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본문은 짧지만
자세히 보면 흥미로운 점들이 보입니다.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21절)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서신을 마무리하면서
21절부터는 사도 바울이 인사의 말을 직접 적겠다는 것입니다.
20절까지는 기록한 사람이 따로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편지 끝의 서명처럼
끝인사를 바울이 적고 있는 것이지요.
21절 앞에서 이미 인사의 내용이 있었고
21절에서 끝인사 하겠다고 했으니
22절의 내용은 축복하는 인사말이 나올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22절의 내용은 ‘급발진’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22a)
온수로 샤워하다가 갑자기 찬물이 쏟아지는 느낌이 드는데요.
인사말이 아니라 경고하는 발언이기 때문이고
특히 ‘저주’라는 단어 때문입니다.
22절 하반절에 “마라나 타”(우리 주여 오시옵소서!)가 붙은 것도 뜬금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22절의 성격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2.
바울이 직접 기록하겠다는 인사말은 23-24절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22절은 인사말 하기 전 “강조”한 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2절이 등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 22절이 초대 교회에서 구호처럼 사용되었을 수 있습니다. 군부독재 시절 때 성명서 읽기 전 “독재타도” 구호를 외치는 것처럼요.
둘째, 사도 바울이 끝인사 하기 전,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신앙생활의 팁을 주고자 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22절에는
바람직한 신앙생활을 위한 중요한 권면이 들어있는 셈입니다.
3.
22절이 이처럼 중요한 내용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 마음에 잘 스며들지 않습니다. ‘저주’라는 표현 때문입니다.
예민해서 그런지, 볏짚으로 인형을 만들어놓은 후 이름표 붙이고 바늘 같은 것을 여기저기 꽂아놓는 주술이 연상됩니다.
이런 이미지를 털어버리기 위해서, ‘저주’에 해당하는 원어 “아나데마”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70인역에서 구약성경의 ‘헤렘’의 대응어로 사용되었지만 신약성경에서 사용된 핵심 의미는 “그리스도에게서 분리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헤렘”에 몹쓸 것들을 우리 집단과 단절시키고 처리는 하나님께 맡긴다는 의미가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22절에서 강조하고 있는 권면은 두 가지입니다.
(1) 그리스도의 지체인 교회에서 단절되지 않기 위해서 예수님을 사랑하자.
대우명제로 재서술하면 강조점이 분명히 보입니다. 예수님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바람직한 신앙생활의 첫 단추이지요. 사랑하면 사랑에서 나오는 삶을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여건 때문에 잘 안 되고 윤리적 판단이 허술해서 사랑에 반하는 잘못을 범하기도 하지만 방향은 맞습니다.
(2)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자.
‘재림’이라는 단어 어감은 솔직히 말해서 좋지 않습니다. 사이비 기독교들이 장난을 많이 쳐서 그렇지요. 그리고 ‘재림’은 ‘심판’을 연상시키고 ‘심판’은 ‘형벌’을 연상시키는 탓도 있습니다.
그러나 심판(審判)은 “심사하여 평가하는 것”입니다. 애써서 잘 키운 농작물의 등급을 높게 받으면 보람 있듯이, 잘 살아온 사람들에게 심판의 날은 보람의 날이 됩니다. 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들이 시험을 기다리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주님의 재림은 우리 성도에게 그런 학생들이 기다리는 시험과 같습니다.
재림을 시험으로 비유할 때 한 가지 더 추가되어야 할 점은, 시험 방식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체시험”도 있지만 “개별시험”도 있습니다. 전체 시험은 수강생 전원이 한날 치룹니다. 개별시험은 수강생이 개별적으로 교수님을 만나 “구술시험”을 치루고요.
우리 성도들에게 임하는 시험 방식도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22절과 관련된 재림입니다.
다른 하나는, 히브리서 9:27에 나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겪었듯이
우리들도 전체시험을 치루지 않을 개연성이 큽니다.
그렇다고 내 수고를 인정해 줄 시험이 없다고 억울해하거나 실망하지 마십시오. 여전히 히브리서 방식의 시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22절의 의미를 정리해도 되겠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주는, 22절의 신앙 비법은 이것입니다.
(1) 주님을 사랑하며 신앙의 길을 가십시오
(2) 주님께 애썼다 칭찬받는 시험을 준비하고 기다리면서
[註] 어제 전했던 말씀새김을 요약했습니다. “심판”(시험)은 재림에서만 있다는 입장이 있을 수 있는데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인식으로는 다소 희미할 수밖에 없는 영역입니다. 스케치를 고화질 사진으로 여기지 마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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