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라는 말씀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정리가 필요합니다.
첫째, 성경에서 말하는 ‘세상’에는 크게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자연계, 인류 전체,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멀리하게 하는 인간의 욕망과 문화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의 ‘세상’은 “인류 전체”이고 오늘 말씀의 ‘세상’은 “악한 욕망과 문화”입니다. 둘째, 당연한 말이지만 이 말씀은 신앙의 길을 가는 성도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성도가 아닌 경우, 세상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논의 범위를 이렇게 제한하고 ‘세상’의 의미를 분명히 해야 “세상 사랑”과 “하나님 사랑”의 상호배타적 관계가 정확히 드러납니다. 성도의 경우, 다음의 인생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 15절 말씀입니다. 논리학 문장 형식으로 재서술하면 이렇습니다.
“만일 성도가 세상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그리고 만일 성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
예수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이러한 예수님 말씀과 연결하면 요한1서 말씀의 ‘사랑’을 ‘주인’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든 하나님이든 한 주인만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인은 절대적이고 그 외의 것들은 다 상대적입니다. 세상과 하나님 관계도 그렇습니다. 하나님만이 주인입니다. 우선순위가 이렇게 분명할 때 삶의 갈피를 잡을 수 있습니다. 세상과 단절하라는 권면이 아닙니다. 봉쇄수도원조차 요한1서의 “세상”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일시적이고 상대적인 세상의 종이 되지 말고, 참 주인이신 하나님의 종으로 세상을 이겨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도 사라지고, 이 세상의 욕망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17절,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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