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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1일 (금) 일점일획_ ‘비하히롯’에 관한 묵상(김창주)(IBP)
2025-11-20 22:06:18
묵상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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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히롯’에 관한 묵상(김창주)

 

비하히롯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며칠 째인지 명확하지 않고 장막을 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출애굽기 14장은 언제인지 명시하지 않지만, 민수기 33장은 숙곳, 에담을 지나 사흘째다(민 33:7). 구체적으로 믹돌과 바알스본 사이로 한꺼번에 세 지명이 나온다. 비하히롯(פִּי־הַחִירֹת)은 출애굽기에 두 번(출 14:2,9), 하히롯(הַחִירֹת)은 민수기에 한 번 나온다(민 33:7). 모두 출애굽 여정에 관련된다. 문제는 고고학적 자료나 여타 문서에서 동일하거나 유사한 이름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어원에 대한 기본적인 분석은 필수적이다. 히브리어 ‘비’와 ‘하히롯’이 결합된 형태다. 따라서 ‘비,’ ‘하히롯,’ 그리고 ‘비하히롯’ 등을 고려하며 출애굽 맥락에서 살펴야 한다.

        먼저 ‘비’(פִּי)는 본래 ‘입’을 뜻하는 페(פֶּה)의 연계형으로 명사와 결합한 형태다. 개역개정의 ‘비’는 이집트어 ‘피’가 순음화된 예다. 출애굽기의 ‘비돔’(출1:11), 에스겔의 ‘비베셋’(겔 30:17) 등을 비롯하여, 이집트 지명 ‘비라암셋,’ ‘비하솔’ 등은 신전이나 궁전을 지칭한다. 즉 비돔은 아툼 신전(House of Atum), 비라암셋은 라암셋의 궁전(House of Rameses), 비하솔은 하토르의 신전(House of Hathor), 그리고 비베셋은 여신 부바스티스의 집이다. ‘비라암셋’은 본래 타니스였는데 라므세스 2세가 재건한 후 변경된 이름이다. 비슷한 예가 ‘바로’다. 이것은 인명이 아니라 이집트 최고 관직 ‘파라오’(Pharaoh)다. 이집트 왕이나 왕조를 일컫기도 하지만 문자적으로는 태양신 ‘라(Ra)의 신전’이란 뜻이다. 후대 이집트 19왕조(B.C.E. 1306-1200)의 ‘파라오’는 통치 왕조를 가리키는 용어로 마치 청와대나 백악관처럼 최고 권력자를 상징하게 되었다. 동양에서 통용되는 전하(殿下), 폐하(陛下), 각하(閣下) 등도 유사한 맥락이다. 이를 테면 ‘전하’는 문자적으로 궁궐이나 대궐에 사는 사람이란 뜻이지만 최고 관직을 가리키는 칭호로 쓰이는 것과 같다. 히브리어 ‘피’는 ‘나의 입’을, 이집트어 ‘피’는 ‘입구’나 ‘진입로’를 뜻한다. 그러니 ‘피’는 거대한 신전 자체가 아니라 성이나 큰 집의 드나드는 문을 뜻하는 용어다.

        이제 하히롯을 집중적으로 분석하자. ‘하히롯’의 원형은 ‘새기다, 파다’는 어근(ḥ-r-t)을 확인할 수 있다. 히브리 노예의 탈출 경로라면 비하히롯은 국경의 성벽이나 주변을 빙 둘러 판 해자(moat)를 연상할 수 있다. 고대 사회에 해자(垓字)란 외적의 침입을 교란하기 위해 주둔지나 성곽 주변에 강을 끌어들이거나 연못을 파서 물을 채워 놓은 방어선이다. 그렇다고 해자로 단정하기 어렵다. <칠십인역>이 비하히롯을 고유명사로 음역하지 않고 ‘농장’(farmstead), 또는 ‘개척지,’ ‘거주지’로 번역하였다. 목초지를 뜻하는 ‘하차로트’(ḥ-r-t)로 읽었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콥틱어 Achirot은 ‘사초풀’을 가리키기 때문에 나일강 하류의 습지 ‘라스 아타카’(Ras Atakah) 지역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하히롯의 지정학적 위치를 가늠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히브리를 포함한 이집트 노예들이 토성이나 운하를 건설하던 현장, 또는 새로운 ‘간척지’의 집단 수용시설일 수 있고 이집트를 표상하는 사랑과 음악과 정열의 신 ‘하토르’(Hathor)를 세워 노동자들을 위로했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렇다면 비하히롯은 ‘여신 하토르에게 가는 길’이며 그곳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된다.

