. 제물의 값을 성과 연령을 따라 정한 것이었다. 사람의 값을 정하는 것과 함께 종교적 의무로서 성막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모세의 율법은 각 사람의 생명 속전(코페르כֹּפֶר)을 모든 이스라엘 남자가 부담하도록 하였다. 이 속전은 인구조사 후에 20세 이상의 이스라엘 남자들에게 반 세겔을 부과하는 것이었다(출 30:12-16). 제 2성전이 세워지고 나서, 유대교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20-60세)에게 성전세를 부과하였다. 포로귀환민을 다스렸던 총독 느헤미야는 성전을 위하여 해마다 세겔의 1/3을 거두도록 명령하였다(느 10:32). 주후 66년 유대인 반란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성전세는 계속되었고,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유대인들이 내던 성전세를 이제는 로마의 카피톨리아 언덕의 신전에 바치도록 요구하였다(유대전쟁사, 7.6). 성전세는 이스라엘 땅과 디아스포라 지역 유대인들에게 부과되었다. 갈릴리 가버나움에 계시던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반 세겔” 받는 자들이 찾아와 성전세를 바치도록 요구하는 장면이 나온다(마 17:24). 예수님은 물고기 입에서 나온 한 세겔을 주님과 베드로의 몫인 성전세로 바치게 하였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이 기도하시기 위해 성전 뜰을 찾았다가 분노하게 된다. 그 이유는 거기에서 제물로 바쳐질 가축을 파는 상인들과 ‘돈 바꾸는 자들’(콜루비스테스κολλυβιστής)이 성전 뜰을 어지럽히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성전세로 바치는 동전에 담긴 대제사장의 탐욕을 보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상인과 환전상들을 쫓아내시는 주님의 모습에서 유대교 지도자들은 더욱 예수를 죽이려고 작정하였다(막 11:15-18). 당시의 대제사장 가문의 수장 안나스는 성전의 이방인 뜰을 시장이 되도록 허용하여 성전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하였다. 그래서 이방인의 뜰은 대제사장의 배를 불리는 ‘안나스의 시장터’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성전세로 드리는 동전으로 바꾸어 주는 환전상이 이방인의 뜰에 존재해야 할 정도로 대제사장이 원했던 동전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모세의 율법으로 속전(코페르כֹּפֶר)으로 바치는 반 세겔을 번역한 70인경의 헬라어는 δίδραχμον(디드라크몬)이다(출 30:13).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요구한 성전세, 반 세겔도 δίδραχμον(디드라크몬)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중동 지역에서 사용되던 화폐의 단위는 세겔이었고, 은 한 세겔을 그레코 로만 시대의 사람들은 그리스 은화 4 드라크마(tetradrachma) 값으로 간주하여, 반 세겔은 2드라크마, 즉 didrachma로 보았다. 헬라의 유명한 동전 여신 아데나와 부엉이가 그려진 기본동전은 테트라드라크마였고, 후에는 디드라크마, 드라크마의 동전으로 크기와 은의 함량이 줄어든 것을 사용하였다. 한 드라크마의 은 함량이 3∼4g으로 보았고, 두 드라크마는 대략적으로 6g 이상의 은 함량이 있어야 했다.
당시의 대제사장들은 로마로부터 은화를 주조하도록 허용된 도시 두로(Tyre)에 발행된 두로의 디드라크마(Tyrian Drachma, 은 6g을 함유)를 성전세로 받기를 허락 받았다. 유대인의 은shekel도 아니고, 황제의 형상이 새겨진 로마은화 denarius도 아닌, 두로의 디드라크마를 성전세로 받으려는 대제사장의 마음은 무엇일까?

두로의 디드라크마는 앞면은 페니키아의 수호신과 같은 존재, Baal의 아들 멜카트(Melqart), 뒷면은 독수리 형상이 새겨진 은화이다. 대제사장은 로마황제의 형상이 새겨진 동전을 성전세로 받는 것에 부담을 가졌을 것이다. 로마에 대한 적개심이 세금문제로 더욱 악화가 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주후 6년 갈릴리 유다의 조세저항 운동). 황제를 신처럼 여기는 황제숭배를 유대인들은 당연히 거부하였다. 그래서 대제사장들은 비슷한 은 함유량을 가진 이스라엘 북쪽 두로의 디드크라마(헬라인의 은화)를 성전세로 택한 것이다. 하지만 디드라크마가 보여주는 형상은 멜카트라는 바알우상이었고, 독수리는 로마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성전세에 대한 대제사장의 탐욕은 자기모순적인 선택을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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