εὐεργέτης(유에르게테스, 은인)에 대하여(김범식)
신약성경에 단 한 번 나오는 단어로 εὐεργέτης(유에르게테스)가 있다. 이 단어는 은인, 시혜자(benefactor)의 뜻으로 누가복음 22:25에 단 한 번 나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εὐεργέτης)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εὐεργέτης(유에르게테스)는 고전 헬라 시대에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던 단어인데, 개인의 시혜적이고 친절한 선한 행위를 뜻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 단어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익과 은혜를 베푸는 특별한 사람에 대한 호칭(title)으로 시혜자(benefactor)로서 공적비나 묘비에 사용되었다. 로마 시대에는 εὐεργέτης(유에르게테스)가 신들이나 영웅들, 혹은 왕들이나 정치지도자들, 그리고 철학자들이나 학자들에게 사용되어, 인류의 발전에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 붙여주던 영예로운 호칭이 되었다. 구약성경은 인간에게 선한 행위를 하여 유익(benefit)을 주는 주체는 언제는 하나님이지만, 단어 εὐεργέτης(유에르게테스)는 단 한 번도 70인경에 나타나지 않고, 하나님을 은인이라는 용어로 표현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선한 행위를 하는 사람을 εὐεργέτης(유에르게테스, 은인)로 호칭하는 헬레니즘적인 요소를 헤브라이즘은 결코 허용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신약성경에는 이 단어의 추상명사로서 선한 행위(doing right, kindness)를 뜻하는 명사 εὐεργεσία(유에르게시아)가 2번 나온다(행 4:9; 딤전 6:2). 사도행전의 저자는 이 단어를 사도 베드로가 예수의 이름으로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장애인 거지를 치유하고, 공회 앞에서 이 치유의 역사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εὐεργεσία, 유에르게시아)이라고 변증하는데 사용한다(행 4:9). 그리고 같은 저자는 베드로가 로마 백부장 고넬료의 가정에서 설교할 때, 다시 한 번 이 단어의 동사형(εὐεργετέ, 유에르게테오)을 사용하여 예수가 선한 행위를 하신 것을 강조한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εὐεργετῶν, 현재분사형),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 10:38).
로마 시대에 흔히 영웅적인 사람에 대한 호칭으로서 “구원자(soter)이며 은인/시혜자(benefactor)”라는 용어를 동시에 사용하였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의 이름으로 미문에 앉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었고, 구원하였다고 변증하였다(행 4:10). 병자에게 치유(healing)는 곧 구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변증하였다. 백부장 고넬료에게 전하는 복음의 핵심도 예수가 두루 다니며 사람들에게 베푸는 선한 혜택과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시는 구원의 역사였다. 베드로는 예수가 로마 사람들이 사용하는 영웅적인 호칭 savior and benefactor에 어울리는 분이지만, 결국 죄인으로 간주되어 죽었다고 변증한다.
구약성경이나 신약성경은 인간의 영웅적인 선한 행위를 지칭하는 헬레니즘적이고 라틴적인 용어 εὐεργέτης(유에르게테스, benefactor)를 사용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군림하고 지배하는 자로서 은혜를 베푸는 인간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다. 이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하나님만이 진정한 은인이며 시혜자이심을 강조한다. 또한 예수는 큰 자가 젊은 자가 되고, 다스리는 자가 섬기는 종(servant)이 되는 모습이 benefactor의 행위보다 더 위대함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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