        위와 같은 어원적 분석이 해자, 간척지, 넓은 습지, 또는 하토르 신전 등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한다면 아래 유대교의 해석은 출애굽과 관련하여 신학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랍비들은 하히롯을 엉뚱한 각도에서 접근한다. 중세 유대교 석학 라시(1040-1105)는 하히롯을 ‘자유’로 해석하고 추상명사 ‘헤룻’(ḥerut)과 정관사 ‘하’의 결합으로 설명한다. 즉 이스라엘이 바로와 이집트의 압제에서 해방된 자유인이라는 측면을 부각시킨 것이다. 문자대로 번역하면 ‘그 자유’라고 옮길 수 있지만 ‘정관사 + 추상명사’가 걸린다. 이 경우 이집트에서 탈출한 히브리 노예들의 자유로 특정할 수 있다. 그리하여 라시는 이스라엘이 압제의 땅에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탈출한 후 허락된 자유라는 뜻에서 ‘진정한 자유 또는 궁극적인 자유’라고 본다. ‘하히롯’에 대한 물리적, 지정학적 의미라기보다는 신학적 해석이다. 그것은 곧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통하여 누리게 될 자유에 대한 선언이다. 출애굽기 화자는 본디 이집트 신 ‘하토르’를 히브리어 ‘하히롯’으로 읽어 이집트의 압제에서 벗어나 이스라엘이 영위할 자유로 바꾸었다. 두 차례 언급된 ‘비하히롯’은 자유의 과정을 반영한다.

출애굽기 14장 2절은 전치사 ‘앞’(לִפְנֵי)과 비하히롯, 9절은 ‘위’(עַל)와 비하히롯으로 나온다. 그러니까 앞 절은 아직 바다를 건너지 않고 천막을 친 상황이기 때문에 ‘자유의 입구 앞’, 그곳을 ‘향하여’라는 뜻이 되지만, 바로의 군대가 추격해온 9절에는 이미 ‘비하히롯 위’를 걷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곧 자유의 실행이다. 이스라엘에게 비하히롯은 이집트 제국에서 종살이하던 치욕과 압제의 자리가 아니라 당당하게 자유의 헌장을 선포하는 자유인의 현장으로 바뀐 것이다. 비하히롯은 과거 이집트를 건설하기 위해 토목 공사, 운하를 파내야 했던 제국으로부터 탈출이며 이제 종의 멍에를 벗어 던지고 자유인의 명예를 찾아 출발하는 ‘자유의 광장’이다.

그러나 비하히롯에 허용된 자유는 끝없이 펼쳐진 광야에서 누리는 무한대의 자유가 아니다. 곧 눈 앞에서 대면하게 될 ‘바알스본’을 보라. 바알의 본거지에서 야웨 신앙을 온갖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유혹할 것이다. 그렇다고 뒤는 어떤가? 자칫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출 16:3)를 떠올리며 과거에 사로잡히면 언제든 ‘믹돌’의 감시와 제국의 압제로 돌아갈 수 있다. 출애굽 한 후 이스라엘이 향유할 수 있는 자유는 무한정 허용되지 않는다. 제국을 상징하는 ‘믹돌’과 끊임없는 유혹의 대명사 ‘바알스본’ 사이, ‘비하히롯’에서 누리는 ‘제한적인’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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