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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첫째(22일) 세본문설교: "떨리는 지남철"
2026-02-20 11:45:38
신솔문
조회수   14

3:55~66

7:14~25

13:16~30

   

 

1.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바늘 끝을 떨고 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지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사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 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입성기> (연세대학교출판부, 민영규, 1976)에 있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신영복 교수를 통해 널리 알려졌지만요.

 

책에서 진리는 북극으로 비유됩니다. 성도들에게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니, 성도들에게 북극은 예수님이시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지남철이고요. 예수님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 애쓰는 성도의 모습은 비록 불안스럽지만 살아있는 지남철입니다.

 

북극에 반응하지 않고 바늘이 멈춰버린 지남철은 지남철이 아닙니다. 자기(磁氣)를 상실한 소재들의 집합일 뿐이지요. 한번 주님과 조율된 개인적 경험을 절대시하는 성도는 고장 난 지남철과 같습니다. 확고하면 뭐 합니까? 방향이 안 맞는데요.

 

 

2.

 

(1) “고장 난 지남철같은 사람이 나옵니다. 오늘 요한복음의 가룟 유다입니다.

 

예수님을 판 유다 이야기가 나오면 살며시 등장하는 몇몇 주장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다로 인해 예수님이 십자가 지셨기 때문에 유다가 구원 역사(役事)의 공로자라는 것이지요. 역사(歷史) 해석에서 종종 나타나는 궤변입니다. 일제(日帝)가 우리 민족을 수탈하기 위해 건설한 기반 시설이 해방 후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었으니 우리 민족은 일본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주장과 유사합니다. 학설이 아니라 가해자를 두둔하는 스톡홀름증후군입니다. 또한 유다의 행위가 하나님 계획 안에 있는 배역에 불과하니 그에게 책임이 없다는 주장도 있는데요.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어떤 행위의 원인을 소급해 가다 보면 결국 외부 원인이 나오니 그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주장과 유사합니다. 만일 이 주장을 받아들이면 실생활(實生活)에서 개인의 책임을 묻지 못하는 기이한 결말을 맞이합니다. 그래서 이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앞의 주장도 그렇게 여기셔야 합니다. 체계적인 이해를 거부하는 영역에 접근하면서 발생하는 혼란으로 보입니다.

 

요한복음 본문에서 이런 점들에 우리 생각을 분산시키지 않을 때 그다음 눈에 들어오는 단어는 사탄(마귀)”입니다. 요한복음(13:2, 13:27, 6:70)과 누가복음(22:3)은 예수님을 판 유다를 사탄과 연결합니다. 사탄의 정체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없어도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뭔가에 씌었다고 표현하는 상태에 대한 묘사입니다. 사탄에게 지배를 당해 반성과 성찰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고장 난 지남철이라고 할까요. 유다는 예수님의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갑니다.

 

우리 삶 속에서도 유다와 같은 상태가 이따금 일어납니다. 뭔가에 씌어 다른 판단을 못합니다. 무책임한 주장을 배설하는 극단적 선동가들을 추종하며 좀비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이 경우이지요. 다양한 경고들이 주어짐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고장 난 지남철처럼 아집(我執)과 고집(固執)을 피우고 결국 낭패를 봅니다.

 

문제는 평범한 우리들도 일시적이나마 수시로 이 상태를 겪는다는 것입니다.

 

 

(2) 반면에 살아있는 지남철같은 상태도 있습니다. 오늘 로마서의 사도 바울입니다.

 

오늘 로마서에는 살아있는 지남철에 해당하는 묘사가 나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24)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 때문인지 사람들은 바울의 처한 상태를 부정적으로 봅니다. 이 말씀에 흔히 놓치는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비유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조언은 너의 무지를 깨달으라는 말입니다. 이 조언에 소크라테스, 당신은?”이라고 반박하면 소크라테스는 나는 나의 무지를 알고 있다고 대답하겠지요. 이 대화를 듣고 제3자가 소크라테스나 그의 상대자나 무지한 것은 똑같다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정도 차이가 크지요. 소크라테스는 끝까지 가보고 인정한 무지이고, 상대는 초보적 수준도 모르는 무지입니다.

 

바울이 자신의 죄성과 한계를 직시하게 된 것은 율법을 철저히 준수하는 고도의 수준에서 얻어진 것입니다. 그의 고백을 잡범과 흉악범, 중독자 수준의 고백으로 보면 안 됩니다. 그는 율법을 철저히 준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자신의 죄성, 아니 인간의 죄성과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넘을 수 없는 이 한계 앞에서 좌절했을 때 바울에게 돌파구가 열렸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코치(coach)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잡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율법이라는 심판(審判)은 잘했다, 못했다, 틀렸다 점수 매기는 역할만 했지만, 코치 예수님은 그 이상의 도움을 주십니다. 잘못 지적도 판결이 아니라 교육과정입니다. 자신의 보증을 통해 구원이라는 기본 점수를 주신 후 격려하시고 가르쳐주고 도와주시면서 성도가 하나님과 잘 통할 수 있게 인도하시는 분이신 것이지요. 고생 끝에 획기적 돌파구를 찾은 바울의 감격이 성경 말씀에 생생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7:24~8:2)

 

 

유다가 사탄의 영향 속에 있었듯이 사도 바울도 죄의 영향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유다는 사탄의 지배에 무감각 하였지만, 바울은 죄의 영향력을 인지하고 이것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내면과 삶을 성찰하고 개선하려는 애씀이 비록 불안스러워 보이지만 희망적입니다. 여읜 바늘 끝이 떨리는, 살아있는 지남철 같은 삶이고 행복한 결말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성찰과 수양을 무시하고 허장성세 하는 사람들이 각광을 받는 세태입니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겸손히 고쳐나가는 사람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소심한 사람 취급받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떨리는 지남철처럼 성찰과 회개를 통해 주님께 자신의 생각과 삶을 조율하고 주님과 함께 푯대를 향하여 전진하는 사람이야말로(3:12~14) 주님의 상을 받고 진정한 성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3.

 

오늘 애가의 말씀에서 우리는 떨리는 지남철같은 삶의 중요성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애가에는 이스라엘의 백성이 겪은 전쟁의 참상과 슬픔, 절망의 절규, 고통 등이 흐르고 있습니다. 캄캄한 깊은 구덩이 밑바닥(55) 같은 애가 분위기 속에서 오늘 본문은 한 줄기 빛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받아주시고 고난에서 건져주시고 적대자들을 쫓아주신다는 약속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약속은 떨리는 지남철처럼 지나온 길을 돌이켜 살펴보고 주님께 삶을 맞추는 회개 속에서(41~42) 드려진 기도(43~66)에 담겨 있습니다. 반성과 성찰의 삶이 회복과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사순절 첫째 주일입니다. 사순절은 작심하고 이탈한 신앙 경로를 파악하고 신앙의 경로를 재탐색하고 바로 잡는 절기입니다. 지금의 세태에서 소심한 사람 취급받더라도 좀 더 과하게 우리 삶을 반성하고 성찰하심으로, “떨리는 지남철처럼 믿어도 좋은 성도로 성장하시길 소망합니다.

 

[] “말씀목회연구원누리집에 올린 원고를 여기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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