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매일 밤 아주 먼 은하에 다녀온다는 거짓말을 믿고 그를 추종하며 대통령 후보로까지 지지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거짓에 취약한 인간의 어리석음을 실감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황당한 거짓말에는 사람들이 쉽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진실이 섞어 놓을 때 사람들은 거짓말임을 파악하지 못합니다.
이런 교묘한 거짓말은 정치인들로부터 많이 접합니다. 약간의 사실을 가지고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론이 이런 선동을 냉정하게 체크해주면 좋으련만 어떤 언론들은 오히려 거짓말의 확대재생산에 일조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그러한 선동이 나타납니다.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다고 하지만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할 리가 없습니다. 이처럼 왜곡된 판단을 가지고 일단 재판에 ‘기소’한 후 본격적으로 거짓 증인들의 작업이 시작됩니다. 선수들이기 때문에 황당한 거짓말은 하지 않습니다. 약간의 사실을 재료로 삼습니다. “이 사람이 거룩한 곳(성전)과 율법을 거슬러 말을 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개혁은 구태를 거스르는 것이고 사람들은 스데반의 활동에서 이 점을 느꼈을 겁니다. 황당한 거짓말은 그다음 이어집니다. “이 사람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뜯어 고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을 물리적으로 허문다고 했다면 로마당국이 나서지 않아도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처형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거짓증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뜯어 고칠 것”이라는 증언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정신을 회복하고 율법을 완성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스데반은 억울하게 죄인으로 몰리고 죽임을 당합니다.
스데반이 당한 억울함은 우리 사회에서도 목격할 수 있습니다. 담대한 거짓말로 고발이 되고 무리한 수사로 뒤집어쓴 누명이 법정에서 인정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심각하지 않아도 우리들은 일상에서 서로에게 크고 작은 누명을 씌우며 살아갑니다. 때로는 선동에 넘어가서 때로는 실수나 의도를 가지고 때로는 부지불식 간에 이러한 잘못을 범합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검증이 안 된 추론인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세심한 분별이 필요합니다.
스데반은 지혜와 성령으로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지혜와 성령으로 형성된 판단과 발언은 진실에 가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통화 목소리나 영상 화면을 보고도 당사자라고 확신할 수 없는 거짓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이러한 세태에서 우리 성도들이 진리의 거점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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