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부를 때 사용하시는 이름 세 개가 오늘 말씀에 다 나옵니다. ‘야곱’, ‘이스라엘’, ‘여수룬’입니다. 사랑하시는 백성을 이렇게 부르고 저렇게 부르기 위해 세 개의 이름이 동등하게 사용되었지만 원래 야곱이라는 이름과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업그레이드된 삶을 드러내기 위해 구별되었습니다.
야곱 단어의 어원은 “발뒷굼치 잡다”, “속여 넘기다”이며 매우 이기적 또는 자기 중심적 삶을 표상합니다. 이스라엘 단어의 의미는 <하나님과 겨루다> 또는 <하나님이 싸우다>로 압축되나 전자가 인간의 분수에 맞지 않는 외람된 모습이므로 후자가 적절하며 이것은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의미와 비슷합니다. 즉 이스라엘 이름은 하나님 통치를 따르는, 하나님 중심적 삶을 표상하는 것이지요. 두 이름의 지칭체는 같지만 두 이름이 품고 있는 의미는 야곱보다 이스라엘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수룬 이름과 다른 이름과의 관계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여수룬 단어는 온전하고 의로운 자, 올바른 자, 곧은 사람, 고결한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야곱식 삶보다는 하나님 중심적인 이스라엘식 삶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식 삶이 하나님을 중심에 두는 내면적 태도에 대한 것이라면 여수룬식 삶은 그러한 내면적 태도가 실천으로 이어지면서 나타나는 열매에 대한 것입니다. 여수룬 이름이 이스라엘 이름 옆에 위치함으로 이 세 이름은 야곱 수준(level)-이스라엘 수준-여수룬 수준으로 유형화할 수 있습니다. 오른쪽에 있는 수준들이 상대적으로 바람직하고요.
지금 나의 신앙생활을 반성해 봅니다. 어느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까? 한때는 이스라엘 수준이었는데 야금야금 야곱 수준으로 내려와 있지 않은지요. 마음은 하나님 중심이었으나 실천이 따르지 않아 이스라엘 수준이었는데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 속에서 시나브로 여수룬 수준에 도달해있을 수도 있습니다. 나의 현 위치를 직시하고 주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합시다.
[註] 제 나름대로 정리한 ‘이스라엘’의 의미는 링크한 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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